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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삼촌의 죽음    
글쓴이 : 김태겸    14-01-20 11:54    조회 : 6,228
외삼촌의 죽음
    
 
   “외삼촌의 병세가 위중해졌으니 돌아가시기 전에 얼굴 한번 뵙도록 해라.”
   목련이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어느 해 이른 봄,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외삼촌은 가톨릭 신부였다. 가톨릭계 대학 학장직에서 은퇴한 후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5년간 사목활동을 하였다. 그곳에서 난치병에 걸려 몇 개월 전에 귀국하였다. 소속 교구청이 있는 안동에서 요양 중이었으나 병세가 악화되어 서울의 큰 병원에 입원한 것이었다.
   저녁 늦게 시간을 내어 병실을 방문하였다. 그는 코에 산소 호흡기를 낀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항상 원기 왕성한 모습을 보아왔던 내게는 생소한 모습이었다.
   “엊그제까지 아프리카에서 원주민들과 초원을 누비고 다니던 분이 이게 웬일입니까?”
   짐짓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젊은 시절부터 외삼촌과 격의 없이 대화했고 그도 그러한 분위기를 좋아했다.
   “천국이 따로 없네. 편안한 병실에 누워 있으니 이곳이 바로 천국이야.”
   “신부가 그렇게 말해도 됩니까?”
   “아프리카에 가 보기 전에는 천국이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대한민국이 바로 지상 천국이야.”
   그 한 마디에 케냐에서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었다.
   외삼촌이 케냐로 해외사목을 떠난다고 했을 때 나는 만류했었다.
   “70세가 다 되어가는 나이에 기후와 생활 조건이 열악한 아프리카로 떠나는 것은 신앙적 허영심입니다. 젊은 시절에 감행했다면 모를까 자칫하면 초청한 교우들에게도 폐가 될 수 있습니다. 아저씨는 그 동안 충분히 봉사했고, 이제는 은퇴 생활을 즐길 자격이 있습니다.”
   나의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그가 케냐에서 얻은 병은 ‘폐 섬유증’이었다. 나이로비는 해발 1,700미터의 고지대에 있는 도시이다. 산소가 희박하여 저지대에 살던 사람이 방문하면 폐가 적응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젊은 사람은 쉽게 적응이 되지만 고령자의 경우에는 폐가 퇴화될 수 있다.
   의료시설이 낙후된 아프리카에서 그의 폐 세포는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서서히 굳어져 갔다. 귀국하기 직전 갑자기 쓰러졌다. 정신은 말짱한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교우들의 헌신적 도움을 받아서 간신히 귀국했다.
   담당 의사는 이미 손쓸 시기를 놓쳤다고 했다. 남은 수명은 길어야 1년이었다. 자신의 병세를 담담히 설명하는 그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아프리카에 갔던 것을 후회하지 않으세요?”
   그는 가벼운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였다. 당시 나는 그 웃음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호흡이 가빠져 말을 이어가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죽음이 두렵지는 않으세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성직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그냥 병실을 나왔다.
   외삼촌의 죽음이 임박해 종부성사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40여 년 전 그에게 사제 서품을 했던 프랑스 출신 주교님이 노구를 이끌고 종부성사를 진행하였다. 주교님은 죽음을 준비하는 자리를 유쾌한 분위기로 이끌어 갔다. 폐 세포가 대부분 손상된 외삼촌은 유언 한 마디 할 수 없었다. 대신 만면에 미소를 띠고 박수를 쳤다.
   그해 11월 외삼촌이 돌아가셨다. 어머니를 모시고 장례식이 거행되는 안동교구 성당으로 향했다. 교구의 모든 신부들이 참여하는 성대한 장례식이었다. 쌀쌀한 바람이 감도는 성직자 묘지에 그를 묻고 돌아설 때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는 성직자 이전에 다정다감한 외삼촌이었다. 청년 시절 나의 멘토였다. 밤을 지새우며 토론을 했었다. 내가 가톨릭을 떠난다고 했을 때 내 신앙적 판단을 존중해 주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장례식장에서 받은 외삼촌의 유작을 펼쳐 보았다. 책 제목은《당신이 있어 행복했습니다》였다. 아프리카에서의 사목활동이 주로 기술되어 있었다. 전쟁, 질병, 굶주림, 범죄, 부정부패 등 절망적 상황과 스스로의 무력감에 괴로워한 흔적이 역력했다.
   책은 성경 예레미야서를 인용하면서 끝을 맺었다.
   ‘너는 내가 보내면 누구에게나 가야 하고 내가 명령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말해야 한다. 그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주리라.’
   그 구절을 읽고 외삼촌이 아프리카에 간 이유를 알았다. 문병 간 그날 병실에서 내게 보였던 웃음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돌아가신 후 책을 통해 어리석었던 내 질문에 답변을 준 것이었다.
 
 

임정화   14-01-21 10:28
    
안녕하세요, 김태겸 선생님.
선생님 글을 보니 무척 반갑네요. 잘 지내셨지요?
종교의 힘은 위대하고 숭고한 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믿음을 가지고 꿋꿋하고 기쁘게 거친 삶을 살아내는 모습들을 볼 때마다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진지하고 열정적인 종교인들이 있기에 그에 미치지 못하는 또다른 종교인들의 실망스런 행태들도 덮이는 것일 테고요.
이번에도 역시나 독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사랑에 대해 글을 쓰셨네요.
그런데 제가 잘 몰라서 여쭙습니다만 친외삼촌께도 아저씨라는 호칭을 쓰기도 하나봐요.
애정을 가진 독자로서 적잖은 감동을 느낍니다. 잘 읽었습니다.^^
문경자   14-01-21 10:43
    
외삼촌의 죽음에 대한 글을 읽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종교에 대해서는 아는바가 없어 잘 모르지만
김태경님의 따듯한 마음과 외삼촌에 대한 사랑을 엿 볼수기 있어 좋았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김태겸   14-01-21 17:39
    
두 분의 평에 감사 드립니다.
특히 임정화씨는 매번 졸작을 읽고 성의 있는 평을 달아주어 감사하는 마음 한량 없습니다.
참고로 경북 지방에서는 친삼촌은 큰 아버지 또는 작은 아버지로,  외삼촌과 당숙은 아저씨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수적인 지역이라 전통적으로 친가와 외가를 구별하는 관행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애정 어린 평 덕분에 용기를 내어 글을 싣고 있습니다.
정혜선   14-01-23 08:35
    
류강하 베드로 신부님의 생질이시군요.
죽음의 순간을 평온하게 맞을 수 있다는 건 부러운 일입니다.
부끄럽지 않게 잘 살아온 사람에게나 가능할 테니까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김태겸   14-01-23 21:39
    
세상이 참 넓고도 좁네요. 정혜선씨가 외삼촌을 알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참, 반갑고 고마운 일입니다. 반면에 글을 올리는 게 두려워집니다. 자칫하면 제 글로 인해
누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한국산문 수필 동호회원들의 열정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정말 좋네요. 언젠가 저도 동참할 날이 있겠지요.
     
정혜선   14-01-25 06:20
    
베드로 신부님은 책을 통해서 알고 있을 뿐이에요.^^
올려주신 글에 감동하며 읽고 있으니 더 힘내서
열심히 쓰시기 바랍니다.
저희 회원들은 매주 강의를 듣고 행사 때마다 만나기 때문에
화기애애할 수밖에 없지요.
김태겸 선생님하고도  친분이 쌓였답니다.
글 속에서 만나 글로 통하는 사이잖아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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