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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생의 연인    
글쓴이 : 석정원    26-05-26 23:56    조회 : 24

전생의 연인

석정원

 

조각 형 미남은 아니지만 잘생긴 그와 영상통화를 했다.

여전히 인상 좋고 점잖은 그를 보고 대화하는 게 나만의 힐링이다.

머리숱이 많고 흑갈색에 둥글둥글한 얼굴,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눈, 평소에는 무쌍인데 막 잠에서 깼을 때나 피곤할 때만 보이는 쌍꺼풀을 가진 눈, 검은 눈동자에 긴 눈꼬리가 살짝 올라갔음에도 온순해 보이는 눈매의 소유자다. 콧대는 높지 않고 콧구멍이 크고 살짝 보이는 들창코 모양이다. 1년 전부터는 안경을 쓰는데 지적 느낌이 물씬 난다. 장신구가 잘 어울리는 남자여서 모자나 목도리도 잘 받는다. 밋밋하게 생겨서 그렇다는데 이유야 어떻든 결과가 좋으니 괜찮다.

그 아래 자리 잡은 도톰한 입술은 제일 마음에 드는 신체 부위다.

어깨는 넓고 키는 큰 편이며 다리통은 굵고 손등은 두툼해서 두꺼비 손 같다. 통뼈라 원래 덩치가 큰데다가 접영까지 마스터한 덕에 뒤태는 더 듬직하다. 흠이라면 배가 많이 나왔는데 난 그래도 좋다.

단지 본인만이 스트레스를 받고 운동도 하지만 효과는 없는 편이다.

내가 개그우먼 같다고 재밌어하며 같이 있는 자체만으로도 좋다고 하는 그.

나와 닮은 점은 배려심과 FM 기질, 먹성이 좋고 미식가 적 예리한 입맛을 대표로 꼽을 수 있다.

그는 외동이며 부모와 함께 아파트 생활 중이다. 그의 침실 벽에는 내가 그려준 그림이 아직도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201561일 저녁 7시경에 그를 처음 만났으니 한 달 보름 후면 꽉 찬 12년이다.

별빛이 내린 두 눈에 천진한 웃음을 머금은 그가 단번에 마음에 들었다.

6개월 후 건강 등의 문제로 13년간의 직장과 봉사 생활을 접고 그와 2년여를 함께 살며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 채소와 과일 지중해식 음식을 잘 먹는 그의 식단은 얼큰하고 국물 요리를 자주 먹던 나의 망가진 장들을 개선 시켰다.

귀여움을 장착한 그의 입은 보배롭다. 다양한 음식을 잘 먹는 건 기본이요 사려 깊은 말투와 이쁜 말씨는 경상도인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플루트도 배운 지 4년이 되었고 제법 사랑을 뿜어낼 줄도 안다. 새 음식을 먹을 땐 혀끝으로 살짝 맛부터 보고 입안에서 굴려 음미를 하며 엄지척을 해준다. 똑똑 박사인 그는 공룡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으며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문해력도 남다르다. 손이 크고 두툼해서 섬세한 건 못할 것 같았는데 클레이 점토로 만든 작품도 많다.

요리도 좋아해 피자 고기 볶음밥 잡채 파스타 등 뭐든 옆에서 잘 도와준다.

단 친구들과 게임을 할 때는 예외다.

 

나와 판이한 점은 그는 집돌이이다. 난 방랑벽이 짙게 깔려 있어 집에 있으면 답답하다.

발동하는 역마를 매일 시간과 장소가 다른 일터로 가는 지하철 출퇴근길로 풀며 살고 있다

그를 만나면 그의 뜻에 따라 집순이가 되어 삼시세끼 준비에 여념이 없다.

고단하고 지난 한 서울 생활을 잠시 잊고 아이들 키우던 20대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일탈의 묘미를 한껏 더 느낄 수 있다.

KTX 창밖으로 펼쳐지는 세상을 만끽하며 조용한 카메라로 사진도 찍고 바다를 영상에 담아두기도 한다. 여기저기서 피어나는 맛있는 냄새에 한 몫 거드는 재미, 그리운 홍익회를 대신해 미리 사 들고 온 음식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열차 안은 사람 냄새 그득하다. 앞 좌석 등에 꽂힌 KTX 매거진 월간지를 펼쳐 보는 것도 필수 코스다.

나의 고향 안동과 그가 사는 곳, 두 도시가 나란히 실린 기사를 보니 허 참 신기하다고나 할까? 기분이 묘했다. 늘 스치는 정동진역은 매번 알 수 없는 설렘이 따라온다. 여름엔 짙푸른 환한 바다와 겨울엔 눈 내린 바다에 높낮이가 다른 파도, 나름의 운치를 뽐내는 동해는 늘 싱그럽다. 이번 겨울은 눈이 또 얼마나 오려나? 재작년에는 눈밭에 뒹굴며 대형눈사람을 처음으로 양껏 만들었다. 눈코입과 팔을 만들어 주고 목도리도 둘러 주었다. 인증사진을 찍고 추억의 책장에 저장했다. 나 어릴 적에는 눈을 쓸고 연탄재를 뿌리고 치우고 일이 많아 눈을 좋아하면서도 정작 놀지는 못했었다.

 

드디어 동해역이다.

그가 좋아하는 딸기를 실은 캐리어를 끌고 대합실에 들어서니 코앞에 딱 서 있는 멋진 어린 청년!

할머니

석아

부둥켜안으니 긴말이 필요치 않다

옆에서 내 가방과 캐리어를 받아 드는 큰딸은 안중에도 없다.

손주는 전생에 연인이었대

어느 날 들었던 말만 허공에서 메아리칠 뿐.

우리 둘은 삼척집으로 가는 SUV 차 안에서 조잘대며 회포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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