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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노래    
글쓴이 : 최경묵    26-07-18 06:39    조회 : 86
엄마의 노래

최경묵
 
  6월 아니면 7월쯤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도시가 되었지만, 그때는 당진군의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열무가 잘 자란 넓은 밭에서 사람들이 쭈그리고 앉아 열무를 뽑고 있었다. 양손으로 쥘 만큼 열무를 모아 지푸라기 몇 가닥을 둘러 한 단씩 묶었다. 대부분 낯익은 동네 아주머니들이었다. 연령대가 사십 대였던 엄마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나이가 많았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어서 가까운 동네 이웃들이 한데 모여 일을 하곤 했다. 칠백 평 남짓 되는 밭에는 서른 명쯤 모여 있었다. 밭고랑에 듬성듬성 앉아서 손을 놀리고 있었지만, 작업은 더뎠고 곧 어스름이 닥칠 참이었다.
  그때 어느 아주머니가 “한 곡 좀 뽑아보지!” 하고 소리치듯 말했다. 그러자 “좋아, 어디!” 곧이어 한 아주머니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꿈 많은 내 가슴에 봄은 오는데, 봄은- 오는데...’ 노래가 시작되자 일꾼들은 신명이 났는지, “얼쑤-!”, “좋-다” 라며 이쪽저쪽에서 추임새를 붙였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열무 작업을 하던 손이 빨라졌다. 나는 그때 엄마 옆에서 작업을 돕고 있었고, 노래하는 아주머니는 나의 엄마였다. 노래를 부르면서 엄마는 두 손으로 지푸라기 끝을 모아 비틀어서는 열무의 허리춤에 쿡 찔러 넣고 있었다. 호흡을 적절히 조절해 가며 노래를 끝까지 불렀다. 나는 엄마 옆에서 느리적거리며 고개를 푹 숙이고 열무를 뽑고 있었다. 중학생이었던 내가 왜 그곳에 있었는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아마도 해가 기울도록 엄마가 집에 오지 않아서 일하는 데를 찾아갔다가 옆에 앉아 일을 거들었던 것 같다.
  그 전에도 가끔 엄마가 밭에서 동네 아주머니들과 일하다가 노래 부르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가족들 앞에서 노래한 적은 없었다. 동네 사람들과 밭일하면서 노래를 부르던 엄마가 그때는 왜 그리도 창피하던지…. 한 소절을 맺을 때마다 본래 박자보다 길게 끄는 경향이 있었다. 잘 부르는 노래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만 노래 신청이 들어오면 마다하지 않고 전주 없이 바로 들어갔다. 문장에 예민해서 틀리거나 어색하면 눈 뜨고 못 보는 사람처럼, 나는 노래나 음악에 대해서 음정이나 박자가 어긋나는 것을 유난히 거슬려 했다. 엄마의 노래가 그렇다는 것을 직접 엄마에게 말한 적은 없었다. 노래 부르는 사람 마음대로였다. 지금 생각하면 노래를 부르면서 감정에 몰입하다 보니 박자가 늘어난 것 같다. 박자가 길어질 때면 엄마는 눈을 지그시 감곤 했다.

  그 후로 내가 성인이 되어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던 때였다. 추석 연휴를 맞아 본가에 다니러 갔다. 집에 막 들어서서 가방을 내려놓을 때였다. 엄마가 검은색 냄비 새것을 내게 들고 와서는 자랑을 했다. 면 소재지에서 노래자랑대회가 있었는데, 3등을 해서 냄비를 받았다고 했다. 평소에도 엄마가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노래 경연에서 어떤 성과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 당시에 내가 엄마에게 대단하다랄지, 엄마, 잘했어라든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탈한 성격의 엄마는 그런 내 앞에서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글쎄, 당신 혼자서 만족스러우면 그만이라고 여겼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도 같다. 나는 어째서 그때의 나의 기준을 엄마에게 들이댔는지 모르겠다. 그것이 그렇게도 중요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 어쩐지 울컥해진다. 엄마가 노래자랑에서 3등으로 인정받았다. 그 이상의 무엇이 더 그 사이에 끼어들어야 했을까.
  시간을 거슬러 내가 고등학생이던 때였다. 어느 날 나보다 네 살 위인 오빠가 친구에게서 얻어 온 카 오디오 본체 하나를 가져다주었다. 자동차에 달려 있어야 할 그것을 내 책상 한쪽에 설치해 주어 라디오와 카세트테이프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모노 음향으로만 듣다가 카 오디오의 스테레오를 처음 들었다. 스피커 양쪽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내 귀에 풍성하게 들렸다. 한동안 그 소리를 즐기고 있던 어느 날 저녁, 엄마가 카세트테이프를 하나 들고 왔다. 엄마가 읍내 오일장에서 사 왔다며 틀어 달라고 했다. ‘조미미’라는 이름 아래에 노래목록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그때 최신 팝을 즐겨 듣곤 했다. 가수 조미미의 맑은 목소리를 몇 곡쯤 엄마와 함께 듣다가 내가 그랬다. “엄마, 나 오늘 숙제 마저 끝내야 해.” 그 후로 엄마는 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에 노래를 듣는다고 했다. 

  역시 고등학교 때쯤으로 기억한다. 엄마와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말끝에 내가 엄마에게 그랬다. “엄마, 그럴 때면 일기를 써봐. 그러면 생각도 정리되고 마음이 편안해질 거야.” 엄마는 그날로 달력 종이 뒷면에 가득 글을 채워 넣었다. 다음 날 아침에 내 책상 옆에 한번 접은 채로 두었다. 나는 그것을 제대로 읽어 보지 않았다. 엄마의 필체는 좀 특이했다. 꼭꼭 눌러쓰기보다는 스치듯 가볍게 써 내려갔다. 엄마의 글자가 달력의 뒷면에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마음이 답답했다.’ 이런 글귀가 있었다. 읽고 나서 엄마에게 한마디를 건네주었더라면…. 읽고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일기를 그 뒤로 두어 번쯤 쓰다가 더 이상 쓰지 않았다. 요즘은 흔한 스프링 노트라도 사다가 엄마가 좋아하는 재봉틀 위에 올려놓아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늘 나의 편이 되어서 응원해 주던 엄마였다. 내가 하고 싶다는 것에 대해서라면 무조건 지지해 주었다. 정작 나는 엄마가 하고 싶어 하던 것을 지지해 주지 못했다. 노래를 부르거나 듣고, 일기를 쓰는 엄마 앞에서, 나는 주먹을 꼭 쥐어 보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을까.

  몇 년이 더 지나면 나는 세상을 떠난 엄마의 나이가 된다. 엄마에 대한 지난 기억을 떠올릴 때면 이유 없이 울컥해진다. 좋은 기억이든 그렇지 않든, 오래된 기억들이 먹먹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단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닌 것 같다. 망연해지고 있을 때면 내 귀에 대고 용기를 잃지 말라고 속삭여주는 것 같다. 지금은 실제 모습을 볼 수 없는 엄마의 존재가 그렇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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