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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과 스탭을 밟다    
글쓴이 : 심희옥    25-12-10 20:23    조회 : 54
   클래식과 스탭을 밟다3.hwp (98.5K) [0] DATE : 2025-12-10 20:23:27

클래식과 스탭을 밟다

심희옥

 

클래식은 나에게 부담이 되는 영역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고전 시가처럼 오랜 시대를 거쳐 지금도 여전히 높이 평가받는 예술 작품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Classic’이란 단어 속에 품위 있는, 정돈된, 모범적인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서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으면 인문학과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인간 존재의 본성과 사회의 전반에 대해 통찰할 수 있다. 왜냐하면 클래식 속에도 선율을 도구 삼아 분명히 이야기가 있다고 느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6C Major, 쾨헬 번호 5451악장 알레그로를 들으면서 깨달았던 점이다. 언젠가는 순수한 클래식 공연에 가는 것이 나의 버킷리스트였다. 클래식은 여전히 쉽지 않은 분야라 긴장이 조금 되었지만, 세시반 콘서트를 나의 클래식 공연으로 선택했다.

서울시 서초구에 있는 코스모스 아트홀을 찾아가는 여정은 초행길이라 시간을 여유 있게 가지고 갔다. 그리고 인터넷에 미리 올려 놓은 프로그램을 어느 정도 예습하고 출발했다. 관악기들이 서로 밀접하게 상호작용할 수도 있겠다 싶어 기대를 한가득 안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이번 세시반 콘서트의 공연을 맡아서 주관한 분은 서울디지털대학교의 박보경 교수님이다. 그가 출강하는 명지대학교 제자들이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제2One Piano4hands로 실내악의 포문을 열었다. 평소 젊은 아티스트의 음악은 항상 많은 기운을 느낄 수 있고 때로는 실험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애수적이고 다른 면에서 보면 빠르고 광적인 랩소디만의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풍성한 연주를 들으면서 바다에서 갓 잡은 생선의 펄떡임을 상상하게 됐다. 150년 전 리스토마니아를 이끌고 다니면서 헝가리안의 자부심을 가진 클래식계의 아이돌 프란츠 리스트의 열정이 오늘 실내악 공연장에서 연주되면서 과연 그는 어떠한 사람이었을까 하는 물음표가 머릿 속에 가득 찼다. 다소 거칠지만 성숙한 젊은 학생 연주자들의 플레이를 들으며, 나름 충만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지점에서 박수 쳐야 할지를 몰라 고민이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악장이 끝날 때마다 하는 게 아니라 주변의 관객들을 살피며 소나타 전체 3 또는 4악장이 다 끝나면 그제야 박수 치는 것을 알았다. 연주가 훌륭하고 감동적이었다면 더 길게 박수친다. 그러면 들어갔던 연주자들이 다시 나와 인사한다. 아마도 이것을 커튼콜이라고 부르나 보다. 나도 클래식 콘서트 에티켓에 대해 익히면서 박수갈채를 보냈다.

다음은 프랑스 작곡가인 생상스의 바순 소나타를 들을 차례였다. 바순은 목관악기로, 싱글리드가 아닌, 더블리드로 불어서 연주하는 악기이다. 연주하는 것보다 리드를 만드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하니, 연주자의 음악인으로 걸어온 길이 대단하다고 느껴지며 존경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황의원 연주자가 바순을 부르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니, 살면서 내가 목관악기를 접한 적이 있었던가 생각이 되어 색다른 경험이 즐거웠고, 바이올린 등 현악기와는 다른 기분으로 일렁였다. 바순 소나타는 자연의 사계절처럼 순환하는 산수의 이미지를 닮았고 옛 선인들이 강호에서 퉁소를 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후속으로 계속되는 연주는 프랑스 멜로디 작곡가 중 한 명이었던 풀랑크의 오보에 소나타였다. 오보에는 오케스트라의 조율을 할 때 기준점을 잡아주는 악기라고 들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프랑스 작곡가들이 관악기가 들어가 있는 실내악을 많이 작곡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마치 독일 음악극의 창시자인 바그너가 이태리어에 비해 운율이 부족한 독일어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교향악단의 비중을 성악과 동등하게 끌어올린 점과 비슷하다. 프랑스의 언어적인 구조가 관악기를 사용하는 곡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교수님이 유학 시절에 깨달은 바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이형근 오보이스트가 연주하는데, 1악장은 슬펐지만 평화롭고 급하지 않았다. 곧이어, 2악장은 스케르초로 재치가 있어 보였고, 3악장은 장송곡답게 어둡고 무거운 감이 있었다. 어떨 때는 화려하고 리드미컬한 복잡성이 있었지만 오보에의 깊은 소리와 표현력은 리스너를 매혹했다. 그리고 그 공간 속에서 마치 클래식과 춤을 추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오보에 연주자와 피아니스트, 그것을 주의 깊게 듣는 관객과 함께 음악에서 나오는 감정을 공유하는 그 순간이 무척 설레었다.

인터미션이 끝나고 차후에 나온 음악은 베토벤의 피아노 3중주 제4거리의 노래이다. 좀 전에 솔로로 나왔던 바순 연주자와 오보이스트, 피아노 연주자가 모두 모여 실내악을 정식으로 준비하는 무대였다. 1악장은 잠시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와 집중을 못 했으나 2악장은 서정성이 있었고, 3악장 변주곡의 주제는 일하러 가기 전에라는 노래에서 따온 건데 그때 빈의 거리를 휩쓸던 선율이어서 3중주는 거리의 노래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고 교수님이 설명해 주었다.

실내악은 팀워크가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현악 4중주는 네 명의 지식인이 나누는 대화라고 했다. 연주자 간의 긴밀한 유대와 음악적인 상호작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피아니스트인 교수님이 바순 연주자와 오보이스트 뒤에서 눈짓과 몸짓으로 음악적인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클래식은 저들에게 공기와도 같은 것이구나 느꼈다. 요즘 음악은 빠른 템포의 전자음악이 대중적으로 빠르게 소비되고 있다. 그에 비해 클래식이란 장르는 호흡이 길고, 능동적인 감상을 요구하지만, 전자 음향을 사용하지 않고 날 것 그대로의 미세한 공기의 움직임과 흐름이 클래식 공연장 안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키우게 한다. 그리고 그 진동으로 만들어지는 파장! 다시 말해 공기 속에서 느끼는 감정이 있다. 그리고 그 호흡 안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숨이 멎을 정도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그 기운은 내 가슴과 머릿속에 깊이 뿌리 박힐 것 같다. 수백 년 전에 만든 클래식 작곡가와 그들의 음악을 재현하는 연주자 그리고 그것을 듣는 객석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클래식 음악에 담긴 가치를 우리의 삶에 끌어와 그 의미를 묻고, 자신의 삶 속에서 내면화하는 고차원의 사고 활동이 클래식 공연의 본령이 되리라.

체임버 뮤직으로 만난 피아노와 바순, 오보에 트리오 덕분에 이런 소규모 기악 합주로 최대의 음악적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내 감성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음악적 소양을 기를 수 있었으며, 오랜만에 힐링이 되었던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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