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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끈    
글쓴이 : 박승해    26-11-04 00:30    조회 : 13

엄마의 끈

 

  훅하고 곁을 지나가는 작은 여학생의 짭조름한 머리카락 냄새. 여름이 도시의 아스팔트를 태운다. 더위에 떠밀려 급히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거린다. 지하철 역사 안은 뜨거운 밖과는 다르게 냉기마저 느껴진다.

 몸에 찰싹 달라붙은 시큼한 땀방울이 시원한 냉기를 한 사발 벌컥 들이킨다. 축 늘어진 청바지 아래 먼지를 잔뜩 먹은 빛바랜 낡은 운동화가 한나절의 소란을 털어낸다. 종일 도시를 걸어다녀 더위 먹은 지친 발가락이 지나는 타인의 구두 뒤축 소리에 장단을 맞추어 까딱인다.

 

  출발을 위한 기다림의 장소. 지하철 승강장은 한산하다. 기둥에 등을 기대고 무심히 서 있는 남자. 통로에서 갈 길을 잃고 망설이는 여자. 기다림이 지루한 한 청년은 일찌감치 승차장 출입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차량이 들어오는 방향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사람, 시계를 보며 조급해하는 사람. 모두가 한결같이 떠남을 기다린다.

 

승강장에는 등받이 없는 의자들이 드문드문 놓여있다. 기다란 의자는 자로 잰 듯이 칸을 구분해 세 개의 자리로 나누어 놓았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가 3이라고 하는 어느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3은 ‘우리’라는 협력의 의미와 ‘동행’을 연상시킨다.

  의자를 설치한 담당자도 그런 의미를 생각했을까? 디자인 한 누군가도 ‘천지인’ ‘정반합’ ‘우리’라는 ‘동행’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었을까? 그래서 이런 평범한 의자 하나에도 ‘함께’라는 철학적 사고를 숨겨두고 싶었을까? 1남 4녀의 셋째딸인 나도 이 긍정의 숫자 3의 프레임에 한몫 낀 거 같아서 공연이 기분이 좋다. 실없는 미소가 ‘풋’하고 소리를 낸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낮에는 배차 간격이 큰 탓이리라. 사랑에는 인내심과 기다림이 필요하고, 기다림에는 여유로운 마음과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대중 속에 혼자 있는 시간에는 더 그렇다. 가방 안을 여기저기 뒤져서 찾은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요즘 한창 명성을 얻고 있는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은 건반을 날아서 쇼팽의 ‘야상곡(녹턴)’을 단박에 기다림 속으로 소환한다. 섬세하고 창백한 쇼팽과 연상의 여인 조르주 상드의 강한 얼굴이 묘하게 대비된다. 한 천재 음악가의 사랑과 불안, 슬픔 그리고 쓸쓸함이 녹아있는 애절한 선율이 수 백 년을 넘어 나비처럼 가벼이 무릎 위에 기다림을 내려 놓는다.

그들의 사랑은 파국으로 끝났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음악가로 문인으로 서로를 성장시켰다. 사랑을 위한 기다림과, 인내, 도피, 이별 그리고 죽음은 예측할 수 없는 불꽃과도 같다.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서로에게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수백년 전에 마주한 ‘두 사람’의 사랑. 그들의 인연은 수 많은 시간의 자락을 건너와 영혼의 감동을 전하고 있다.

무심히 그냥 스쳐 지나는 인연은 어떤가. 그 역시 억겁의 무게를 담고 날아온 삶의 필연적인 날갯짓이 아닐까? 공연히 주변을 한번 둘러본다.

 

  운동화를 신은 여학생의 하얀 신발 끈이 풀어져 있다. 그녀는 아직 그걸 모르는 것 같다. 작은 어깨가 터덜터덜 끌려가는 두 다리처럼 지쳐있다. 절구어진 배추처럼 피곤함이 묻어있는 건조한 얼굴은 ‘세상아 날 건드리지 마’ 하고 외치는 거 같다. 운동화에 매달린 하얀 끈이 희뿌연 얼굴로 끌려간다.

 

  승강장의 전광판은 붉은 글씨를 빠르게 바꾸어 안내를 한다. ‘열차가 3 정거장 전을 출발했습니다.’ 갑자기 사람들이 움직인다. 기침 소리, 구둣발 소리, 아이의 웃음소리가 피아노 소리와 뒤엉킨다. 고단한 하루의 틈새, 그사이 잠에 빠진 옆자리의 남자도 일어난다. 나의 시간은 임윤찬의 하얀 건반 위에 머물러있다.

 

  지하라는 헐거운 공간은 어부의 그물처럼 촘촘히 엉켜있는 지상의 뜨거운 시간을 적당히 솎아낸다. 한 톤 낮은 무채색의 무심한 감정을 입혀서 소금기를 먹은 짭조름한 숨을 진정시킨다.
나의 삶은 지금 ‘정차 중’이다. 그리고 이제 출발을 기다린다. 잠시 후면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다.

  ‘출발’은 용기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삶의 모퉁이에서 마법처럼 나타나 요술봉을 흔든다. 어쩌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버린 잃어버린 기억을 다시 만날 수도 있다. 공상은 시간의 틈 사이에 소박한 작은 집을 짓는다. 가볍게 벽돌 한 장 올려놓는다.

 

  여학생은 핸드폰의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 타인의 시선은 사실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다. 길게 늘어진 하얀 끈을 무디게 밟으며 부산스레 서성인다. 잠깐만 핸드폰에서 눈을 떼면 자신의 끈이 바닥에 풀어져 있다는 걸 알아차릴 텐데. 그 하얀 끈이 세상의 먼지 더미 속에서 지쳐있는 걸 볼 수 있을 텐데.

  잠깐만이라도 고개를 들어 바닥을 내려다보기를. 세상을 바라보기를.

  그녀는 내 생각과는 다르게 점점 더 기계와의 대화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예전의 나였으면 아마도 ‘학생 신발 끈 풀어졌어.’하고 말했을 거다. 그게 친절하고 모범적인 성인의 태도라고 생각하면서.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런 ‘자기만족’을 위한 친절을 자제한다. ‘어떤 관심은 때론 유쾌하지 않은 간섭이다’라는 생각 때문이다. 지나친 선의가 타인에게는 불편함을 초래할 수도 있다. 여학생은 지금 자신의 세계 안에 빠져있다. 그게 게임이든 단순한 웹툰이든 어떤 무엇이든 그녀는 지금 자신의 시간에 집중 중이다.

 

  언젠가 사회 초년생인 딸이 한 말이 생각났다.

 “엄마! 양말을 짝짝이로 신는 거, 신발을 찍찍 끌고 다니는 거, 달그락 신발 소리 나게 다니는 거, 운동화 끈 풀고 다니는 거, 그거 다 개성이야. 일부러 그러는 거야. 그러니까 모르는 척해. 참견하지 말고”

  선의가 ‘오지랖’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 신발 끈을 풀고 다니는 거 아마도 개성일 수도 있지. 끈 밟히는 소리가 거슬리는 건 내 예민한 성격 때문일 거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지.

 

  흰색 교복 깃을 풀 먹여 다려주시던 35살의 엄마. 빳빳한 흰색 교복 깃과 하얀 운동화는 그 당시 여학생의 자존심이었다. 그때 엄마는 조심성 없는 나를 위해 운동화 끈을 리본 모양으로 매고 나서 한 번 더 돌려서 옹골지게 매 주셨다.

  “끈이란 건 네 의지와도 같은 거야. 네가 하고자 하면 언제든 너를 따라나서는 네 자아처럼. 이렇게 의지를 이렇게 단단히 묶는 거야.”

  ‘엄마의 끈’은 시간을 넘어오면서 나의 습관이 되었다. 지금도 엄마처럼 운동화 끈을 두 번 매야지만 마음이 편하다.

 

  책받침 오빠 ‘전영록’을 좋아하고 여학생 잡지 모델 ‘임예진’ 언니를 사랑했던 아이, 의미도 이해하지 못했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외우며 공연히 삶이 억울하고 슬펐던 소녀, 국사 선생님을 짝사랑해서 수업시간에 눈이라도 마주치면 공연히 얼굴이 빨개지던 수줍음 많은 여학생이었다. 키도 크고 자신감도 훨씬 높은 21세기의 여학생은 그 때의 수줍던 ‘나’와는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삶의 구조가 변하고 멋의 모양도 자꾸만 변하고 있다. 나 역시 꿈과 가치관과 사랑에 관한 생각들이 변했다. 어쩌면 ‘지금도 변하고 있는 중’이지 않을까?

  지하철 승차장은 한 톤 낮은 불빛처럼 편안하다. 그것은 기다랗게 바닥을 기어서 딸려가는 운동화 끈처럼 한결같다. 시간이 지나도, 삶의 가치관이 변해도, 생각이 달라져도 함께 가는 우리라는 끈처럼.

 

  안내판이 빛을 반짝이며 지하철이 곧 도착할 거라고 알려준다. 멀리서 사람들의 희망이 ‘덜커덩’ 다가오고 있다. 딱 맞는 시간에 꼭 어울리는 적합한 공간을 만들며 기다림이 아주 천천히 도착한다.

 

  여학생은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주변을 둘러본다. 풀어진 신발 끈을 단단히 당기고 매듭을 진다. 우리는 함께 승차장에 줄을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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