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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동거리의 봉인된 기억    
글쓴이 : 정지민    15-04-13 19:40    조회 : 3,992
 
명동거리의 봉인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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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줄리어스 시저>를 보러갔다. 관람료가 녹록치 않다. 연극인구의 저변확대를 위해 줘야한다는 주장 이전에 섹스피어 원작이라서 선뜻 나섰다. 명동예술극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설렘이 묻어난다. 나에게 명동거리는 비밀의 화원이다. 청춘의 비늘 같은 흔적이 곳곳에 스며있고, 흔적 속에는 사랑도 포함된다.
 
 오늘 명동의 풍경은 내게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집, 명동교자 안으로 들어섰다. 예전만큼 북적대지 않았다. 그땐 자리가 없어서 늘 모르는 사람과 합석을 했다. 내 나이 스무 살 무렵 이 식당에서 벌어진 해프닝 하나가 떠오른다. 언니랑 둘이 갔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 앞쪽에 중년 남자가 혼자 앉아 있었다. 그를 본 언니가 갑자기 얼굴이 상기된 채 안절부절못했다. 내 귀에 대고 라디오 프로 <별이 빛나는 밤에> 디제이 이종환이라고 말했다. 시골에서 상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가 알 턱이 없었다.
아저씨가 별이 빛나는 밤에 디제이에요?” 내 물음에 그가 고개를 아래위로 까딱거렸다.
이종환 아저씨 맞아요?” 이번에도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나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아니, 디제이라 해서 목소리 듣자고 말 시키는데!” 그때서야 남자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그날 밤 <별밤>에서는 낮에 있었던 우리 자매와의 대화를 낱낱이 소개했다. 쟈넷 멘체스터의 장장 9분이 넘는 내 신청곡을 끝까지 들려주던 사람. 그는 고인이 되었으나 명동거리는 여전히 내 기억의 액자 속에서 꿈틀거린다.
 
 섹스피어의 위대한 연극은 스물 남짓 건장한 사내들의 우렁찬 함성과 군홧발 소리로 시작되었다. 로마병사들이 시저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아첨하는 소리에 에워싸인 그 밤은 시저에게 안전하지 않았다. 실전의 영웅, 개혁의 성공, 풍부한 인간적 매력, 1급의 문인이었던 시저. 권력이 한 몸에 집중된 결과 왕위를 탐내는 자로 의심을 받는다.
 
 20대 허리께의 내 젊음은 붐비는 명동거리 위에서 찬란하게 빛났다.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백학처럼 희고 정갈했을 시절이었다. 첫사랑이던가. 사내는 내게 봄풀보다 더 싱그럽다고 속삭였다. 회사가 있는 명동을 지나서 이문세 노래 <광화문연가>에 나오는 덕수궁 돌담, 언덕 밑 정동 길,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가 우리 연인들의 데이트코스였다. 어느 날 마지막 담배를 비벼 끄던 그가 집안에서 결혼을 반대한다고 말하며 고개를 떨궜다. 나는 붉은 박쥐 눈이 될 때까지 울었다. 허물어진 사랑이 아쉬워서가 아닌, 믿었던 사람의 어이없는 배신 때문이었다.
 
 “! 브루투스, 너 마저!”
무대 위에서 시저는 가장 믿었던 신하인 브루투스에게 살해당한다. 지옥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마지막 외침은 신의와의 결별이 주는 피울음이다. 민중은 그들의 우매한 지지를 이리저리 옮겨가는 철새였다. 예언을 담은 대사가 배우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이 비극은 후대 사람들을 통해 오랜 세월동안 세상 무대를 오르내릴 거라고.
 
 무대 검은 휘장이 드리워진 세상 밖에서도 비극은 끝없이 이어진다. 내 개인사에 잠복해 있는 명동에서 만난 사내는 부모님이 지방색을 내세워 나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랑보다 매트릭스에 갇힌 부모님의 이상이 더 중요했던 것일까? 시저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에 죽일 수밖에 없다던 브루투스처럼.
배신은 그저 봉인된 기억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좋은 일은 그것대로, 미운 사람은 미운대로 봉인되어 술처럼 익어간다. 내가 지금까지 잘 살아 온 것은 넘치는 사랑 때문이 아니라 결핍된 그 무엇들이 유기적으로 얽혀서 에너지원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배신을 겪고 있을 당신에게 섹스피어는 슬픔을 숫돌로 삼아 칼을 갈고 분노로 바꾸라고 했다. 나라면, 이런 방법을 권하고 싶다. 슬플 땐 하늘을 본다. 그래도 슬플 땐 하늘의 하늘을 본다. 아주 슬플 땐, 조금만 울면 되고... .
 
 조그만 교회당과 마주보던 하얀 집 이따리아노는 파스타 전문집이었다. 내 잃어버린 첫사랑과 즐겨 찾았던 그곳의 크림파스타가 생각난다. ‘한 번은 더!’라고 다짐하지만 그런 시간은 생애 내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영욕이 함께 서려있는 곳, 명동거리를 망명객처럼 떠돌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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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5일. 화광신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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