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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미의 역사    
글쓴이 : 석정원    26-05-29 19:00    조회 : 67

까미의 역사

석정원

 

아 이상하다 집이 텅 비었고 문패의 이름도 흐릿하다. 옆의 작은 집도 엉망진창이다.

이사 간 건지 아니면 에이 설마 그럴 리가?

1년 만이라 궁금해서 달려왔건만 싸한 이 느낌은 뭐지

걱정된 마음으로 집안을 보고 주위도 둘러보았지만 적막강산이다

작년 이맘때 봤을 때는 재작년보다 몸 상태가 좋았었는데 그새 무슨 일이지?

궁금증에 내일은 주인 가게에 가서 자초지종을 캐물을 심산이다.

그녀와의 인연은 얼추 8~9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큰딸네가 입주할 모델하우스를 보고 아파트신축 현장으로 가는 시골 길목에서 만났다.

저 멀리 황량한 벌판에 추위도 잊은 채 뛰놀던 흰 강아지는 반가움을 소리로 표현했다.

안녕 손 흔들며 화답했다.

반면 목줄 멘 검은 강아지는 연신 꼬리만 살랑살랑 흔들었다.

첫인상은 사실 글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개집 벽면에 My name is 까미라 적혀 있었다.

아하 네 이름이구나! 바로 까미야 부르며 손 내밀며 다가가니 짖지도 않고 격하게 반긴다.

꼬리의 열기가 찬 바람을 몰아내기에 충분했다. 당시 서너 살이던 손자도 나처럼 동물을 좋아해서 연신 이름을 부르며 집에 갈 생각이 없다. 어이구 순한 녀석들끼리 알아보네.

정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모습을 보면서 다음을 기약했다.

딸이 육아휴직을 쓴 1년 빼고는 매년 겨울 방학이나 여름방학 때 한 번씩은 강아지의 커감을 눈으로 확인하곤 했다. 귀염둥이에서 멋진 청년으로 자란 활기찬 모습의 까미는 바쁜 일상에서도 한 번씩 생각나곤 했다. 나의 어린 시절 멍멍이도 함께.

 

2년 만에 본 까미는 축 늘어져 힘이 없고 세상만사 귀찮은 표정이다.

얼굴도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이름을 불러도 별 반응이 없다.

요란하던 엉덩이도 안드로메다로 갔나 보다.

노구를 바닥에 의지한 채 눈조차도 총기를 잃고 멍하니 쳐다볼 뿐이다.

반가움의 관심도 피곤하겠다 싶어 자리를 떴다. 배와 땅이 한 몸이 된 채 떨어질 줄 몰랐다.

큰 도로 뒤편이라 사람들의 왕래가 별로 없는 곳에 자리한 까미는 더 심심하고 외로워 보였다. 삶의 의지를 거의 내려놓은 듯하다. 세월에 장사 없다더니

1년이 지나고 까미 집을 지나 큰 도로변에 드디어 마트가 생겼다. 시골에 머무르는 동안 자연스럽게 예전보다 자주 볼 기회가 생겼다. 몰라볼 정도로 건강해진 까미 옆에 하얀 강아지 한 마리와 작은 개집이 있었다. 그녀의 새끼라는 데 성별도 몸 색깔도 엄마와 정반대였다.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과 여학생 둘이서 연신 강아지를 만지며 놀고 있었다. 여자아이는 자신의 목도리로 땅바닥의 냉기를 막아주려 했다. 그때 나타난 여주인을 통해 그동안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10여 년 전 수능을 마친 딸이 해외여행을 다녀온 후 서울에서 생후 2개월 된 강아지를 분양받았다고 한다. 서울로 대학진학을 한 딸을 대신해 키웠고, 식당을 개업하면서 뒷마당이 까미의 터전이 되었단다. 대형 견은 소형, 중형 견보다 성장 속도와 노화 속도가 빠르다고 알고 있다. 대형 견인 까미는 노령기에 두 번째 출산했다. 두 마리를 낳았으나 아이들이 자꾸 만져서 한 마리는 죽었단다. 놀랍고 안타깝고 복합적 감정들이 밀려왔다.

생명을 탄생시킨 계기가 기력이 좋아지고 생기를 찾은 이유라고 미루어 짐작해 본다.

아는지 모르는지 세상의 빛을 본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는 통통 튀는 빗방울처럼 발랄하고 해맑다. 목줄이 없어도 아직 먼 데까지 가진 않고 엄마 주위를 맴돌며 방문자에게 귀여움을 안긴다. 마트 장을 봐 오던 길인데 까미가 먼저 다가왔다.

마음은 먹거리를 주고 싶었으나 예전과 다른 식생활 때문에 줄 수가 없었다. 미안을 남발하며 자꾸만 뒤돌아보았다.

 

2월의 하늘은 가을 하늘처럼 맑은데 덩그러니 빈집만 남은 곳, 내일은 가게로 가서 물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작은 정원을 낀 아담한 가게에 안면 있는 여사장을 만났다. 시그니처 메뉴와 음료 하나를 주문 후 까미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까미는 따뜻한 날 낮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단다. 손님들에 의해 발견되었고 새끼는 먼저 농가 주택으로 입양되었단다. 그나마 활력소였던 새끼와 생 이별 후 그녀의 삶은 무료함 그 자체였으리라.

12년 전 추운 크리스마스 때 분양받아 온기를 주고 따뜻한 날 편히 떠났다는 주인장의 말에 까미와의 만남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만남이 있으매 이별이 있고를 사춘기 때부터 끄적였지만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까미의 아들은 잘 자라고 있겠지? 이제는 못 알아보겠구나

까미의 소식을 듣기 전 흰 개를 보고 까미 새끼인가 생각했으니 말이다.

젖내를 벗고 훌쩍 자랐을 이름 모를 아들아!

건강하게 잘 크고 잘 살아라

 

이승을 떠났음을 알려 주려는 듯 My name is (까미)에서 이름 두 글자만 흐릿해져 가까이에서만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금방 폐가가 되는 것과 같은가 보다.

집주인의 존재 부재를 암시하는 개집의 무언일 수도 있고.

비뚤어진 개집 두 채와 엎어진 밥그릇 바닥에 뒹구는 천 조각들

다음에 지나갈 때는 말끔히 정리된 모습이면 좋겠다.

세상사 인간이나 동물이나 별반 다를 게 없네

인생은 죽음의 종착역으로 가는 여정임을 부인할 수 없는 현장에서 하늘 한 번 쳐다본다.

씁쓸하지만 자연의 이치를 바꿀 수 없으니 평소대로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별수 있나?

이왕 태어난 거 될 수 있으면 좋은 흔적을 남기려 오늘도 발걸음이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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