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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글쓴이 : 김희정    26-05-14 09:18    조회 : 50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hwpx (67.8K) [0] DATE : 2026-05-14 09:18:17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김희정

 이른 주말 아침, 딸아이가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아침잠이 많은 아이라 웬일인가 싶었는데 믿기 어렵게도 공부할 게 있어서 알람을 맞춰 놓고 잤다고 했다. 기특한 건 딱 거기까지다. 공부하겠다던 아이는 책을 읽고 피아노를 치며 끝도 없이 수다를 떨다가 일찍 일어났더니 피곤하다며 다시 자러 가겠다고 했다. 나는 차라리 아침밥을 일찍 먹이는 게 나을 거 같아 서둘러 상을 차려 아이와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숟가락을 들던 딸이 갑자기 엄마, 우리는 모두 등급 매겨진 소고기 같아요.”

그게 무슨 말인가 물었더니, “우리 모두를 성적으로만 등급을 매겨서 최고로 우수한 아이들만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니까요.”

모의고사든 학교 시험에서든 항상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는, 전 과목 1등급의 전교 석차 1등인 아이가 같은 반에 있다. 3년 후 학교의 자랑이 될 그 아이는 특별 관리의 대상이기에 학기 초부터 선생님들의 관심이 남달랐다고 한다. 교실에 들어오는 교과목 선생님들은 ㅇㅇ가 누구냐며 한 번씩 확인했고, 이 과정에서 누구는 우월감을 다수의 아이는 열등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여학교에서는 예상보다 시험이 어려워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거나 1점 차이로 등급이 나뉘는 경우에는 교실이 눈물바다가 된다고 한다. 점수라는 것이 대체 뭐길래 줄을 세워 아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건지...올해 고등학교를 입학한 아이의 학업 스트레스가 찾아온 거 같았다.

 

딸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자신의 꿈을 찾지 못한 아이들이 대부분이고, 설사 꿈이 있다 하더라도 그건 부모님이 정해준 것이지 자신들이 진정 원하는 바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아이들의 학업 스케줄은 꿈을 탐색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쌍둥이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만나면 아이들이 장래에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물어보는 일이 많아졌다. 아들은 아직 고민 중이지만 딸은 오래도록 가져 온 꿈이 있다. 사육사가 되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진로에 관한 질문을 할 때마다 작은 목소리로 머뭇거리며 답한다.

사육사가 되고 싶대.” 그러면 희한하게도 한결같은 반응을 보인다. 성적이 괜찮으니 수의사를 시키라고 한다. 앞으로 1인 가구는 더 증가할 것이고, 그러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날 테니 수의사야말로 전망 밝은 직업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아이가 원하는 것이 아닌 부모 욕심으로 세상의 기준에 아이를 끼워 맞춰 모두 같은 방향으로 달리게 하는 현실에 피로감을 느끼면서도 나 역시 이 현실을 부정할 수만은 없다. 그래서 딸에게 기왕이면 수의사가 좋지.” 했더니 하루 종일 아픈 동물들만 보고 있으면 너무 슬플 것 같아 그 일은 못 하겠다고 한다.

 

딸은 자기만족이 없는 직업과 평생을 함께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핑크 돌고래를 보기 위해 아마존강에 가겠다고 말했던 아이이다. 동물에 대한 애정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동물의 출산을 지켜보고, 그 새끼가 자라서 자신이 주는 먹이를 먹고, 눈을 맞추며 교감을 하고 자신을 알아봐 주는 과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싶다고 한다. 꿈은 명사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사로 말하는 것이라 했는데, 정말 꿈이 구체적이고 의지는 확고하다. 그러면 보통의 엄마인 나는 보통의 사람들이 말하는 일반적인 생각을 아이에게 말한다. 직업은 단순히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남편도 내 생각에 살을 붙여 현실적인 조언을 생각해 내느라 머릿속이 분주할 것이다.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할 때,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해 문집에 실릴 글을 작성해야 했다. 그때의 마음이 궁금해 아이 방에 가서 그것을 펼쳐봤더니, ‘네가 무엇을 하든 너의 꿈을 지지하고 응원해.’ 라는 아주 이상적인 부모의 태도를 보여주는 글을 썼다. 그런데 지금은 거기에 자꾸 욕심들이 더해진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를, 그 일이 사회적으로도 인정받기를, 경제적으로도 풍족하기를 등등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내가 뭐를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살았던 시간보다 이 아이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까? 딸의 휴식은 동물에 관한 영상을 보며 미소를 짓는 일이다. 그리고 동물에 관한 지식을 쏟아 놓을 때에는 두 눈이 반짝인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꿈을 말하지 못하는 건 자신의 꿈이 존중받지 못할 것 같아서라고 하는데 자신의 꿈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아이에게 사육사는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야. 그리고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직업에 대한 차별이 존재해.” 같은 말을 삼키지 못하고 해버렸다.

직업은 사회에 기여하면서 그 의미와 가치를 알게 되고 보람도 느끼게 되는 거야.”라고 아주 교과서적인 말도 더했다.

그러니까요. 사육사가 있기에 멸종 위기의 동물들도 동물원에서 보호를 받으며 잘 지낼 수 있으니 그게 바로 보람 있는 일이고 기여하는 삶이잖아요.”

그러면서 자신은 단지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고 돌보는 일을 하는 것뿐 아니라 동물들에게 필요한 놀잇감도 만들어 주고, 동물원에서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남기고 싶다고도 한다.

딸의 방에는 금이 붕이가 산다. 아이들은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지만 알러지가 있어 반려동물을 키우지 못하는 남편 때문에 차선책으로 우리 집에 오게 된 금붕어들이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금이가 기운이 없고 움직임이 덜하다며 딸의 걱정이 시작되었다. 딸은 인터넷을 검색해 금붕어에 관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동물병원 홈페이지 Q&A에 질문을 남겼다. 금붕어는 특수 동물로 분류되어 집 근처 동물병원에서는 진료할 수 없다길래 다음 날 아침 딸을 등교시키고 금붕어들을 사 왔던 가게로 데려갔다. 주인은 약을 넣어보고 상태를 살피더니 그리 긍정적인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혹시 모르니 며칠 동안만 돌봐달라는 부탁을 했고, 실망할 딸의 얼굴이 떠올라 금이와 비슷하게 생긴 다른 한 마리를 데려왔다.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는 딸의 마음에 진심이 느껴져 나의 오전 시간을 금붕어 가게를 오가는데 모두 보냈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딸의 꿈은 곁에서 누가 알려준 것도, 누군가의 뜻에 따른 것도 아닌 온전히 자기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한 것이다. 사회가 너무 급격히 변해 한 가지 직업만으로 평생을 살 수 없는 세상이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사회가 정해 놓은 보편적 삶의 기준을 따르는 것 보다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현명한 삶의 태도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 생각을 아이에게 실제로 적용하는 일은 왜 이리 어려운 걸까?

 

딸은 생각으로는 벌써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규모인 E 동물원에 취직한 듯하다. 이다음에 자신이 직원 혜택으로 자유이용권을 선물해 줄 테니 내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놀이기구도 타고 사파리 구경도 하라며 이른 선심을 쓴다.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할 때면, 나는 나이가 들어 놀이기구는 탑승 제한이 될 수도 있을 텐데 그다지 반가운 선심은 아닌 듯하다. 그래도 아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며 즐거워한다.

 

여전히 마음에는 아쉬움이 남아 딸이 수의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완전히 접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스러운 동물들의 영상을 볼 때마다 손뼉을 치며 귀여워.”를 연신 되풀이하고, 나 역시 내 시선을 사로잡은 귀여운 동물들의 사진을 아이에게 전송한다. 사회적 편견이나 타인의 시선에 무게를 두지 않고 지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어쩌면 용기가 필요한 일일지 모른다. 딸은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겠다고 했고, 그런 딸에게 네가 무엇을 하든 너의 꿈을 응원하고 지지해.’라는 말을 진심을 담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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