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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변의 묘지에서.    
글쓴이 : 박옥희    14-10-14 19:27    조회 : 6,907

      


      해변의 묘지에서                                                   

            바람이 분다.

            살아 봐야겠다.

  남불의 해안 답지않게 세트의 해변은 평온했다. 여기저기 비둘기들이 떼지어 날고 저멀리 수평선에는 돛단배 한척이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한가로히 떠 있다.

  지난 5월 문학기행을 떠난 우리 일행은 스위스를 거쳐 남불로 갔다. 화려한 니스와 깐느를 구경하고 찾아든 세트의 잔잔한 바닷가는 들떠있던 우리네 마음들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었다.

  가파른 언덕을 부지런히 걸어 목적지인 발레리(Valery Ambroise-Paul-Toussaint-Jules 1871.10.30.-1945.7.20.)의 묘지에 도착했다. 생 클레르산 기슭에 계단식으로 된 묘지이다.

  키큰 사이프러스에 둘러쌓인 그의 묘소는 비교적 높은 곳에 넉넉하게 자리 잡았고 눈앞에 펼쳐진 지중해는 잔잔하고 고요했다. 발레리의 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해변의 묘지>에서의 시인의 표현처럼 바다 물결은 고요한 지붕 같았고 돛단배 한 척은 지붕 위에서 노니는 비둘기였다. 바다는 사이프러스와 무덤들 사이에서 철석인다. 정오의 태양은 바다 위에서 불꽃으로 빛나고 언제나 되풀이 되는 삶처럼 바다는 여전히 다시 시작한다. “신들의 고요함인 바다를 향하여 오랜 시선을 보냄은 명상뒤에 오는 깨달음이어라.”(묘비명)

 이렇게 시작되는 해변의 묘지는 24(144)까지 이어진다.

길고 어렵기만 했던 시의 의미가 바다를 향한 시인의 무덤 앞에서 뿌우연 안개가 걷히듯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시는 삶과 죽음에 대한 명상으로서 핀다로스(희랍의 서정시인,518?-438B.C)의 묘비명이 주 테마이다. “! 사랑하는 나의 영혼이여, 영원 불멸의 생명을 찾으려 말고 가능의 세계를 다 소멸시켜라.”   시인의 명상은 계속 된다.

  바다는 깎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거린다. 시간이 반짝인다. 이 반짝거림에 의해 상징되는 현재만이 실재처럼 보인다. 명상에 의해 시인은 학자의 지식보다 우월한 신비로운 인식(깨달음)에 도달한다. 그리고는 시인은 말한다.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한 숨을 쉴 한 순간이면 충분하다. 그것이 영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 바다의 반짝거림은 명상자의 영혼에 보다 깊은 평정을 불어넣는다.

  시인의 시선은 바다에서 무덤으로 옮겨간다. 무덤들 위에서 시인은 자신의 그림자가 움직이는 모습을 본다. 너 자신을 응시하라. 시인은 반성한다. 반짝이는 바다 때문에 무덤들의 철책을 거의 보지 못했다. 삶의 희열 때문에 죽음을 보지 못했다. 죽음은 언제나 삶에 가리워져 있다. 죽은 자들은 절대자의 편이다. 그들의 육체는 찰흙이나 꽃이 되어 자연의 유희 속으로 다시 돌아간다. 영혼은 사라진다. 모든 의식을 잃어 버림으로써 그들은 무()로 돌아간다.

그는 죽음 속에서 삶의 덧 없음과 절망만을 보려한다.

죽음에 대한 긴 고뇌 끝에 시인은 생의 특성인 의식을 떠올린다.

 참다운 구더기란 살아있는 자들을 파먹는 놈이다. 바로 의식이다. 의식이 고통의 근원이된다 할지라도 상관없다. 의식은 인간의 특성이며 존재이유다.

그의 의식은 생을 향한다.

시인은 잠시 운동을 부인한 엘레아의 제논(고대 그리스의 철학자:BC490년경-BC430년경)의 궤변을 떠올린다. “화살은 날고 날지않는다.”

제논! 잔인한 제논이여! 엘레아의 제논이여!” 제논은 생의 본질인 운동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그대는 나래 돋친 화살로 나를 꿰뚫었구나. 진동하며 날고 또 날지 않는 날개 돋힌 그 화살로!”

 바람에 의해 파도가 이는 바다는 지금 운동과 생명을 상징한다. 꼬리를 물고있는 hydra()은 제한된, 동시에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것을 나타내는 고전적 상징이다. 여전히 출렁거리는 바다. 바다는 삶과 창조가 가능한 영혼의 상징. 시인은 죽음의 늪에서 벗어나 삶으로 되돌아 와 현재의 삶을 받아 들이면서 시를 끝맺는다.

 

거대한 대기는 내 책을 펼쳤다 또다시 닫는다.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는 바위로부터 마구 용솟음 치고 솟아 오른다. 날아가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아!

부숴라, 파도여! 부숴라. 뛰노는 물살로 부숴 버려라. 돛단배들이 먹이를 찾아 다니는 이 잔잔한 지붕을!

(<해변의 묘지>끝 구절)


 

“4+6음절의 리듬이 먼저, 이어서 언제나 아름답고 언제나 더욱 아름다운, 협죽도와 사이프러스가 있는 그 묘지가 마음에 떠 올랐다.”(19147월 세트를 지나며 앙드레 지드에게 쓴 편지 중)

코르시카 출신인 아버지와 이태리 제노바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발레리의 지중해에 대한 사랑은 자신이 태어난 해변의 도시 세트와 더불어 각별했다. 시인의 고백은 계속된다. “이 시의 내용은 내 고향 도시의 추억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마도 나의 시 중 내가 자신의 일생의 약간을 넣은 유일한 시다.”(르 페브르에게 말함).

 

  턱걸이로 들어간 대학원 첫학기 필수과목으로 발레리의 시론과 마주쳤다. 나에겐 이해하기도 벅찬 상징시에 더하여, 형식이 우선이고 다음이 내용인 발레리의 작시법을 받아들이라는 요구에 거의 절망을 느꼈다. 학기말 리포트를 준비하면서 나는 발레리 아저씨를 많이도 원망했다. 예술 작품에서의 형식의 문제를 우리네 삶의 예절과 매너에 비교했다. 존경심 없는 예절과, 형식만을 강조한 예술작품을 비꼬면서 시인에게 당당히 맞섰다. 이렇게 써 내려간 나의 기말 리포트 성적은 낙제 점수였고 더불어 발레리씨를 향한 나의 미움은 커져만 갔다.

예술, 특히 문학작품에서의 형식의 중요함과 삶을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예절과 매너의 필요성을 깨닫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웅장한 사이프러스 나무가 지키고 있는 시인의 묘지를 다시한번 둘러 보았다.

 한점 흐트러짐 없는 생을 살다간 시인의 자취가 서려 있는듯 지성과 엄격함이 그곳에서 느껴졌다. 아저씨가 나에게 속삭인다. “용기를 내어서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멀지 않아 그대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바리에떼 중에서)

 발레리 아저씨와 화해하고 언덕을 내려오는 길, 눈앞에 펼쳐진 세트의 앞 바다는 한없이 평화로웠다.

바람이 분다.

좋은 글을 써 봐야겠다.

                                                                                              2014. <한국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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