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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잎새    
글쓴이 : 고은영    26-03-02 12:38    조회 : 22
                                                                 마지막 잎새 
                                                                                              고은영

 알래스카에도 가을이 왔다. 사방이 붉고 노란 단풍으로 물들었다. 빛깔이 너무 고와서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추운 곳이라 그런지 알래스카의 단풍은 한국의 그것보다는 훨씬 색이 연하다. 처음엔 밋밋한 단풍색이 영 눈에 차지 않았었는데 십여 년을 겪다 보니 그 아름다움을 알겠다. 곧 닥쳐 올 추운 지방의 겨울이 어떠할지를 알기에 마지막으로 제 색을 드러내며 불타오르는 듯한 모습이 오히려 애잔하다. 바람이 불자 나뭇잎들이 군무를 춘다. 그 새 단풍잎 몇 개가 떨어졌다. 너무나 짧은 가을이 아쉬워서 마음이 급하다.
 
 15 년간 함께 일하던 이 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병원에 입원한 뒤로 매일 안부를 묻는 메시지를 주고받았는데 며칠 전부터 좋지 않은 답변이 온다.
  
 -최악이에요
 -자연사하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심장이 멎으면 살릴 생각 말고 그냥 두라고 했어요. 아까 서류에 싸인했어요.

 이게 다 무슨 황망한 소리인가? 건강에 대해서는 늘상 과장이 심한 편이라 설마 설마 하면서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이선생님과 친하게 지내던 동료를 병원에 보냈다. 사정을 들어보니 기가 막혔다. 다음날 두시에 목사님을 모시고 임종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후에는 현재 100을 내보내고 있는 기계의 수치를 점점 낮춰 결국엔 죽음에 이르도록 결정했다고.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고통이라도 줄이도록 대량의 진통제를 놓는 것뿐이라니, 이것이 산 사람을  눈앞에 두고 논의된 일이다. 

 꼭 한 번은 봐야 겠어서 다음날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았다. 응급실 옆에 붙어있는 5층짜리 호스피스 병동은 치료를 위한 병동이 아니라 마지막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잠시 머무는 곳이라고 들었다. 그 때문인지 엘리베이터 앞에는 커다란 십자가와 예배실이 양쪽으로 두개나 있었다. 하나님이 그 곳에 계신다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론 죽음에 대한 예고 같아서 등골이 오싹했다. 

 “울지 마.  울지 마… “
 이선생님은 날 보자마자 손을 휘휘 저었다. 그 새 얼마나 살이 빠졌는지 침대 시트가 덮여 있는데도 앙상하게 뼈만 남은 다리의 형체가 느껴졌다. 여러 번 링거를 꽂았던 자리인 듯 오른손 위에 시퍼런 멍자욱이 보였고 일주일간이나 음식을 먹지 못했다더니 성인 남자 몸무게가 사십 킬로그램이 채 안 된단다.
 “병원에 와서 지금까지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는데•••”
 이선생님이 눈물을 훔쳤다. 이 선생님과는 알래스카에 막 도착해 첫 직장을 가졌을 때 처음  만났다. 나는 초보 요리사로 이선생님은 주방 보조로 함께 손을 맞췄다. 내가 슈퍼마켓을 시작한 뒤에는 직원으로 자리를 지켰으니 꼬박 십오 년을 함께 한 셈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 선생님이 저 소득자 메디케이드 프로그램의 수혜자라 병원비 걱정은 없었다는 점이다. 할 수 있는 검사도 다 받았고 최선을 다했지만 의사를 잘 못 만나서인지 치료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폐의 팔십 퍼센트가 죽어 버렸다.
 “의사 놈을 죽일 수도 없고…“
 알래스카는 병원 시설은 훌륭하지만 시골까지 오려고 하는 의료진이 적어서  아무래도 의료 환경이 좋지는 않다.
 지난번에도 직원 하나가 전기톱을 쓰다가 날아가는 쇳덩이에 손가락을 다쳤는데 응급실 의사의 허술한 처치 때문에 다친 뼈가 감염되어 아까운 손가락 한마디를 잘라낸 일이 있었다. 알래스카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면 폐에 들어간 피를 오랫동안 방치해서 굳어 버리는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마르긴 했지만 얼굴색이 맑아 코에 끼고 있는 호흡기만 아니라면 도저히 죽음을 앞 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병실로 청소부가 들어왔다. 밝은 얼굴로 작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빗자루 질을 하고 쓰레기통을 비웠다. 날렵한 동작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했다. 
 그곳은 호스파스 병동이었다.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그 방애서 죽어 나갔을 지, 남긴 물품을 정리한 것도 그녀일 텐데 그런 광경도 매일 보다 보면 익숙해지는 걸까? 생각해 보면 어차피 삶이란 그런 것이다. 내일 내가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세상은 아무 일 없이 굴러갈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무신경한 청소부가 야속했다.

 “진짜 그러실 건 아니죠? “
 차마 호흡기를 뺄 거냐는 말을 입에 올릴 수는 없었다. 
 “나도 살고 싶죠… 어제보단 상태가 나아요. 산소가 늘 100으로 공급되었었는데 이 놈들이 언제 50으로 내려 놨더라구요. 그런데도 견딜 만 하고 다리에 힘이 없어 맨날 침대에서 볼 일을 봤었는데 오늘은 화장실도 다녀왔어요. “
 폐만 빼고는 신장이고 간이고 심장까지 다 멀쩡하다는데 정말  방법이 없는 건지  가슴이 꽉 막혔다.
 ”죽기 싫어요. 어차피 가망도 없다는데 포기해야 맞는 거겠죠. 호흡기 없인 십초도 못 버티는데? “
 “포기하지 마세요. 다 잘 될 거예요”
 쓸쓸한 죽음이 되리라는 걸 알고 있지만 나는 자꾸 미련한 소리만 한다. 병실을 나오는데 뒤늦게 가슴이 벌렁거리고 몸이 떨려 왔다. 더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한국에 있는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알래스카에 함께 와 이년정도 공부한 뒤 딸아이는 다니던 대학을 마치러  혼자 한국으로 돌아갔다. 중학생 때부터의 친구 다정이와 십 년째 함께 지내고 있는데 그 다정이가 고모가 되었단다. 다정이 동생이 캐나다에서 결혼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벌써 첫아이를 낳았나 보다. 딸처럼 생각하는 아이가 고모가 되었다니 그 와중에 나도 할머니가 된 것 같이 기뻤다.
 “이것 좀 봐. 애기 발이 손가락 한마디만 해. 너무 신기해…“
 메시지에 보내진 사진을 보니 정말 작고 예뻤다. 갓 태어난 아가안대도 머리카락이 새카맣다. 딸아이를 낳았을 때가 생각나 뭉클했다. 
 “너도 그렇게 작았는데… 처음 봤을 때 너무 빨갛고 못 생겨서 아 얼굴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나 했지.”
 딸아이가 킥킥 웃었다. 생각해 보면 생명이 탄생할 때는 진통을 겪고 있는 엄마만 힘든 것이 아니다. 그 작은 생명도 주먹을 꼭 쥐고 세상을 맞이하려고 용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잘 왔어. 살다 보면 기쁜 일도 슬픈 일도, 감당하기 벅찬 시련도  있겠지만 태어날 용기를 내어 주어 고마워.’
 갓 태어난 아기에게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냈다. 자금은 이런 축하만으로도 충분하다.

 -살아 보기로 했어요

 이선생님에게서 기다리던 문자가 왔다. 연명 치료를 포기한다는 서명도 철회했단다.
 
 -한 번 노력할게. 또 연락해요.

 다음을 기약했다 . 모든 걸 포기하고 산소 호흡기를 제거하겠다던 어제와는 달랐다. 최후의 순간까지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 마음이 장하다.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유리창에 빗물이 맺힌다. 아침만 해도 여럿 매달려 있던 단풍잎이 낙엽이 되어 바닥을 뒹굴고 있다. 간신히 하나 남았다. 가지 끝에 매달려 있는 모양새가 아슬아슬하다. 내일이면 떨어져 여기 저기 발에 치여 굴러다닐 수도 있고  얼마간 시간이 흐르면 그마저 형체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최선을 다 해 매달려 나 여기 있다고 외치고 있다. 붉다는 한 마디로는 표현할 수 없는 깊고 오묘한 색감이 처연하도록 아름답다.

 바람이 분다. 끝끝내 남아 있는 잎새 하나가 너무 아름다워 나는 오래도록 숨죽여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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