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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룡선생    
글쓴이 : 서동관    26-10-07 17:31    조회 : 799

와룡 선생

서동관

"교육의 목적은 인격의 형성이다."

— 허버트 스펜서

1986년, 내가 다니던 사립 중학교에는 외모만큼이나 성격이 독특한 과학 선생이 있었다.

반 곱슬머리, 매서운 눈매, 벌어진 코, 다부진 입술, 그리고 짧고 통통한 몸매.

그는 항상 교무 수첩과 대 뿌리를 한 손에 겹쳐 들고 다녔다. 곧게 뻗은 대나무 뿌리를 잘 말려서 공들여 다듬어 투명한 유광 마감재를 발라 교편으로 삼았다. 그는 교사의 위엄을 의식하는 듯 말투는 힘 있고 강단 있었으나, 행동이나 걸음은 그에 비해 매우 느렸다.

어느 날 그는 수업 시간 말미에 빼곡하게 채운 프린트물 30장을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돌아오는 수업 시간에 10문제를 내서 틀리면 한 문제당 대 뿌리로 열 대씩 때리겠다고 엄포를 놨다. 학생들 대부분은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 하는 분위기였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 뿌리로 맞아 본 사람이라면 그 이유를 알 것이다.

대 뿌리는 탄력이 매우 좋아서 엉덩이나 종아리에 매질을 하면 반발력으로 튀어나오지 않고 맞은 자리에 감겨서 통증이 피부 속으로 찢고 들어가는 것처럼 심하다. 한 대만 맞아도 그 자리는 순식간에 부어오르고, 체벌에 대한 낙인처럼 빨간 자국이 진하게 나타나 우리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두려움이었다. 한 문제 틀리면 10대를 때린다는 말은 '공부를 잘해 와라' 정도로만 알아들었다.

빽빽한 30장의 프린트물은 다음 수업 시간까지 소화하기엔 생각보다 많은 학습량이었다. 중요해 보이는 부분은 연필로 밑줄을 그어 복습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표시하며 공부를 했다. 준비된 총알이 많으면 고지에서 힘을 얻는 법. 공부를 해두니 조금은 마음이 든든해졌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그는 들어와서 인사를 받자마자 지난주에 내준 프린트물에 대한 평가를 하겠다며 그날이 6일이라 6번을 호명했다. 내가 걸렸다. 이미 날짜 때문에 호명될 것을 어느 정도는 예상했었고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신경을 써 준비했다.문제는 총 10문제. 그는 거침없이 문제를 내가는 반면, 나는 문제를 들을수록 너무도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었다.

출제라는 것은 단원에 대한 이해를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중요한 핵심을 놓치지 않고 숙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인데, 그는 아주 구석진 사소한 곳을 파고들며 문제를 내고 있었다. 마치 '이것까지 맞출 수 있어?' 하는 느낌이었다. 그의 출제 방식에 무척이나 화가 나고 억울했다. 결국 나는 열 문제 가운데 일곱 문제를 맞췄고, 간신히 맞춘 일곱 문제도 스스로는 선방했다고 생각했다.

억울해도 틀린 문제가 있으니 맞아야 했다. 앞으로 나가서 칠판을 붙잡고 엉덩이를 내밀었다. 세 문제를 틀렸으니 세 대쯤 맞겠거니 생각했다. 한 대, 두 대, 세 대. 

이제 다 맞았구나 싶어서 긴장을 놓고 돌아서려고 하는데 계속 때리는 것이었다. 때리는 대수가 늘어날수록 엉덩이가 점점 칠판 쪽으로 붙어 들어가자 엉덩이에서 종아리 쪽으로 내려오면서 때렸다. 그렇게 열 대쯤 맞으니까 다리가 풀려서 주춤하며 오금다리가 꺾였다. 그는 똑바로 서라며 허리춤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끝까지 때리려고 마음먹었다면 제대로 맞아주지요.' 갑자기 오기가 발동했다. 그가 때리는 동안 교실 안에는 대뿌리가 살갗에 찰싹찰싹 감겨드는 섬뜩한 파열음만 울려 퍼졌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그 공간에는 맞을 때 마다 꾹 다문 입술 사이로 삐져나오는 나의 신음과 반 학생들의 침묵만이 가득했다.

그는 기어이 서른 대를 다 채웠다. 그때까지 나는 자세 한번 흩트러지지 않고 끝까지 꼿꼿하게 버텨냈다. 그를 향한 내 방식대로의 항의였다. 다만 아득해진 정신 속에서 매질이 끝난지도 모르고 있다가 들어가라는 그의 말을 듣고 나서야 매질이 끝난 줄 알았다.

다 맞은 후 느낌이 이상해 뒤돌아 다리를 보았다. 피가 옷에 배어 나오고 있었다. 나중에 확인했을 때는 바지 속 다리가 온통 피로 얼룩졌고 엉덩이부터 종아리까지 울퉁불퉁 빨래판 그 자체였다. 매질이 끝난 뒤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 선뜻 발을 떼기가 힘들었다. 대 뿌리로 서른 대를 맞으면 어떻게 되는지 생체실험이라도 하는 것처럼 미친 듯이 때리는 것에 집중하던 그도, 나의 원망의 눈과 마주치고 나서야 제 정신이 든 듯 흠칫 표정이 바뀌었다. 나는 간신히 자리에 앉아 통증을 참기 위해 눈을 감고 수업이 끝날 때까지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만약에 다섯 문제 이상 틀렸다면 나는 책상이 아니라 병원 침대에 엎드려 있었을 것이다.

그는 나의 그런 행동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더 이상 프린트물에 관한 문제를 내지도 않았다. 50분 수업은 어찌어찌 끝났고, 교실을 빠져나가는 그를 쳐다보았다. 무언의 항변이었다. 그는 나의 시선을 외면한 채 말없이 교실 문을 열고 나갔다. 곤죽이 되도록 때려놓고 아무 말 한마디 없었기에 마음 깊은 아래에서 분노가 꿈틀거렸다.

평소에도 조용하고 성적도 상위권이라 선생으로부터 지적받는 일이 드물었던 나는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이게 그 정도로 맞을 일이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도 나지 않았고 극심한 통증 때문에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날 자전거로 등교했던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가지 못했다. 자전거에 몸을 기대어 실려 가듯 걸어서 갔다. 집에서는 눕지 못해 엎드려 잤다. 그 당시는 전국민 의료보험이 시행되기 전이라 병원에도 못 가고 바세린을 바르고 좋아지길 바라며 그저 참는 게 전부였다. 일주일쯤 지나서야 제대로 된 생활이 가능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흔히 마음의 상처에 쓰이지만, 그때는 몸의 상처에도 고스란히 적용됐다.

그 시대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처럼 교사의 위상이 높았고, 부모들은 때려서라도 인간을 만들어 달라며 교사에게 전적으로 신뢰를 보냈다. 인격을 형성한다는 교육의 목적은, 체벌을 빙자한 폭력 뒤에서 조용히 곪아가고 있었다. 일부 교사가 권위와 교권을 이용해 휘두른 그 폭력들은, 쌓이고 쌓여 결국 학생인권 문제로 번져나갔다.

오늘날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건 그 시대의 교사가 아니라 지금의 후배 교사들이다. 뉴스를 통해 일부 학생들의 교권 침해 소식을 볼 때마다 무척이나 씁쓸해진다. 지금은 특수한 가해자를 제외한다면 교사도 학생도 모두 피해자만 발생하는 것 같다.

지금 살아 있다면 아흔을 넘겼을 와룡 선생. 그는 그날의 일을 까맣게 잊었겠지만, 4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나는 그 잔인했던 교실의 공기와 살갗을 찢던 고통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날의 매질은 지워지지 않는 흉터가 되어 여전히 내 기억의 가장 깊은 곳에 박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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