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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밥 위에 얹은 봄    
글쓴이 : 김은비    26-03-23 13:49    조회 : 795

김밥 위에 얹은 봄

 

김은비

 

매년 4월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

올해도 꽃 피는 봄이 돌아왔다. 화사하게 봄맞이하는 꽃들과 달리 내 마음속에서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재택근무 계약 만료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뇌병변 중증 장애인인 나는 평일마다 4시간씩 뉴스스크랩을 하는 계약직 근로자로 1년마다 재계약을 하고 있다.

 

은비야, 411일 금요일에 연차 써. 꽃구경 가자

 

내가 매년 봄 기다리는 엄마의 목소리다.

갑자기 힘이 솟아올라 얼른 오늘의 일을 마치고 연차를 신청했다. 재계약에 대한 압박감이 봄바람처럼 가벼워졌다.

언제나 그렇듯 밖으로 드라이브하러 가는 날은 마음속에서 기분 좋은 봄바람처럼 살살 돌아서 일상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꽃구경 가기로 한 당일날 아침, 일찍부터 눈이 떠졌다. 원래 어디에 나가거나 바깥 구경을 하러 가기로 한 날이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다. 엄마는 새벽부터 김밥을 싸느라 분주했다. 참기름에 버무린 고소한 밥 위에 시금치, 달걀, 단무지, 어묵 등이 엄마의 손길 따라 가지런히 놓였다. 시중에 파는 소고기김밥, 참치김밥, 삼겹살 김치김밥 그 어떤 것도 엄마표 김밥 맛을 따라오지 못한다. 엄마의 김밥을 먹을 땐 천진난만한 어린애처럼 마냥 신이 난다. 옆에 앉아 주워 먹는 김밥 꽁다리는 그중에서도 최고의 재미다. 우리 자동차는 김밥 도시락통을 싣고 연례행사인 4월 봄인 그날도 꽃구경을 하러 떠났다.

우리 가족에게 꽃구경은 특별하지 않다.

그냥 미리 준비한 김밥, 치킨, 음료를 쉬엄쉬엄 자주 먹고 하루 종일 피어있는 꽃들을 보다가

해가 질쯤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벚꽃의 살랑거리는 손 인사를 받으며 현재 살고 있는 충남 홍성 근교 봄꽃들이 활짝 만개한 장소에 도착했다. 장소는 특별히 정해지지 않는다. 홍성, 광천, 서산, 안면도 등 봄꽃들이 만개한 거리를 차로 드라이버 하는 게 우리가 하는 꽃구경의 하이라이트다.

내가 차에서 내리기 쉽지 않아 우리의 소풍은 차에서 이루어진다. 준비한 김밥과, 치킨, 음료수를 쉬엄쉬엄 먹고 창밖으로 보이는 다양한 꽃 사진을 찍고 질리도록 바라보다가 오후 4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남들처럼 꽃밭을 거닐면서 사진을 찍지는 못하지만 해마다 나가는 이 나들이는 매년 재계약해야 하는 나에게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다시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소중한 시간이다.

차창 너머로 손을 흔드는 꽃들이 내년에 다시 만나자고 말하는 것 같다. 다시 답답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이지만, 변함없는 엄마의 김밥과 바깥세상에서 반갑게 맞아주는 봄이 있는 한 난 오늘을 버텨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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