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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너가는 관계    
글쓴이 : 김경숙    26-04-04 20:53    조회 : 115

                                                    건너가는 관계

                                                                                                                                     김경숙

 

휴대폰 검색창에 용산에서 인천공항 2터미널까지 가는 시간과 차편을 확인했다. 외출할 때마다 길 찾기에 길들어 있는 나를 발견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이미 두세 번 갔었던 길인데도 나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오늘은 아들이 회사 일로 미국 연수를 떠나는 날이다. 4시 반까지 공항 도착 시간을 맞추기 위해 손가락으로 시간을 접어본다. 앞으로 2년 동안 지구 반대편에 떨어져 있다고 생각 하니 마음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용산역으로 가는 길엔 겨울 끝에 서 있는 추위가 꽃봉오리를 맺은 목련을 질투하는 듯했다. 차가운 입바람을 불어대며 쉽게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역사 내 환승 구간에서는 사람들의 빠른 걸음과 캐리어 끄는 소리가 묘한 긴박감을 주었다. 내 걸음걸이도 빨라졌다. 김포공항역 반대편에 대기하고 있던 공항철도 미닫이문이 열려있는 것이 보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뛰었다.

인천공항 2터미널에 도착했다. 지하의 어둠을 지나 식당가로 올라섰다. 무수한 LED등의 빛을 받은 대리석이 눈꽃처럼 반짝였다.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흐른다. ‘이곳은 경쟁과 다툼이 사라진 은총만이 가득하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수화물을 막 부치고 나온 아들과 예비 며느리를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만나면 식사비는 늘 아들 담당이었지만 오늘은 내가 사겠다고 큰소리를 치며 앞장섰다. 음식을 고르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서울로 올라와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가 떠올랐다.

 

시골 터미널은 작고 지저분했다. 왕래하는 사람들에 비해 너무 비좁았다. 버스에서 내리면 나름 단정하게 차려입은 엄마가 나를 용하게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별다른 말도 없이 얼른 집에 가서 밥해 먹자는 게 인사였다. 서울로 올라갈 시간이 가까워지면 엄마는 금방 지은 밥상을 내왔다. 항상 배를 따뜻하게 하고 다니라는 그 촌스러운 말이 지금은 가장 따뜻한 말로 남아 있다. 그 기억 때문일까? 멀리 떠나는 아들에게 꼭 따뜻한 밥을 사 먹여야 한다는 의무감이 내 안에 숨어있던 것 같다. 엄마가 밥을 사겠다고 말한 것이 기분을 좋게 했는지 아들 얼굴에 연신 미소가 번졌다.

아들 옆에 고목에 매미 붙은 것처럼 꼭 붙어있는 예비 며느리와는 친해질 시간이 많지 않았다. 나도 낯을 가리는 편인데 며느리도 낯을 가리니 우리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식사 중 며느리가 아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니 흐뭇했다. 이젠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고 며느리 남편이었다. 결혼 날짜를 잡아놓은 상태에서 갑자기 해외로 가게 되었다. 서류 문제로 혼인신고를 먼저 해 둔 상태다. 아들이 먼저 들어갔다가 잠시 나와 결혼식을 올리고 다시 함께 들어갈 계획이라고 했다. 며느리는 간호사인데 다행히 2년간 휴직이 가능하다고 했다. 혼자 결혼식 준비하려면 고생이 많겠다는 안쓰러움이 올라왔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 한 잔을 들고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자연스럽게 눈이 천장으로 향했다. 울렁이는 곡선의 빗살무늬가 허공을 그리고 있었다. 한쪽 면이 통창이라 유리 전체에 스며든 연한 햇살이 조명의 빛 번짐을 더욱 밝게 했다. 처음 인천공항을 찾았을 때는 어마어마한 규모에 머릿속이 하얗게 되기도 했다. 마치 미래 영화 속 사이버 세계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그 크기며 인테리어가 익숙해져 있었다. 우리는 노란빛으로 길잡이를 해주는 F, G, E 알파벳 사이를 지나며 출국장 입구를 찾았다. 근처 벤치에 앉아 잠시 담소를 나눴다. 아들은 배웅을 나와준 것에 짐짓 감격스러워했다.

 

이렇게 배웅 나와주는 사람도 있고 좋네. 나 잘하고 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엄마도 잘 지내고 건강하게.”

메마르게 갈라지는 목소리가 말끝을 대신했다. 나는 짐짓 못 들은 척 표정으로만 답했다.

 

아들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엄마는 뭐 타고 집에 갈 거냐고 묻는다. 공항버스를 탈 예정이라고 대답했다. 비도 오니 공항철도 타고 가라고 하면서, 우리를 배웅해 주겠다고 나섰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탑승장 입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몇 걸음 떼다가 아들 내외를 불러세웠다.

 

나랑은 여기서 작별하자. 미국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둘을 번갈아 안아주었다. 이제부터는 둘의 시간을 가지라고 밀어내듯 손을 흔들었다. 창밖으로 부슬거리는 봄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듯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왠지 주변이 허전하게 느껴졌다. 공항철도를 타고 가라는 그 음성이 마음에 남아 나도 모르게 지하로 더 내려가고 있었다.

이곳으로 올 때는 생각이 복잡했다. 미국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잘 적응할까. 점심시간이 짧아 햄버거로 때우는 나라에서 살이 찌지는 않을까? 예비 며느리는 혼자서 어떻게 지낼까? 하지 않아도 될 걱정들이 전철 안을 꽉 채웠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간의 근심을 공항에서 다 털어버린 듯 홀가분했다. 그곳에서 마주한 아들 내외를 보고 새로운 마음이 들었다. 내 품을 떠나 독립된 한 가장으로 우뚝 서 있는 모습이 각인되었다. 이제 그들의 길은 그들 몫이다.

내 기억 속에 터미널은 구질구질한 북적임 속에서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작은 정거장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이별하는 곳이 아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나는 철도를 타고 어두운 땅속을 조명에 의지해 달리고 있다. 그들은 저마다의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내가 본 공항은 지금과 미래를 잇는 관계의 문을 조용히 열어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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