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강의실 >  창작합평
  영민이 삼촌    
글쓴이 : 백승희    26-04-02 17:59    조회 : 73

 

                                              영민이 삼촌

 

                                                                                         백승희

 

영민이 삼촌은 9남매 중에 막내다.

영민이 삼촌은 결혼을 안 했다.

영민이 삼촌은 35살에 죽었다.

 

아빠, 엄마의 결혼식 사진에 11살의 영민이 삼촌이 있다. 똘망똘망한 얼굴에 남방을 쫙쫙 끌어넣어 입은 바지는 명치께까지 바짝 올라가 있다. 차렷 자세로 서 있지만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내가 태어났을 때 영민이 삼촌은 13살이었다.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첫 손주다. 결혼 전인 삼촌들과 고모들 손에서 손으로 옮겨지며 안겨 있는 나를 엄마는 정작 많이 못 안아봤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는 말했다.

영민이는 겁나서 널 안지도 못했다. 그래도 이 사람 저 사람 쫓아다니며 너를 제일 많이 본 게 영민이다.”

 

나를 낳고 엄마는 연년생으로 바로 동생을 낳았고, 그해 첫째 삼촌이 결혼을 했고 다음 해에는 첫째 고모가 결혼을 했다. 둘째 삼촌도 곧이어 결혼했고 다들 앞다투듯이 아기를 낳았다. 그것도 둘 이상을.

할아버지 집은 방이 8칸이 있고 정원에는 큰 모과나무 밑에 작은 연못도 있는 멋지고 우아한 한옥이었는데 금세 고만고만한 조무래기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렸다.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어느덧 건장한 청년이 되어버린 영민이 삼촌은 우리들의, 아니 나를 뺀 우리들의 그네가 되고 미끄럼틀이 되고 철봉이 되었다. 나는 왠지 그런 영민이 삼촌이 안쓰럽게 보이기도 했고 나 딴에는 어른스러운 척을 해야 해서 영민이 삼촌 놀이터는 이용을 안 했다.

! 바보같이힘들지도 않나

! 내려와, 그만해! 우리 이제 얼음 땡하자!”

나는 봤다. 그리고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애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벌게진 목덜미와 팔뚝을 드러낸 채 헤벌쭉 웃으며 서 있던 러닝셔츠 차림의 영민이 삼촌을. 그 뜨거웠던 여름보다 더 싱싱하고 쨍했던 그의 젊음을!

 

우리는 정신없이 자랐다. 그리고 영민이 삼촌을 더는 찾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내 나이 스무 살에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중환자실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타서 재가 된 듯 까맣고 바스러질 듯 야윈 모습으로.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영민이 삼촌은 본인이 뜻한 바 있어 대학의 특수 교욱학과에 들어갔단다. 그리고 졸업 후 바로 장애인 특수 시설에 취업도 했단다.

그러나 그곳은 세상 순했던 삼촌을 열혈 투사로 바꿔 놓았다. 시설의 비리와 여러 장애아들에게 일어났던 성폭력 문제. 그들은 내부고발한 삼촌을 집요하게 괴롭혔고 죽음으로 내몰았다. 죽지 않고 싸웠지만 싸움이 끝났을 때 그는 죽은 몸이나 다름없이 되어 있었다.

 

성당 사무실을 찾았다.

담담히 미사 봉헌봉투를 꺼내어 그 위에 태어나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천천히 적었다.

백영민 (미카엘)’

의식도 없이 눈물이 두둑 떨어져 봉투를 적셨다.

319일은 그의 기일이다. 따스하고 푸르른 봄날에 미처 펴보지도 못한 여리고 무결한 꽃잎 하나가 소리 없이 졌다.

삼촌이 그렇게 귀하게 여겼다는 첫 조카는 어느새 50이 넘는 나이가 되어 35살의 삼촌을 뼈가 아픈 심정으로 끌어안는다.

 

그가 너무 보고 싶다

 

 

 

 

 


 
 

백승희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5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등단 전 합평에 통과한 작품 올리는 방법 웹지기 08-11 8250
공지 ★ 창작합평방 이용 안내 웹지기 02-05 96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