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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심의 시간은 간다    
글쓴이 : 박승해    26-04-27 20:08    조회 : 39

상심의 시간은 간다

 

박승해

 

아무리 큰 비가 와도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약속한 것은 지켜야 한다는 나와 그런 나보다 더 시간 개념이 철저한 지인과의 약속이다. 날씨를 핑계로 약속을 뒤로 미룰 생각은 없었다. 이런 나의 마음에 답이라도 하듯이 카카오톡은 우리의 약속을 확인하고 있었다

오늘 약속 콜!“ ”!!“

아침부터 한여름의 장대비가 대지를 두드리고 있다. 어제의 뜨거웠던 열기는 온데 간데 없다. 지독한 폭우가 갓 탈피한 한여름의 숫매미처럼 거리를 점령하고 있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사정없이 여름의 한가운데로 쏟아진다.

집에서 지하철 역까지 가는 잠깐 사이에 이미 온몸은 온통 젖어 버렸다. 사방에서 날리는 빗줄기를 우산으로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배수가 안된 도로는 조심해서 걷지 않으면 위험해 보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투다다다급박한 소리가 들렸다. 흠칫 뒤를 돌아보니 80세는 넘으셨을 할아버지가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달린다는 말보다는 헐떡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해 보인다

힘없이 후들거리는 그의 다리는 금방이라도 물 웅덩이 속으로 넘어질 것 같아 보였다. 장대비에 그대로 노출된 얼굴은 추위로 파랗게 경련을 일으켰다. 노인은 연실 무엇인가 소리치고 있었다. 소리는 목구멍에서 토해내는 눈물처럼 허공에 떠 다니다 빗소리에 묻혀 이내 사라졌다.

노인의 뒤로는 지인인 듯한 사람이 멀리에서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노인의 눈은 암울하고 절박했다. 만류하는 그 젊은이도 역시 울고 있었다. 우산도 쓰지 않은 채 슬리퍼 차림의 노인은 순식간에 내 앞을 지나 차도 속으로 사라졌다. 자동차 경적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빗 속에서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놀란 마음에 노인이 지나간 쪽을 찾아 보았으나 이미 그들은 세찬 빗줄기 속으로 사라져 버린 후였다. 순식간에 빗줄기 속 정적이 흘렀다.

이렇게 이른 아침 시간에 그것도 소낙비가 사정없이 내리는 궂은 날 노인은 무슨 일로 저리도 황망하게 울부짖으며 가고 있는 걸까.’

빗 속 어딘가에서 고통의 눈물로 가슴을 치고 있을 그 분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 슬픈 감정이 빗물을 타고 나에게로 전이되어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 졌다.

살면서 절망으로 목메어 울어 본 날이 얼마나 많았는가! 슬픔에 잠 못 이룬 밤 또한 열 손가락으로도 다 세지 못할 만큼 많다. 삶에서 고통의 순간은 다양하다. 그것이 가족의 일이든, 지인으로 부터의 것이든 아니면 이유를 알 수 없는 나 자신으로부터의 내면적인 것이든 우리는 그것들을 견디고 이겨내며 산다. 어떤 것은 외부로 표현하는 것조차 너무 아파 가슴 속에 깊숙이 꽁꽁 싸매어 묻어두고 그 기억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지하철 안은 한산했다. 아마도 호우주의보로 인해 외출을 자제한 덕분이리라. 이렇게 한산한 공간은 방해 없이 시집 한 권 읽기에 아주 좋다. 완전한 타인들과의 공간에서 간간히 들리는 백색소음은 어떤 면에선 집중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좋은 여건에도 불구하고 나의 시집은 여전히 첫 페이지에 머물러 있다. 수많은 상실을 경험했을 그 노인은 오늘 또 큰 슬픔을 직면하고 있는 중이리라. 그 분의 절망이 꼭 그 분 만의 것은 아니리라. 나도 언젠가 엄청난 상실을 겪게 될 수도 있고 세상 속 고독의 한가운데 놓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각자의 스마트폰을 내려다 보고 있다. 사람에게는 눈길 을 주지 않는다. 몇 사람 친구와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고개를 숙이고 진지하게 보고 있는 화면은 게임이나 웹툰이나 연예 기사에 맞추어 있다.

스마트폰은 영리하게도 주인이 선호하는 것을 데이터 화 해서 잘 찾아준다. 생각의 무한한 틀을 스마트폰의 알고리즘에 맞추고 있는건 아닐까 안타깝다. 서로의 얼굴을 보고 손을 잡고 미소를 나눌 수 있는 그런 날들은 이제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빗 속을 맨 발로 뛰어가던 그 노인은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을 버린 건 아닐까? 소낙비를 온몸으로 맞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그의 얼굴과 붉게 달아오른 눈두덩이와 신음소리 같은 고함 소리가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20년 전 나도 엄마를 잃고 저렇게 거리를 방황한 적이 있었다.

사랑하는 엄마의 죽음

세상 누구도 나의 슬픔을 알아주지 못할거라 여겼다. 누구의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때 상실의 절망에 빠진 나를 다독이고 안아준 건 사람이 아닌 시간이었다. 시간은 나를 사색하게 했고, 슬픔을 이겨내도록 용기를 만들고, 상실을 보듬어 품어안아 지나가게 했다.
두 번의 겨울이 지난 어느 날 시간은 말했다.

이제 그만 세상을 봐. 그 날과 똑같이 흰 눈이 또 오고 있잖아

시간은 그 무엇이라도 이겨 낼 수 있도록 삶을 단련시킨다. 우리가 그것을 느끼던 모르고 지나치던 개의치 않는다. 삶의 어디에서나 시계 바늘은 움직이고 상실의 고통도 점차 엷어진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우리는 죽을 만큼 큰 아픔의 긴 터널을 빠져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절망에 빠진 노인의 시계가 20년 전 나의 시간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 현재의 고통을 잘 이겨내기를 기도한다.

아침의 소낙비는 점점 가늘어지고 있다. 회색 구름 사이로 빛으로 무장한 커다란 해가 언듯 보인다.

오늘 석양은 붉고 따뜻한 온기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을 그 분을 토닥여 포근히 안아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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