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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냄비 도시락    
글쓴이 : 김희정    26-05-14 09:08    조회 : 57
   엄마의 냄비 도시락.hwpx (60.6K) [0] DATE : 2026-05-14 09:08:17

                                                        엄마의 냄비 도시락

                                                                                                                   김희정

지금 고등학생들에게는 정규 수업 후 야간 자율 학습이 선택 사항이지만 내가 고등학교 때는 의무였다. 1학년 때부터 밤 10시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하는 일은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을 만큼 당연하게 여겨졌다, 게다가 그때는 학교 급식이 제공되지 않아 매일 도시락을 두 개씩 싸서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다.

엄마는 요리에 진심인 분이다. 아침에 도시락을 싸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지각을 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른 친구들은 늦잠을 자서 지각을 한다지만 나는 엄마의 도시락을 기다리느라 지각을 할 뻔했다. 엄마는 급한 성격에 비해 행동은 마음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엄마, 도시락!”

그래 다 됐어. 얼른 신발 신어!”

엄마, 신발 신었어.”

그래, 가지고 간다. 엘리베이터 눌러!”

엘리베이터의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다가 하는 소리와 함께 엄마의 도시락이 도착하면 나는 엄마에게 볼멘소리를 하고 도시락을 낚아채듯 가지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있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아 쉬는 시간에 공중전화가 있는 1층으로 내려가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의미 없는 말만 되풀이하다 끝끝내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나는 고3이 되었고, 그즈음 뉴스에서는 봉고차로 여자아이들을 납치해 간다는 인신매매에 관한 기사가 연일 보도 되었다. 아빠는 야간 자습이 끝나는 밤 10시에 늘 나를 데리러 오셨지만, 가끔 회사 업무가 늦어지거나 회식이 있는 날에는 그러지 못했다. 그런 날이면 늦은 시간에 혼자 버스를 타고 집에 와야 했는데, 이런 일은 엄마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엄마는 큰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나의 통학 거리도 줄이고 동시에 엄마의 불안도 덜 수 있는 방법으로 학교 옆으로의 이사를 선택했다. 거짓말을 조금도 보태지 않고 학교 정문에서부터 우리 집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단 1분이었다. 진정한 우리 동네의 맹자 어머니다.

 

이사를 한 후 생긴 장점 중에 가장 좋았던 건 엄마의 도시락을 기다리는 시간이 단축되었다는 것이다. 엄마는 점심 도시락만 싸서 나를 등교 시키셨고 따뜻한 저녁 도시락은 직접 갖다주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존재를 전교생에게 알리게 되는 일이 생겼다. 6시에 석식 시간 종이 울리면 나는 도시락을 가지러 수위실 앞으로 가서 엄마를 만났다. 그런데 그날은 멀리서 엄마를 보고도 도시락을 가지러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왜냐하면 엄마가 들고 있는 커다란 냄비를 보았기 때문이다. 나를 따라 나왔던 내 친구는 뭔가 맛있는 것이 틀림없다며 오히려 신이 났고, 친구 손에 이끌려 냄비를 받아 든 나는 이걸 창피하게 어떻게 가지고 가냐며 퉁명스러운 말을 엄마에게 건네고 교실로 올라갔다. 그런데 내가 들고 있는 냄비를 본 아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냄비 뚜껑을 열어보니 이제 막 끓여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고기 김치찌개가 가득 담겨 있었다. 엄마는 추운 겨울날, 친구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라며 석식 시간에 맞춰 찌개를 끓여서 식기 전에 가지고 온 것이다. 그 이후에도 나와 친구들은 불고기 상추쌈, 된장찌개, 떡볶이 같은 특별식을 아니 엄마의 사랑을 맛있게 받아먹었다.

 

지금도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가끔 엄마의 냄비 도시락이야기를 한다. 추운 겨울날, 참 따뜻했고 든든했다고.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따뜻한 말로,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상대를 생각하며 선물을 준비하는 것으로, 또 도움이 필요할 때 자신의 시간과 마음을 기꺼이 내어주는 것으로. 엄마에게 그것은 음식이었다.

어느 날 딸과 학교 급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딸은 곤드레밥처럼 맛없는 음식이 왜 학교 급식으로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이 급식으로 나올 때는 점심을 거르고 학교 카페에 가서 디저트를 사 먹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런 날에는 도시락을 싸주면 안 되냐고 내게 물어본다. 난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학교 급식은 영양사 선생님이 영양 성분을 고려해 균형 있게 구성한 식단이고, 게다가 국가의 정책에 따라 무상으로 제공받는 급식을 절대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더했다.

 

딸아! 엄마도 엄마이긴 하지만 할머니 같은 엄마는 못될 것 같아. 대신 도시락 말고 엄마가 할머니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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