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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에 드리워진 엄마의 그림자    
글쓴이 : 신은영    26-04-28 09:37    조회 : 101

삶에 드리워진 엄마의 그림자

신은영

 

어느덧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난 지 4년이 되었다. 엄마는 동갑인 아버지가 5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후, 30년이 훌쩍 지난 86세의 연세에 돌아가셨다. 생활력이 강하고 많은 배움 없이도 영민하며 의자가 굳센 분이었다. 가족에게는 삶의 기둥이었고, 굴곡진 세월 속에서 수많은 사연을 품고 살아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큰오빠네와 함께 살며 자식들의 효도로 노년의 삶을 보상받는 듯했지만, 직장암과 대장암을 앓게 되었다. 직장암은 엄마의 항문을 앗아갔고, 장루 주머니를 달고 살아야 했던 마지막 생애는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평소 깔끔한 성품인 엄마는 눈앞에 보이는 변()의 존재를 용납하지 못해, 장루 주머니를 자주 비워내고 씻어내곤 했다.

암이 재발했을 때도 엄마는 끝내 자신의 병을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엄마 생의 마무리는 고통으로 점철되었다. 몰아치는 고통 속에서 마지막 인사도 남기지 못했다. 위독하던 며칠 동안 큰언니와 나, 큰 새언니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교대로 엄마 곁을 지켰다. 큰언니가 간호할 때는 의식이 있었지만, 내가 곁을 지킬 무렵에는 고통이 심해져 제정신이 아니었다. 연신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가끔은 양손을 휘저으며 어무이를 외쳤다. 허공에 떠 있는 손을 붙잡아보았지만, 나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새언니가 간호하던 날, 더 강력한 진통제를 놓아도 고통은 끝이 없어 엄마는 죽음을 앞둔 상태가 됐다. 주변에 누가 되지 않고 편안히 마무리할 수 있는 1인실로 옮겼고,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 떠나셨다. 소식을 듣고 달려가 만져본 엄마의 손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엄마를 보내고 난 뒤에야 우리는 직장암 수술이 엄마의 삶의 질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깨달았다. 수술하지 않고 병을 받아들이며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았다면 어땠을까. 엄마를 떠나보낸 후, 형제들과 자주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한동안 새언니는 엄마 방을 정리하지 못했다. 가까운 곳에 모셔져 있음에도 굳이 엄마를 찾아가지 않았다. 냉장고 문을 열 때, 햇살 좋은 날 옥상 장독대에서, 혹은 열려 있는 화장실에서조차 엄마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기에 따로 찾아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녀는 어디에서도 엄마를 만날 수 없다는 상실감에 시달렸다. 그렇다고 새언니가 엄마와 딸처럼 각별한 애정을 나눈 것은 아니었다. 다만 20여 년이 넘게 함께 살며 서로의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익숙해진 사이였다. 엄마가 떠난 뒤 집안 여자들은 엄마의 귀금속을 나누어 물려받았다. 엄마가 정해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엄마의 유품을 하나씩 나누자는 새언니의 배려였다. 내가 받은 것은 커다란 진주 반지와 진주 펜던트였다.

엄마는 자신의 마지막을 정리하지 못한 채 떠나셨다. 그 사실이 못내 아쉽다. 병상에 누워계시던 며칠 동안이라도 삶을 돌아보며 즐거웠던 일, 슬펐던 일을 도란도란 이야기해 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남겨질 우리 형제들에게 한마디 당부라도 남겨주셨다면, 고통 속에서도 봄날을 회상하며 엷은 미소라도 지어줬더라면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남겨진 자의 마음 편함을 구하게 되는 몹쓸 이기심이라 할지라도. 죽음 이후의 세계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상태이고, 남겨진 자들은 망자의 부재로 인한 아픔을 고스란히 짊어지게 된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나는 죽음을 앞둔 순간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일, 남겨진 이들에게 남기는 말, 죽음을 맞이할 장소까지. 그러다 문득, 내가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모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주변이 정돈된 상태를 좋아하고, 어떤 상황이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상태를 선호한다. 내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위해서라도, 나는 주변의 상황을 올바르게 아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정리하고 가는 사람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누구나 생의 시작은 내 뜻대로가 아니었지만, 마지막은 자신의 의지로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지나온 나날을 반추하며 삶을 정리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이별을 차분히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큰 복을 받은 듯할 것이다. 근래 들어 생의 마지막을 떠올리며, 떠나는 자와 남아있는 자 모두에게 아픔을 덜 남겨줄 방법이 무엇일까를 자주 생각한다. 죽음을 앞두고 내가 점찍어둔 장소에서 홀로 삶을 마친다면, 남겨진 이들에게는 더 큰 슬픔을 안겨줄지도 모른다. 영화 아무르속 장면처럼,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나를 위해 누군가에게 죽음을 부탁할 수도 없다. 그러니 사람답게 죽을 권리가 보장되지 않은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삶을 정리하지 못한 죽음이 남긴 공허함은 정리의 필요성을 더 절실히 깨닫게 한다. 최근 단식 존엄사(Voluntarily Stopping Eating and Drinking, VSED)’라는 방식을 접했다. 이는 20일 남짓 물만 마시고 음식을 끊거나, 물조차 끊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삶의 마지막을 겸허하게 정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의식이 또렷하다면, 본인은 스스로 삶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떠나고, 남은 이들은 고인을 기리며 새로운 일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조금은 덜 사무치게 다가올 것이다.

 

애도는 함께한 시간과 기억을 공유한 사람의 몫이 더 크다.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애도가 더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엄마의 황혼 무렵에 함께 살아온 새언니의 애도가 더 지난할 것이다. 나에겐 어릴 때의 기억이나 문득 느껴지는 엄마의 음식 맛, 엄마가 끼던 반지에 비친 지나온 시절의 풍경 같은 것들에 엄마가 묻어나 있다. 엄마의 존재가 드리운 그림자는 여전히 길게 이어져 오늘도 나를 회한에 젖게 한다. 엄마의 그림자는 삶을 정리하는 방식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마지막 순간에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더라면 덜 괴로웠을까. 애도의 긴 터널을 얼마나 지나야 엄마 없는 일상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햇살이 따스하게 비쳐올 때면, 꽃나무 아래 가지를 살포시 잡고 미소 짓던 엄마가 더욱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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