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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등의 영예 나누기    
글쓴이 : 이성열    14-01-29 09:53    조회 : 6,057
  1등의 영예 나누기/이성열
 
  나는 흔히 말하는 1등에 대한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태어나서 청년기를 한국에 살면서 단 한번도 1등을 해 본 기억이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 흔한 운동회에서 친구들은 하다못해 100m 뜀박질이라도 잘해서 일등으로 두툼한 공책도 타오곤 했어도 체력이 약한 나는 늘 꼴찌였다. 학업성적에서도 줄곳 2-3등은 해본 적이 있어도 1등을 해 본 기억은 없다.
  중학교 때도 일제히 치룬 영어고사에서 무슨 상을 타게 되었다고 친구들이 부러워하며 선망의 눈초리로 쳐다보았지만, 그것도 1등이 아닌 2등에 머문 일제고사 결과였다. 아직도 그게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아마도 시골구석에서 서울로 전학해 온 후 처음으로 등수에 들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번번히 1류 학교 진학은 실패했고 2차를 거쳐 2류 학교에 머물렀으며, 마음에 두었던 1류 직장들은 모두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물론 굳이 핑계를 대자면 전쟁으로 조실부모한 내 환경이 나를 받쳐주지 않아서였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 그도 설득력이 없는 것이 눈여겨보면 나처럼 나쁜 역경에서도 우뚝 솟은 인재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나는 실패한 청춘을 한탄만 할 수 없어 그 돌파구로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그렇게 열등감으로 평생을 살아갈 바에야 아주 남을 덜 의식해도 되는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미국엘 와서 처음부터 밑바닥 인생을 감수하며 살아갈 각오를 가지고 일거리를 찾아 나섰었다.
  그러던 중에 어느 곳에서 목수 보조 인력을 뽑는다기에 찾아갔다. 그랬더니 인터뷰에 나온 중년의 목수가 내 이력서를 훑어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내 경력이라면 목수보다 S회사로 가보는게 났겠다며 친절하게 그곳 주소까지 알려 주었다. S회사라면 미국 굴지의 기간산업 회사로서 그 역사만도 100년이 넘는 회사가 아닌가?
  일자리가 필요한 나는 용기를 내어 서둘러 그곳을 찾아 갔다. 인사 담당인 흑인여자를 만났는데, 그녀는 도도한 얼굴을 하고 앉아서는, “지금은 아무데도 빈자리가 없으므로 다음에 다시 와보라”고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할 수없이 나는 다시 목수를 찾아가서, “당신이 가보라고 해서 갔더니 지금 자리가 없다고 하더라, 그러니 이곳에서라도 일하게 해 달라” 고 졸랐다. 그랬더니 그는, “그런 회사에 빈자리가 없을 리가 없다, 다시 몇 번이고 가보라” 는 것이었다.
  할 일도 없고, 밑져야 본전이다 는 생각에 나는 다시 그 회사 인사부로 향했다. 다시 면접신청을 했더니 이번에는 중년의 백인 여자가 나를 맞아 주었다. 이력서를 보여주고 일자리를 찾는다고 했더니, 그녀는 이력서를 대강 훑어 본 다음 이렇게 말했다.
  “내 생각에 당신은 회사 입사를 위한 시험 볼 자격이 있어요. 내가 날짜와 시간을 적어 줄테니 그 때 와서 시험을 치르세요.” 하는 것이었다. 뜻밖의 대답에 나는 흥분한 나머지 무슨 시험을 어떻게 치르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단숨에 집으로 달려왔다.
  목수의 말이 맞았다. 말하자면 지난번 나를 맞아준 흑인 여자는 사람을 차별하여 거짓말을 했거나, 아니면 근무에 태만한 것이 틀림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회사는 규모가 커서 늘 빈자리가 있게 마련이고, 시험을 거쳐 채워 넣을 신입사원을 대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며칠이 지나 약속한 시험장에 도착해보니 벌써 커다란 방에는 40여명의 응시자들이 웅크리고 앉아 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나도 시험지를 받아 빈자리에 앉았다. 영어와 수학시험이었다. 시험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몰랐고, 어떻게, 몇 명을 뽑는지 조차도 몰랐다. 이민 간 후 혹여 필요할지 몰라 영어 공부는 틈틈이 들여다보았지만, 수학은 그야말로 손 뗀지 오래였다. 처음에는 앞이 캄캄했다.
  이리저리 궁리 끝에 다행이 시험은 객관식 선다형이었으므로 답을 일일이 문제에 대입해서 찾아낼 수가 있었다. 반면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미국인들은 초등 수학교육이 시원찮아서 소수를 제외하고는 그 개념조차 생각하기 싫어하는 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3시간을 보내고 나와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응시생들이 하나 둘씩 불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불려 들어간 사람들은 합격자가 아니라 불합격자였다.
  1차시험에서 끝까지 불려 들어가지 않고 남았던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4명이었고, 우리는 다시 2차 시험을 위해서 또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적성시험을 치뤘는데 그 과정을 다 거쳐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명, 바로 나였다.
  흔히 동서양의 문화의 차이는 정반대의 것들이 많은데, (예를 들면 우리의 전통 바지폭은 넓은 반면, 카우보이들의 바지폭은 좁다) 이들의 시험선발과정도 그 예외가 아니었다. 합격자들만 먼저 불러 알려주고 불합격자는 몰라라 하는 우리 문화와는 달리, 불합격자들을 제일 먼저 불러,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불합격이다. 다음에 또 보자’는 식의 양해를 구한 다음, 합격자에게는 맨 나중에야 알린다.
  이렇게 이방인인 나는 미국주민 40 여명중에 기대하지도 않은 일등을 한 것이다. 원체 기대 밖이라 나도 믿지 못했고, 인사담당조차도 믿지 못한 결과였다. 말(영어)조차도 더듬거리며 잘 못하는 내가 합격이 되니 그중 누군가는 나에게 시험을 다시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이렇게 고국에서도 해보지 못한 1등을 미국에까지 와서 하게 되고 굴지의 회사의 취직까지 하게 되었으니 그 당시로선 신의 가호가 있지 않고서야 가능한 일이 아니라 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직업문제는 이민 초창기에 어렵지 않게 해결을 보았고 평생 직업으로 그 직장을 지난 30여년간 다니며 어렵지 않은 이민생활을 하게 되었다.
  TV프로 중에 남성들이 좋아하는 프로가 아마도 해마다 실시되는 미인대회가 아닐까 싶다. 그 대회를 놓고 볼 때도 많은 사람은 그 결과에 대해 항상 동의하지 않는다. 자기 생각엔 후보 x가 더 잘 생기고 매력적인데, 후보 y가 1등으로 뽑혔기 때문이다. 물론 심사위원들이 더 가까이서 전문적 견해를 가지고 선정했으므로 모두는 결과에 만족해야 할 지 모른다. 하지만 미의 기준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마련이다. 심사위원 a가 보기엔 그녀의 얼굴과 코가 매력적이라면 심사원 b가 보기엔 그녀의 눈과 입이 볼품이 없다는 식일 것이다. 차라리 예심의 오른 일곱 명의 미녀들은 다 개성이 다르고, 그런 점에서 나름대로 다 1등의 자격이 있는 건 아닐까? 그러니 모두의 견해를 만족시키기 위하여는 복수로 1등을 뽑는 게 더 합리적 이 아닐까?
  글쓰기에 관심을 가져본 사람치고 새해 아침에 신문지상에 발표되는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젊었을 때는 나도 그 중에 하나였고 특히 시 부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고는 했는데, 그 때마다 나를 의아하게 한 건, 어떻게 1만여 편이 넘는 응모작들 가운데 오직 한 편만을 당선작으로 뽑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어떻게 그 많은 시 중에서 좋은 시가 단 한편 뿐이겠는가? 한 편만이 다른 9천 9백여편의 다른 시들보다 탁월하게 잘 쓰여질 수 있는가? 이런 의구심은 아직도 내 심중에 남아 있다. 어떻게 1만여 편의 시들 중에서 잘 된 시가 2편 또는 3편도 아니고 단 1편뿐인가?
  영어로 시를 써서 미국 지방문단을 노크해 본 적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1등을 했다는 통지를 받은 적이 있는데, 막상 시상식 날 가서 놀란 사실은 1등을 한 사람이 나를 포함해서 15명이나 더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1등 수상자가 16명, 2등 수상자가 12명,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상금도 공평하게 조금씩 나눠주는 그런 시상식이었다.
  처음에는 혼자 1등을 하지 못한 게 섭섭하더니 자꾸 생각을 해보니까 이들의 방식이 더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은가? 기본 실력이 갖추어져 있다면 서로 방법이 다양하고 다를 뿐이지 우열의 차이는 그리 큰 게 아니지 않는가?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이들의 사고방식-그야말로 민주주의가 몸에 밴 사고일까? 아니면 합리주의가 몸에 밴 사고일까?

임정화   14-02-03 10:40
    
안녕하세요, 이성열선생님.
도입부를 읽으면서는 흔한 이야기려니 별 기대가 없었다가 미국에서 취업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는 흥미진진하여 인기드라마를 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미스코리아 얘기가 나와서 이게 무슨 이야긴가 했는데, 신춘문예당선으로 이어지면서 맥락이 잡혔네요. 1등을 하고 싶었으나 실력이나 환경 등 여러 가지 이유로 1등을 해보지 못하다가 새로운 땅에서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실력을 겨누어 난생 처음 1등을 하게 되는 과정, 그리고 곁들여 승자보다 패자를 배려하는 그들의 자세 등이 쭉 서술되었는데요. 여기까지는 하나의 맥락으로 읽히지만 그 다음 주장들과는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 단점이 보입니다. 사실 마지막에 하시는 말씀에 크게 공감이 가고 1등의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데요. 선생님이 생각하시고, 미국인들이 매기는 1등의 가치로 넘어가기 전에 다루는 미인대회의 근거가 다소 미약하게 풀렸다는 느낌이거든요.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네요.
아주 훌륭한 글을 읽고 저도 1등의 가치에 대해 다시금 되새기고 그릇된 편견으로 사람을 깊이 보지 못했던 어리숙함을 반성하게 되었는데요. 위에 말씀드린 내용만 조금 보완이 된다면 나무랄 데 없이 좋은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잘 읽었고, 다음 글도 크게 기대하겠습니다.^^
이성열   14-02-04 01:39
    
충고 감사합니다. 듣고 보니 그렇군요. 아예 그 문단이 없어도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충고 깊이 받아드리겠습니다.
정혜선   14-02-04 03:16
    
여러 생각을 하며 읽었습니다.
굳이 타회사를 추천해주던 중년목수가 인상적이네요.
그 사람과의 인연이야말로 신의 가호였던 듯합니다.
개인의 차별화된 능력보다 학벌을 우선시하는 우리나라의 채용방식에 대해
얘기하실 줄 알았는데 제목대로 마무리를 하셨군요.
그또한 새롭고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미인대회 얘기는 설득력이 없어 보이네요.
기준에 따라 진, 선, 미로 구분지어 선발하니까요.
신춘문예에 대한 비판도 썩 와닿지 않습니다.
다른 등용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응모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뭘까요.
수많은 경쟁자를 제치고 오로지 1인자가 되고 싶어하는 것 아닐른지요.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작가의 경험을 계속 이어놓은 다음
1등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정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디 그 뿐인가. 지방문단에 응모하여 1등했다는 통보를 받기도 했다. 한 때는 한국의 신춘문예를 넘보던 나였기에, 그것이 하늘의 별따기라는 것도 알았기에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른다. OO명 중에서 최고가 되었다니! 하지만 막상 시상식에 가보니.....

뭐 이런 식으로요.
좋은 글감인데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 더많이 고민하셔야겠어요.
미국과 한국사회를 비교하게 하는 아주 흥미로운 글이었습니다.
1등 축하드려요~~~^^
이성열   14-02-04 08:54
    
정회장님 반갑습니다. 여러가지 충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늘 요구하시는수준이 너무 어려워서 제 재주로는 기대에 부응하기 어려웁네요. 부족하드라도 지속적인 지도와 편달 부탁드리며...
정혜선   14-02-05 01:22
    
어렵게해드려 죄송해요 선생님.
선생님 글을 볼 때마다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끝손질만 좀더 하시면 아주 좋을 텐데... 하는 욕심이죠.
자기 주장이나 생각을 펼칠 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하거든요.
어렵게 보여도 자꾸자꾸 읽어보시면 이해가 되실 거예요.
충분히 잘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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