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문학회 >  회원작품 >> 

* 작가명 : 장은경
* 작가소개/경력


* 이메일 : jang6059@hanmail.net
* 홈페이지 :
  일 포스티노    
글쓴이 : 장은경    12-07-04 14:40    조회 : 3,754
 
                                                             일 포스티노

                                                                                                                        장 은경
몇 년 전에 보았던 영화 《일 포스티노》는 1971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파블로 네루다가 이태리의 작은 섬에서 망명생활을 할 당시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당시 네루다의 관능적인 시들은 여성들에게 사랑받았고, 좌파시인으로 노동자들에게는 유명인사였다. 그런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지만, 영화 속에서 진짜 주인공은 그를 막연하게 동경하고 추종하는 마리오란 인물이다.
마리오는 이태리의 작은 섬에서 배만 타면 감기를 앓고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것이 지겨워 그 섬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청년이다. 그런 그에게 네루다의 등장은 뜻밖의 희망이었다. 마리오는 네루다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그의 우편배달부일을 자청했고, 낡은 자전거 바퀴를 굴리며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편지를 전해줄때 잠깐씩 엿보는 네루다의 삶과 그의 시 세계는 마리오를 은유의 세계로 발들이게 했고 그로인해 아름다운 여인 베아트리체와의 결혼도 가능하게 했다.
네루다는 마리오가 그토록 지겨워하는 섬에서의 고립을 시의 은유와 운율로 승화시켜줬다. 처음 마리오가 네루다를 향해 가졌던 막연한 동경은 존경과 우정으로 발전 되었다. 얼마 후 네루다가 섬을 떠나며 남기고 간 ‘내가 손님으로 있는 이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 보게.’ 라는 한 마디는 마리오 스스로 시를 쓰기 시작하게 하는 동기가 된다. 마리오는 녹음기를 들고 섬 구석구석을 돌며 파도소리와 절벽에 부서지는 바람 소리, 나뭇가지에 스치는 바람소리, 그토록 지겨워하던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질 소리, 신부님이 치는 교회 종소리, 밤하늘에 빼곡한 별들의 반짝이는 소리, 베아트리체 뱃속 아기의 심장 소리 등을 그만의 은유로 기록한다.

가끔은 마리오처럼 내가 섬에 고립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영원히 탈출하기 힘든 먼 곳으로 유배를 온 느낌... 결혼은 그런 것이었다. 남편이라는 언덕 덕분에 적당히 보호 받아서 생활은 안정되고,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내 얼굴에 세월의 흐름을 웃는 주름으로 어색함 없이 그려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나를 드러내며 살기엔 내가 맡은 역할이 너무 많아서 힘에 부칠 때가 있다. 매일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면 나 자신보다는 그 역할에 충실한 배우가 된 느낌이다. 간혹 그런 생활에 때때로 멀미가 나서 힘겨운 것은 아마도 배부른 투정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겐 문학이 있기에 그 속에서 마리오가 섬 곳곳에 녹음기를 들이대며 온 몸으로 시를 썼던 것처럼 내 삶의 쓰린 부분들까지도 보듬으며 아름다운 소통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고립됐다고 생각하는 섬에서의 평범한 감동 없는 삶이 끊임없이 마리오의 자전거 패달을 밟게 하는 것이다. 섬 곳곳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파블로 네루다(1904-1973)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그렇게 얼굴 없이
그건 나를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어.
내 영혼 속에서 뭔가 두드렸어,
열(熱)이나 잃어버린 날개,
그리고 내 나름대로 해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난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나는 문득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遊星)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어둠,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어둠,
소용돌이치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미소(微小)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장은경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6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글쓰기 버튼이 보이지 않을 때(회원등급 … 사이버문학부 11-26 85198
공지 ★(공지) 발표된 작품만 올리세요. 사이버문학부 08-01 86842
6 푸른 해를 낳다. 장은경 08-13 4517
5 밥상머리 교육 장은경 08-13 4286
4 고래 싸움에 얄미운 새우 등 장은경 08-13 4538
3 몹쓸 경쟁의식 장은경 07-04 3418
2 지금 시작하는 아름다운 마무리 장은경 07-04 3260
1 일 포스티노 장은경 07-04 3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