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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약 미꾸리지    
글쓴이 : 권순예    26-02-03 00:19    조회 : 276

  “ 우리 추어탕 집에 갈까?”

 남편이나 지인들이 우리 뭐 먹을까?” 하고 물으면, 나는 거의 빠짐없이 추어탕 먹으러 가자라고 말한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추어탕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소문난 맛집에서 추어탕을 먹을 때도 있고, 시래기만 잔뜩 들어가 맹물 같은 추어탕을 먹을 때도 있다. 하지만 사실 그런 추어탕은 진짜로 내가 좋아하는 추어탕은 아니다. 지금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듯하다.

  나보다 셋 살 많은 사촌 오빠가 있다. 사촌 동생들도 많았지만, 유독 그 오빠는 나를 들로 산으로 데리고 다였다.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로 호디기(버들피리)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호디기는 가늘고, 굴기에 따라 소리가 달랐다.

 어느 봄날, 오빠가 버들피리 세 개를 만들어 준 적이 있다. 친구들과 학교 가는 길에 서로 바꿔가면 불다 보니, 집에 도착할 즈음이면 피리는 말라 갈라지고 구멍이 나버린다.

 여름방학이 되면 사촌 오빠는 나를 데리고 고기 잡으러 다였다. 장마철에 비가 많이 오고 개울물이 흙탕물이 되어 무섭게 흐르다가도, 하루밤 지나면. 그 무서웠던 물은 어디로 갔는지 맑아져 송사리와 피래미, 모래모지가 풀숲에 숨어있는게 보였다.

 아버지는 가을이면 벼를 밴 논에 물차지 말라고 논두렁 아래, 논 가운데로 또구(물고랑)를 치셨다. 아버지가 또구를 치는 날은 작은아버지와 오빠, 동생들까지 모두 나와 미꾸라지 잔치를 벌이는 날이다.

 물이 조금 고여 있는 곳을 파보면 미꾸라지가 버글버글 했다. 아버지가 한삽씩 뜰 때 마다. 나는 미꾸라지를 주워 담느라 바빴다. 아버지는 둠벙물에 미꾸라지를 휭구며 작은놈은 둠벙에 넣어주고 큰놈만 집으로 가져오셨다.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미꾸라지를 얼기미에 담고 소금 한줌을 넣어 양품으로 덮어 두셨다. 그러면 미구라지들이 요동을 치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가슴이 두근 거렸다. 잠시 후 조용해진 게 궁금해 살며시 양푼을 들어 올려 보았다. 그러자 기절해 있던 미꾸라지들이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예일곱 마리가 얼기미 밖으로 튀어나왔다. 너무 놀라 엉덩방아를 찧는 사이, 귀신같이 닭들이 달려와 미꾸라지를 물고 가 버렸다. 나는 겁에 질려 엄마!”를 부르며 닭이 미꾸라지를 다 물고 간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엄마는 달려와 미꾸라지를 잡으러 뛰어다니며 지집아가 왜 양푼은 들어 올리고 그랴 그라길하시며 닭들은 공중 부양하듯 도망가고 난 또 선머슴 아가 되었다.

 그날 저녁 밥상은 무 넣고 자작하게 끊인 미꾸라지 조림, 그다음 날 아침 밥상에는 시래기를 넣고 졸인 미꾸라지가 밥상을 풍성하게 해주었다. 온 식구들은 맛있다며 먹었지만, 나는 살려고 진흙 속으로 파고들던 미꾸라지,기절했다가 정신없이 도망가는 미꾸라지, 닭에게 쪼이는 미꾸라지가 떠올라 차마 먹을 수가 없었다.

 초겨울이 되면 아버지는 혼자 미꾸라지를 잡으러 나가셨다. 그리고 조용히 깨끗이 씻은 미꾸라지 중에서 가장 큰 황금빛 미꾸라지 서너 마리를 골라 약탕기에 넣고 화롯불에 끊이셨다. 하얀 쌀뜨물처럼 뽀얗게 된 미꾸라지를 투박한 대조리에 걸러, 맑은 곰국 같은 국물만 한 숟가락씩 떠서 내 입에 넣어주셨다. 그런데 아버지가 끊여주신 약탕기는 보약 추어탕은 이상하게도 맛있었다. 새끼 새처럼 넙죽넙죽 받아먹은 덕에 추어탕 마니아가 되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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