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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물, 방울    
글쓴이 : 박승해    26-11-04 00:34    조회 : 34

눈, 물, 방울


 

  췌장암 말기인 상태에서야 엄마의 병명을 알 수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의 원인을 찾으려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병원을 드나들었다.

  2000년이 시작된 1월의 밤은 유난히 따뜻했다. 호스피스 병동은 고요하다 못해 평화(?)로웠다. 엄청난 용량의 몰핀주사는 엄마를 고통에서 구해 주었다. 며칠 전부터 엄마는 저승사자가 자꾸 보인다고 했다. 복도를 걸어 다니고 있으니 눈이 마주치지 않게 조심하라고도 했다.

 “나는 입을 안 열거야 구슬을 안 먹으면 돼.”

 엄마는 저승사자를 속이는 법도 알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오면 얼른 눈을 감아. 그러면 그냥 지나가”
  엄마에게 사자가 보인다면 그건 엄마에게 진실이었다. 엄마가 일부러 꾸며낸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영’에게는 어쩌면 실재하는 현실일지도 몰랐다. 엄마의 통증의 정도는 더 심해지고 있었다. 그에 따라 척추로 직접 연결된 수액 병에는 더 고용량의 모르핀이 쉼 없이 투여되고 있었다.

  2개월 시한부라고 말한 의사의 말을 어기고(?) 엄마는 2년째 버티고 있었다. 여장부처럼 당당하고 늠름했던 엄마에게서 우리는 기적을 바랐다.

  엄마는 늘 멋진 여자였다. 엄마의 해결능력은 단연 최고였다. 진짜로 그랬었다. 이번에도 그러리라 믿고 싶었다.

  오빠를 먼저 떠나보낸 후 눈이 짓무르도록 ‘상실’도 짓물렀다. 그런 날도 마룻바닥은 반짝거렸고 화단의 식물은 늘 싱싱했다. 슬픔이 세상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잠도 줄이셨다. 온종일 움직이는 엄마의 어깨는 점점 작아져 갔다.

 

  어떤 죽음은 예상할 수 있게 미리부터 사인을 보낸다.

  그날은 엄마의 생신이었다. 엄마의 옷도, 엄마의 담요도, 엄마의 이불도 모두 이별을 준비하는 상징처럼 가슴을 울렸다. 그날 엄마는 아침 일찍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으며 목욕을 했다. 침상 목욕을 하는 내내 엄마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되뇌었다. 목욕 후 점심도 직접 떠서 드셨다. 모처럼 입맛이 돈다고 활짝 웃으셨다. 기념으로 화장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천사의 얼굴이었다.

  걱정하지 말고 집에 가라고 했다. 엄마는 저승사자가 들어와도 눈싸움을 해서 쫓아내겠다고 하셨다. 어둠이 병원 문을 닫을 때 입구의 대리석이 유난히도 하얗다고 느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습기를 흠뻑 먹은 솜뭉치처럼 무거웠다. 목욕하고 손톱에 매니큐어까지 칠하고 환하게 웃으시던 그 날부터 이틀 후에 엄마는 오빠를 따라가셨다. 저승사자의 검은 구슬을 결국은 입안으로 넣고야 말았나 보다.

 

  사람들은 말한다. 죽음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그러나 죽음 앞에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2년을 준비한 이별 연습은 하얀 도로 위에서 백지가 됐다.

  말도, 숨도, 손도, 다리도 허둥지둥 떨고 있었다. 죽음은 사정없이 뛰어 들어온다. 신은 엄마의 가는 어깨를 너무도 쉽게 안고 떠나버렸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임종실에는 권사님이었던 엄마가 평소 듣던 찬송가가 나직하게 흐른다. 담당 수녀님의 배려다. 엄마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한 명 한 명 우리를 바라보셨다. 한 손으로도 안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어깨, 우리는 아기처럼 작아진 엄마를 안았다.
“엄마는 정말 멋진 엄마예요, 사랑해요.” 너무 울어서 잘 안 들릴까 봐 최대한 또박또박 말하려고 애썼다. 귀가 밝으시니 우리의 말을 다 들었을 거다.

  엄마의 침대는 하얗게 비워졌다.

  굵은 빗줄기가 바짝 마른 여름의 대지에 숨을 불어넣고 있다. 비는 가뭄이 지나간 앙상한 갈비뼈 사이로 생명수처럼 들어온다. 며칠 전부터 얇은 구름층이 한 꺼풀씩 포개어 하늘을 가리고 있더니 오늘에서야 물로 변하여 땅의 창문을 가린다. 켜켜이 닫힌 하늘이 열린 듯이.

  하얀 눈이 세상을 덮어 버린 그 날처럼 유리창에 기댄 물방울이 가슴을 두드린다. 빗줄기는 마왕의 말발굽 소리 만큼이나 격정적이다. 창틀 사이로 스며든 빗물은 창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길을 잃었다. 습기 먹은 공기가 작은 알갱이로 혼을 나눈다. 어딘가 있을, 안을 수 없는 허공을 잡는다. 보이지 않는 축축함. 어깨를 짓누르던 그 날처럼 흐르는 창문에 몸을 기댄다. 빗방울을 안는다.

 

  눈물을 숨긴 하늘은 시퍼런 가슴을 열어젖히고 포효한다. 하얀 침묵 같은 이별은 늘 서럽다. 죽음으로 영영 만남이 잘린 날 전등의 불빛은 유난히 하얬고, 서러운 눈이 비밀처럼 대지를 가리고 있었다. 눈은 밤을 묻어 버렸다. 다시는 아침이 일어서지 못할 것처럼. 무거운 고별은 날지 못했고, 혼은 밤새 우리를 지켰다.

  세상은 침묵으로 변했다. 정교히 계산되어 과녁을 날아가는 궁수의 화살은 도망칠 수 없는 나의 심장을 관통했다.

 

  주변의 누구도 나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몸뚱이는 허수아비처럼 흔들렸고 두뇌는 해면질처럼 푸석거렸다. 나는 섬처럼 혼자였다. 그냥 멀리 떠나고 싶었다. 기차를 탈 용기가 없어 지하철을 탔다. 한참 동안 길거리를 돌아다녔었다. 타인의 웃음이 슬프다는 생각을 했다. 무작정 들어간 서점에서 나는 책 한권을 꺼내 들었다. 제목이 나의 기분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서점을 나왔을 때는 비바람이 온 세상에 날리고 있었다.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책꽂이 안쪽 깊은 곳에서 아주 오래 같은 자리를 지켰을 책, 나는 위안을 받기 위해 이것을 몇 번이고 읽었다. 여러 색깔 밑줄, 책갈피 사이 낙서처럼 써 논 글씨, 나만이 알 수 있는 감춰진 의미들. 희미해진 눈물 자국.

  어떻게 내가 그 상실의 시간을 이겨냈는지 모른다.

  시간은 슬픔의 두께를 한 켜씩 벗겨낸다. 그것은 팽팽하게 날을 세운 활시위를 날아서 망각의 터널로 들어간다. 많은 눈과 물이 시간의 방을 적시고서야 나는 엄마의 손을 놓을 수 있었다.

  책등의 먼지를 털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사랑이 기적처럼 걸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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