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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로 부친 찬합    
글쓴이 : 조헌    12-06-26 12:08    조회 : 4,109
 
하늘로 부친 찬합

                                                                         조     헌

 “시집올 때 친정엄마가 주시면서 귀한 거니 잘 쓰라고 한 찬합이에요. 잊지 말고 꼭 챙겨 와야 해요.” 아내는 뚜껑에서부터 몸채로 이어진 큼지막한 공작새가 자개로 새겨진 3단 찬합을 보자기로 단단히 싸주면서 몇 번이나 당부했다. 음식을 다 마련하고도 담아 보낼 용기(用器)를 찾지 못해 여기저길 뒤지며 애를 쓰던 아내는 끝내 적당한 것을 찾을 수가 없었던지 이 찬합을 꺼내주며, 내가 영 못 미더운 듯 마뜩찮은 표정으로 거듭 일렀다.

 1999년 12월. 새로운 세기가 열린다는 설렘과 기대 속에 부산하게 연말치레를 하던 나는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한 반년 넘게 만나지 못한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졸업 후에도 자주 만나며 가깝게 지내던 친구였는데, 그가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턴 좀처럼 만나지지 않더니 최근엔 전화마저 뜸해질 때쯤이었다.
 “여기 안암동 고려대 병원이야. 폐암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어. 연말이라 많이 바쁘지? 갑자기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뜬금없는 친구의 말에 놀랍고 한편 기가 막혀 머리가 띵했다.

 다음 날 오후, 서둘러 퇴근한 나는 부지런히 병원으로 향했다. 그가 일러준 대로 신설동로터리에서 병원 행 마을버스를 기다리는데, 한없이 가여운 생각과 함께 그에 대한 몇몇 기억들이 낡은 영화 필름처럼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누구에게든 밝고 친절하게 대하고, 좋든 궂든 일만 생기면 쫓아다니며 붙임성 있게 구는 성격이라 동창들 사이에선 ‘사람 좋은 마당발’ 소리를 듣지만, 그의 삶은 그다지 순조롭거나 편안치 못했다. 처녀의 몸으로 이 친구를 낳았다는 어머니와 오직 둘이서만 외롭게 생활해오던 그에게 운명은 끝내 호의적이질 않아 그악하게만 굴어댔다. 영등포 한 외진 동네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며 근근이 생활하던 어머니가 페인트칠을 하다가 엉킨 전선에서 튄 불똥이 페인트에 옮겨 붙어 불이 나자 피하지 못한 채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 친구가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에 당한 어처구니없는 사고였다.
 그러고도 힘든 그의 삶은 마무리되지 않고,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손을 댄 몇 번의 사업이 번번이 실패하자 더욱더 어렵게 되었다. 아마 내가 그 친구 개업선물이랍시고 사간 화분이 너덧 개는 족히 넘을 것으로 보아, 하던 일을 접을 때마다 당사자가 느꼈을 마음고생은 불을 본 듯 훤했다. 더욱이 별나게 작은 키 탓도 있었겠지만, 서두는 사람이 없던 까닭에 결혼마저 늦어져 사십을 훌쩍 넘긴 나이에 겨우 두어 살 된 딸아이가 하나 있으니 정말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병실 안쪽 침대에 누워있던 그가 나를 먼저 알아보고는 피식 웃으며 야윈 손을 흔들었다. 바짝 마른 그의 얼굴은 눈만 퀭하니 남아있었다.
 호흡조차 힘든지 말을 할 때마다 숨은 계속 거칠었고, 명치끝에 매달린 통증이 수시로 옥죄는지 자주 가슴을 쓸어 내렸다. 애써 태연한척 미소를 지었지만 그의 눈은 잔뜩 겁에 질린 듯 불안해보였다.
 이때 마침 옆 환자의 보호자가 내게 음료수를 권하자, “이 병실 보호자는 모두 다 내 보호자야! 애가 어려 집사람이 자주 못 오니까 딱해서 그런지 많이들 도와주거든. 나는 어딜 가든 인복은 있는 놈이잖아!” 그 와중에도 너스레를 떨며 “너도 알지! 우리 집사람이 다른 건 몰라도 잡채는 아주 맛있게 만들잖아. 언제 한번 넉넉히 해다가 이분들께 신세나 갚았으면 좋으련만......” 말끝은 흐렸지만 반드시 그렇게 해보고 싶은 마음이 역력해 보였다.

 병원을 다녀온 후, 아린 마음은 좀처럼 가라않지 않았다. 틈이 날 때마다 떠오르는 깡마른 그의 모습이 어찌 그리도 가슴을 저미는지 추스르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러다 맞이한 성탄절! 세상은 온통 은혜와 감사 그리고 축복으로 넘치고 들떠 있을 때, 나는 문득 외롭게 병실에 누워 있을 친구생각을 하며 서둘러 아내에게 몇 가지 음식을 부탁했다. 당연히 넉넉한 분량의 잡채는 물론이고 평소 그 친구가 좋아하던 닭찜과 과일 몇 가지를 주문했던 것이다.
 찬합보따리를 들고 집을 나설 땐 잔뜩 흐린 날씨에 진눈깨비마저 추적댔지만, 고마워하며 기뻐할 그의 모습을 생각하니 차를 타고 가면서도 마음은 들떴다.

 날이 꽤 저물고 나서야 병원에 도착한 나는 병실 문을 열자마자 친구를 찾았다. 하지만 그의 침대는 텅 비어있었고 왠지 모를 불안감에 나는 더럭 겁이 났다.
 “조금 전 갑자기 상태가 심각해져서 검사실로 갔어요. 보호자에게 연락은 했다는데 아직 도착하지 못했을 테니 거기로 가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주변 사람의 이야기에 들고 있던 찬합을 침대위에 내려놓고는 검사실을 찾아 정신없이 달려 나갔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허둥지둥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는 숨을 거둔 뒤였다. 검사실 앞 복도에서 그의 처가 오기를 기다리던 나는 심한 악몽을 꾸고 난 듯 머릿속이 휑하고 어질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허겁지겁 그의 처가 달려왔다. 남편의 사망소식에 무너지듯 비칠대는 그녀를 부축하며 병원에서 시키는 절차에 따라 장례수속을 밟기 시작했고, 영안실을 배당받아 옮겨왔을 때는 밤 10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일을 처리하는 도중, 내가 건 전화를 받은 몇몇 동창은 벌써 도착해 있었다.
 그때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비로소 병실에 놓고 온 찬합 생각이 떠올랐다. 잃어버리면 큰일이다 싶어 부지런히 병실을 찾아갔다. 그러나 허사였다. 이미 그가 쓰던 침대엔 다른 환자가 누워 있었고 주변사람들과 간호사들에게 물어도 찬합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집을 나설 때까지 그렇게 신신당부하던 아내를 생각하니 그저 난감할 뿐이었다. 
 잠시 후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갑자기 세상을 떠난 그의 소식을 전하며 애써 준비해온 음식은 그 친구에게 보여주지도 못한 채, 찬합마저 몽땅 잃어버리게 된 정황을 쩔쩔매며 길게 설명했다.
 “아이! 가엾어서 어째! 앞으로 그 부인과 딸은 어떻게 산대요? 불쌍해서 이걸 어쩌누!” 아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람이 죽었는데 찬합이 문제에요!” 아내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아마 그 찬합은 당신 친구에게 전하려고 우리가 하늘로 부친 거네요. 괜찮아요. 하늘로 부친 찬합을 어디 가서 찾겠어요!”하며 급기야는 소리를 죽여 울먹이는 거였다.
 번번이 인생은 이렇듯 아프고 허망한 것인가! ‘아름다운 삶을 노래한다.’는 말이 왜 지금 이 순간에는 이다지도 낯설게 들릴까? 단 한 번밖에는 주어지지 않는 삶을 끝끝내 힘들고 외롭게 살다간 그는 도대체 왜 이 세상에 왔다 간 건지? 아슴아슴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슬픔에 내 마음은 천근만근 무겁게 갈아 앉았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깊게 심호흡을 하며 영안실 건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진눈깨비가 그친 까만 밤하늘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문득 환영(幻影)처럼 오색 자개 빛을 한 공작새 한 마리가 큰 날개를 펴며 까마득히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이 눈에 어렸다. 찬합을 하늘로 부쳤다는 아내의 말 때문인지 아니면 한껏 피곤해진 내 눈 탓인지 잠시 얼보이던 그 모습은 이내 사라지고, 다시금 매섭게 차가운 겨울바람만 세차게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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