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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얼굴 보기    
글쓴이 : 류문수    14-04-06 10:28    조회 : 5,917
   내 얼굴 보기.hwp (29.5K) [0] DATE : 2014-04-06 10:28:14
                                           내 얼굴 보기
                                                                                         류 문 수
 
 
  고희(古稀)를 넘기니 외모에 신경을 쓰게 된다. 자연 젊었을 때 보다 거울을 더 자주 본다. 늙수그레 삭아 시들어 가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다. 남들에게 연민의 대상이 되어 불편한 인상을 남기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얼굴은 마음의 모습 또는 거울이라 했거늘, 흐트러진 내면은 더욱 더 보이기 싫다.
  아침식사는 언제나 늦장부리며 먹고, 성당 가는 길은 항상 바삐 돌아간다.
미사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복장도 대충 갖춰 입고 집을 나왔다. 거울도 보지 못하고.
  내 얼굴을 내 눈으로 볼 수 없으니 답답하다.
늘 나와 함께 하면서도 평생 직접 볼 수 없는 내 자신의 얼굴. 거울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는 것이 약간은 현기증 나도록 안타깝다. 조물주께서 인간의 눈을 손가락 끝에 하나 더 달아 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의 몸 구석구석을 다 볼 수 있었을 터인데. 여러 편리와 불편한 생각이 왔다 갔다 한다. 그러나 이런 편리는 더 큰 부조리와 불행한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 눈이 나를 직접 보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은 직접 이리저리 살펴 볼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에 자칫 우리 눈은 오류(誤謬)를 범할 수 있다. 하물며 손가락 끝에 눈이 하나 더 있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이 세상에 벌어질 것으로 공상에 빠져 본다.
  오늘 미사 중에 신부님이 말씀하신 복음(福音)이 나 자신을 깊이 돌아보게 한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 속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 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 내어라."(마태, 7, 3~4)
  며칠 전 밤새도록 온 눈을 엉덩방아를 쪄가며 힘겹게 치우고 나니 몸이 지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좀 짜증스럽기도 하여 아내에게 한마디 했다.
 "남들은 내 집 앞 눈도 치워주는데 이 녀석들은 전화도 한번 없어, 뭔가 가정교육이 부실해 이 모양이야" 은근히 아내의 가정교육을 꼬집었다.
 "당신 나를 질책하는 거예요? 이 집엔 나만 살았고 자기는 없었어요?"라며 아내의 거친 말투가 귀를 자극했다.
 "당신은 젊어서 아버님께 잘 했어요? 결혼 후엔 나만 잘하면 된다며 자기는 신경 꺼버리고, 돌아가시니 불효를 후회하면서... 바쁜 아이들 나무랄 것 하나도 없어요"라고 우리 아이들만 같으면 됐다고 출가한 딸들과 사위들을 적극 방어하고 나선다. 줄줄이 이어지는 격한 소리를 듣고 나니 괜히 건드렸나 후회막급이다.
  기실 나는 우리 아이들보다 부모님께 잘한 게 없다. 그렇지만 아이들로부터 조금이라도 소홀한 느낌이 들면 섭섭하기 이를 데 없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듯 사람들이 형제의 눈 속의 티는 잘 보면서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 꼭 나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이렇듯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대체로 잘 알고 말하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하여 의외로 잘 모르고 산다. 남의 언행은 옳고 그름을 잘 지적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마음이나 행동은 주관적 편견에 빠져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을 객관화하여 하루에 자신을 세 번 살펴야 한다고 <<논어>>에서 일일삼성(一日三省)을 가르쳤을 것이다. 성당에서도 하루에 아침, 점심, 저녁 세 번 기도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니 자기를 세 번 살피라는 뜻으로 본다.
  나는 세 번이 아니라, 삼십 번 이상 거울을 드려다 보고 하루를 보내는 것 같다. 그러나 나의 내면의 얼굴은 얼마나 자주 살펴보는지 기억되는 바 없다. 우리는 만나는 사람들을 수시로 잘도 평가하고 판단하며 산다. 그렇다면 나의 행동과 태도는 얼마나 자주 들여다보고 반성하는지 부끄럽기 그지없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남들에게 추한 외모를 보이지 않으려는 노력은 하고 있다. 젊었을 때보다 목욕도 자주하고 수염도 자주 깎는다. 그리고 되도록 옷도 단정하게 입고 외출하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꾸부정한 모습도 미리 방지하기 위하여 허리를 중심으로 근육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주로 외모에 집중하여 신경을 쓴다. 진정 남에게 비쳐지는 나의 늙어가는 인상은 어떨까 걱정이 된다.
  서울 시내 거리를 걷다보면 사람들의 얼굴이 점점 아름다워져 가는 것 같다. 이것은 인간의 미적 감각이 점점 높아져가는 데에도 기인하지만 자기 외모 가꾸기에 더욱 투자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부모가 준 얼굴뼈를 깎아 내고 성형시켜 아름다움을 살리는 끔찍한 일이 다반사라 한다. 외모지상주의가 불러온 결과라 보겠다.
  사람의 얼굴은 그 얼굴 배후에 있는 마음에 의하여 형(形)이 틀 잡혀 조금씩 정화되어 아름다움을 가꿔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미모일 것이다. 마음이 고상 우아함을 생각하면 그 사람의 얼굴이 자연히 우아롭게 된다. 야비한 마음을 가지면 바로 그 사람의 얼굴은 야비하게 비틀리게 될 것이다. 마음의 안면 근육이 작용하여 빚어낸 얼굴. 그러므로 A.링컨은 "40을 지낸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했다.
  사람들 얼굴의 아름다움이 마음의 향배가 아니라 단순히 메이크업 기술이나 성형에 의한 것이라면 그 아름다움은 눈속임에 불과할 것이다. 나도 마음의 인덱스(index)가 아니라 눈속임에 불과한 외모는 아닌지.
  거울 볼 때마다 마음도 살펴야겠다.

조정숙   14-04-08 07:02
    
나이40이 넘으면 자기얼굴에
책임을 지라했던가요.
삶속에서 묻어나오는표정은
메이크업으로도 가릴수가없는것같애요
거울을볼때마다
마음을 살펴야겠다는 말씀
와 닿습니다
이은하   14-04-08 08:51
    
곱게 나이를 먹는다. 곱게 늙어야 해 하는말들을
하지요.  그 말을 뜻을 조금은 알 나이가 되었답니다.
졂었을때는 단지 외적인 아름다움이 전부인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내적인 아름다움이 멋지다는걸  알게 됐습니다.
샘은 충분히 멋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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