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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갈비    
글쓴이 : 서미숙    25-12-09 17:31    조회 : 3

                                                             닭 갈 비

 

                                                                                                                                                                                                        서 미숙 (천호반)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입학하였다. 어수선한 1학기가 벌써 끝이 나고 지금은 여름방학이다. 전공은 서양철학이다. 학교에 적응 하느랴 한 학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입학하면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 계획도 세워보고 학교생활을 야무지게 잘할 것이라고 다짐도 했었다. 하지만 막상 학교를 다니다 보니 강의실 찾는 것부터 헤매야 했다. 연구동으로 가야 하는 요일에는 상허관으로 갔었고.. 상허관으로 가야 될 때는 연구동으로 갔다. 남편이 학교에 태워다 줄 때도 남편 또한 헷갈렸나보다 나처럼 연구동에 내려주어야 할 땐 상허관에 내려주고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어 주고 떠나곤 했다. 강의실에 들어가서도 헷갈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저 어린 친구들은 누구며 나는 누구란 말인가? 또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니 다행히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학생이 몇몇 보였다. 그중에 한 사람 이 ㅇㅇ선생 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태리 국립음악원을 졸업하고 국제 콩쿨 대회 1위 등 많은 스펙을 가진 유망한 성악가였지만 목에 이상이 생겨 더 이상 성악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차에 철학에 관심이 생겨 공부하게 되었다고 했다. 토론할 때 이 선생이 발언을 하면 많은 배경지식으로 우리 학생들의 귀를 호강시켜준다. 또 이 선생 옆에 주ㅇ선생 이란 사람이 있다 이 선생보다는 10살 정도 어리다고 했다. 주 선생은 정신분석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주 선생과 이 선생은 항상 단짝이다. 그들은 이미 수료한 상태지만 논문을 아직 못 써서 청강 중이라고 했다. 주 선생도 이 선생과 마찬가지로 배경지식이 많아 둘이 주고받고 케미가 좋은 단짝 같았다.

  하지만 주 선생은 약간 예민한 구석이 있었다. 우리 철학과 단체 톡방이 있는데 조교가 공지사항 외에는 거의 다른 용도로 사용은 안한다. 그런데 어느 날 밤 12시에 주 선생이 카톡에 이상한 말을 올리고 우리 중에 몇 명을 타깃으로 너희들의 눈동자를 나는 봤다느니”.. “비판을 하려거든 철학적으로 비판하라는 둥 비난을 표적으로 삼지 말고 다 덤비되 이론으로 덤비라는 둥 밤새 톡에서 혼자 떠들어 댔다. 그렇게 긴 시간 혼자 사투를 벌이고 새벽 6시 정도 되어서야 정신이 들었는지 제가 만취 상태로 엉뚱한 곳에 이상한 말들을 쏟아 놨다며 이점 깊이 사과 드린다는 글을 올리고 단체 톡에서 나갔다.

  나는 그 글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신세계다. 우리 모두는 타인에게 민폐 끼치지 않기 위해 항상 말조심 몸조심하며 아슬아슬 살아간다. 그런데 마음껏 단톡에 자기의 속마음을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쏟아내는 모습을 보니 그 주 선생이 밉지만은 않았다. 어느 누구도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수업이 있는 날 주 선생은 결석했다. 이 선생한테 주 선생 안 나오냐고 물어봤다. 일이 있어 못 온다고 했다. 그 일은 그렇게 마무리되는 것 같았다. 그 다음 주에 주 선생은 수업에 나왔다. 우리들은 여느 때와 똑같이 수업에 임했다. 주 선생은 약간의 눈치는 봤지만 이내 평온함을 찾았다. 나중에 조교로 부터 들은 얘기지만 논문 예비발표가 있던 날 주 선생이 발표하면서 몇몇 친구가 논문 내용에 대한 궁금증과 반대의견을 내었던 게 주 선생이 술을 마시고 우리에게 주정을 한 원인이라고 했다.

  또 내 옆자리에는 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중년의 여느 주부 같지 않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권ㅇㅇ 선생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녀 책상 위에는 우리 교재인 니체의 비극의 탄생책과 여러 권의 두꺼운 책들이 놓여져 있었다. 깨알 같은 글씨가 노트와 책에 별 박히듯이 빼곡했다. 열심히 공부한 흔적이 역력했다. 긴 생머리에 앞머리는 눈썹 위로 일자로 자르고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키는 크고 캐주얼한 후드티에 공부하는 중년의 학생 같았다. 성격이 좋아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나 또한 상쾌한 성격에 주고 받고 떠들어 댔다. 드디어 나이공개를 했는데 우리 둘은 동갑이었다. 우리 둘은 세상에 이런 일이 있냐며 서로 기뻐서 난리도 아니었다. 바로 반말로 이름을 부르며 수업 끝나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녀와 나는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서로를 알아 가느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녀는 나랑 나이는 같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열심히 자기일만 하며 살았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직업은 변호사라고 했다. 이제는 은퇴하고 다른 계획을 하고 있다고 한다. 교도소에 수감 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 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고 했다. 석사 끝나고 박사과정이라고 했다. 그 뒤로 우리는 수업 끝나고 항상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그녀는 음식을 먹을 때면 단백질과 야채만 먹는다. 밀가루 인스턴트 음료수를 절대로 먹지 않는다. 집에서 쉴 때는 공부와 등산을 한다고 했다.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한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그녀만큼은 아니다. 나는 집에서는 철저히 하지만 밖에 나와서는 때에 따라 밀가루 음식도 먹고 음료도 마신다. 나는 액체이고 싶다. 사이사이 살살 흐르는.. 고체는 재미없지 않을까? 1학기 내내 그녀와의 저녁 식사 메뉴는 닭갈비였다.

  또 다른 수업의 박ㅇㅇ선생 이란 사람이 있었다. 중년의 나이인 그녀는 밝은 성격의 소유자다. 성격도 시원해서 먼저 말도 하고 잘 웃기도 한다. 그녀도 나랑 동갑이라고 했다. 대신 12월생이라고 했다. 우리도 편한 사이가 되었다. 그녀는 결혼도 하고 나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도 있다고 했다. 권 선생과는 또 다른 편안함이 있었다. 역시 인간으로 태어나면 해볼 건 다해봐야 세상을 품을 수 있지 않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웬지 그녀 옆에 있으면 나의 장난기가 발동해서 수업시간에 교수님과 함께 웃는 시간이 많았다. 그녀는 예술 철학 박사과정이라고 했다. 그녀 또한 수료한 상태고 논문만 쓰면 졸업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나한테 힘든 공부를 왜 시작했느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녀는 붓글씨와 매화 그림 등 손재주가 보통 좋은 게 아니었다. ㅇㅇ에 화실도 갖고 있다고 했다. 놀러 오라고 해서 명예교수님과 현재 교수님 성악가 이 선생 등 몇몇이 초대받아서 그녀의 화실을 방문했다. 맛있는 식사와 차를 마시며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또 그녀가 간단하게 그린 부채선물을 주었다.

   공부에 목말라 공부만 하면 재미없다. 공부도 하며 사람 구경도 할 수 있다. 젊은 친구들의 세계도 자세히 볼 수 있다. 누군가는 대학원 가면 젊은 친구들이 눈치 준다는 말도 한다. 그런데 우리 철학과 그렇지 않다. 어리지만 의젓하다. 말수도 없다. 예의가 있고 할 말만 한다. 그 의젓함과 예의에 나는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멋진 곳에 잘 왔다고 생각한다. 대학원 공부를 할까 말까 마치계륵닭갈비같은 일로 고민 했지만 닭갈비 먹는 일에는 익숙해 져야 한다. 2년 동안 공부와 사람을 사유하며 지낼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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