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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설    
글쓴이 : 김은비    26-03-09 10:42    조회 : 518

춘설

김은비

 

그날도 여느 때처럼 다름없는 일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한 식사를 하고 그런 다음에 또 운동을 했다. 그러다 시간이 되면 재택근무 시

간에 맞춰 출퇴근하고 든든한 저녁을 먹었다. 그 후에 잠깐 휴식을 취하고 남는 시간에 독서하거나 언어 공부를 하든지, 아니면 넷플릭스나 유투브를 시청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나의 고정적인 일상이었다.

이렇게 집에서 나름 바쁘게 살아가는 내가 의무처럼 행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뉴스를 챙겨보는 것이었다. 뉴스를 챙겨보는 건 바깥세상과 단절되고 주로 집에서만 지내는 뇌병변 중증 장애인인 내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고 따라가기 위한 유일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뉴스 시청은 언제나 재미가 없다. 그날도 보기 싫고 짜증이 나는 뉴스들로 넘쳐났다. 윤석열 대통령의 최종 변론이 끝나고 헌법재판소의 최종 선고만을 앞둔 시점이라 탄핵 정국 관련 뉴스가 주를 이뤘다. 탄핵 집회는 찬성, 반대로 나뉘어져 시간이 갈수록 극렬해졌다. 견원지간처럼 물어뜯는 진보. 보수 정당의 싸움. 인간 이하의 상식적이지 않은 살인 사건. 매일 끊이지 않는 사고 소식은 지친 나를 더 옥죄고 들었다. 뉴스가 거의 끝날 무렵 일기예보가 내 눈에 번뜩 확 들어왔다. 3월 초순이고, 입춘, 우수가 지난 지가 언제인 데, 전국 곳곳에 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였다. 예전엔 겨울과 눈을 너무 좋아했었지만, 지금은 추위를 너무 잘 타는 체질이 된 나는 봄이 빨리 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는 얼른 봄이 되어 따뜻한 봄기운을 느끼는 날을 계속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춘삼월에 눈이라니, 전혀 기쁜 소식이 아니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유쾌하지도 않고 개운하지도 않은 소식들만 가득 찬 뉴스였다. 그렇게 다 끝나버린 뉴스를 황급히 자리를 뜨듯 꺼 버렸다. 동시에 내 에너지도 완전히 소진되는 느낌이었다.

돌이켜보면 2024년 겨울은 우리에게 춥고 시린 걸 넘어 너무나도 잔혹했다. 역사책에서만 보았던 계엄이 실제상황에서 일어났다. 2024123일 밤 군인이 국회를 침탈하는 장면을 TV 생중계로 봤다. 많은 국민이 한겨울 추위를 뚫고 광장에 모여 목소리를 냈다. 1214일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었지만, 아직도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용산 한글 박물관 화재 사건 등 많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너무 아픈 이별로, 2025년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2024년의 유난히 추운 겨울 앞에 그대로 멈춰 서야 했다.

20253월 초봄이 왔다고 해서 정말로 봄이 온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분명 2024년의 혹독한 겨울을 이대로 보낼 수 없었다. 그들에겐 그렇게 하는 것이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마냥 20253월의 초봄을 즐기고 편하게 느끼기엔 계엄령을 몰고 왔던 지난 2024년 겨울의 아픔과 상처는 아직 안 아물었다. 지금도 2025년을 조금 더 건강한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이렇듯 겨울을 벗어나 이른 봄에서까지 머무르고 있는 눈이 어쩌면 지난 2024년 겨울, 우리가 절대로 겪지 않아야 했을 아픔과 상처들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였기에 3월 초 이른 봄에라도 흘러내리고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봄눈이 흘려준 잠시나마 포근한 기운을 맞으며 아직 다 아물지 않은 아픔과 상처들을 간직하고 또 보내야만 하는 2025년의 모든 사계절을 위해 매일매일을 계속 살아가야 한다. 나 역시도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비정규직 중증 장애인 여성의 서러움을 가슴에 안고 2025년의 일상에 뛰어들려 그날 밤도 그렇게 잠자리에 누웠다. 2025년 겨울에 내리는 눈은 좀 더 하얗고 밝은 모습으로 우리를 어루만지듯 치유하고 온 세상 곳곳 크게 펑펑 흘러 내려와 주길 바라면서.

봄눈은 우리를 어루만져주며 그렇게 흘러 내려갔다.

 

봄눈을 다시 생각해 본다. 우리가 겨울에 머무르고 있듯이 눈도 우리의 고통을 차마 외면하지 못해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느 때보다 힘든 겨울을 지내고 있는 우리를 어루만져주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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