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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의 산문 잔치    
글쓴이 : 김경숙    25-07-02 01:04    조회 : 7
   봄의 산문잔치.hwpx (67.7K) [1] DATE : 2025-07-02 01:15:47

봄의 산문 잔치


                                                                  김경숙

 

버스를 탔다. 한국산문 작가협회 2025년 정기총회에 가는 길이다. 가로수들이 차창으로 스쳐 지나갔다. 내 시선도 그에 맞춰 도돌이표처럼 반복되었다. 잔가지마다 앙증맞은 새순들이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렸다. 그 모습은 마치 산들산들 회전하는 왈츠를 추고 있는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시선을 따라가며 고개가 돌아간다. 군데군데 환하게 핀 벚꽃은 눈꽃으로 만개해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마음에 생기가 돌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계절은 나를 들뜨게 했다.

 

신사역에서 내려 행사장인 더 리버사이드호텔에 도착했다. 로비로 들어서자, 거리에서 마주했던 생동감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다가왔다. 산들거림은 자취도 없고, 무겁고 차가운 대리석 사이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7층 문이 열리자, 행사 요원이 손님을 안내하고 있었다. 행사장인 콘서트홀 안은 원형 테이블로 단정히 정돈되어 있었다. 색감과 구조는 정갈하면서도 묵직해 보였다. 나는 4번 테이블의 빈자리에 앉았다.

 

자리에서 무대 위를 바라다보았다. 천장에서 내려온 네 개의 크리스털 조명을 받은 하얀 꽃장식이 사각으로 환하게 빛났다. 눈이 부실 정도였다. 백목련일까, 백장미일까. 그 사이사이에 안개꽃이 달팽이 더듬이처럼 삐죽삐죽 사방으로 솟아나 있었다. 한국산문 문학 행사에 처음 참석한 나는 달팽이처럼 안테나를 세우고 총회를 지켜보았다.

 

행사는 식순에 따라 시작되었다. 인사와 내빈 소개가 이어졌고, 2024 감사보고 후 상반기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신인 작가상, 생애 첫 수필집 발간 기념패 증정이 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상패와 꽃다발이 손에서 손으로 오가며 축하가 이어졌다. 무대 아래에서도 한사람, 두 사람, 그다음 사람 손마다 한 아름의 꽃다발들이 줄을 섰다.

 

18회 한국산문문학상 시상이 이어졌다. 줌 합평에서 얼굴을 익힌 김숙 선배님께서 등나무 꽃으로 수상하셨다. 우리는 모두 일어나 박수를 보내고 기념사진도 함께 찍었다. 이 상은 회원 3명과 외부 인사 1명에게 수여된다고 한다. 올해 외부 수상자로 푸른 슬픔의 노상비 작가가 선정되었다. “이제 글을 쓰는 것이 살아가야 할 이유이자 동기가 되었습니다라는 소감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의 동기가 되었다.

 

곧이어 제12회 윤오영 수필문학상 시상이 진행되었다. 상금이 무려 500만 원이라고 했다. 최고의 상인 만큼 무대 위는 상패와 꽃다발, 그리고 축하 인파로 화려하게 채워져 있었다. 초록에서 노랑, 노랑에서 핑크와 붉은색으로 번져 가는 다채로운 색의 향연을 이루고 있었다. 눈앞 가득 꽃으로 환하다. 그 때문인지 마음속 무거움도 어느새 사라지고 있었다.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사회자의 소개에 따라 다음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협연 연주자, 첼리스트 전준현님이 무대에 올랐다. 나이가 지긋한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만큼, 오랜 경력에서 나올 깊은 선율을 기대하게 했다. 그런데 무대 위에 앉은 연주자는, 관객이 의아해할 정도로 오랜 시간 첼로 줄을 조율하고 있었다. 마치 본무대에 오르기 전 마쳐야 할 리허설을 무대 위에서 하는 듯한 인상이었다. 잠시 후 귀에 익숙한 선율이 흘러나왔지만, 잡음이 섞인 듯 깔끔하지 못한 연주는 민망할 정도로 아쉬웠다. 이내 나의 관심은 자연스레 저녁 식사로 옮겨갔다. 이어 등장한 여가수 또한 연륜이 있어 보였지만, 전국노래자랑에 어울릴법한 리듬과 거친 음색으로 축가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나는 무늬가 되는 시간김주선 선배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작가님은 식사 시간엔 한꺼번에 움직이니, 두 번 나가지 말고 한 번에 많이 담아오라고 귀띔해 주셨다. 나는 한 손에 두 개의 접시를 잡는 신공을 발휘하여 하나엔 음식을 꾹꾹 눌러 담고, 다른 하나엔 일행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골고루 담아왔다.

 

후식 테이블을 돌며 과일을 담고 있을 때, 멀리 심무섭 작가가 눈에 띄었다. 그는 오늘 한국산문 신인상을 받은 작가였다. 나는 얼른 그 옆으로 다가갔다.

 

아까 수상소감이 너무 인상 깊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다시 들을 수 있을까요?”

 

처음 글을 쓸 땐 점점 나아지는 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등단하고 나서는 잘 쓰고, 더 나아져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꾸준히 좋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멋쩍은 표정을 짓는 순간에, 나는 얼른 핸드폰 메모장에 기록했다. 심무섭 작가의 수상소감은 나의 게으름을 화들짝 놀라게 할 만큼 마음의 경종을 울렸다. 오늘의 신인상은 산문 작가들의 창작을 격려하고, 신인을 발굴하는 협회의 취지에 꼭 맞는 상이라 생각되었다.

 

하얀 접시에 담긴 음식들은 색색으로 빛나며 서로를 돋보이게 했다. 휘젓는 젓가락 사이로 꽃들은 꽃 춤을 추는 듯했다. 두 접시는 비워졌지만, 나머지 두 접시는 욕심이 만든 참사였다. 내심 당황하여 접시를 서둘러 웨이터 손에 건넸다. 이것은 뭔가 분명히 잘못된 결과였다. 그러나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른 가지가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따뜻한 봄기운에 생기 넘치는 춤을 추듯, 산문 잔치에 초대된 게을렀던 내 마음도 봄기운에 취하고 말았다.

 

꽃구경 실컷 하고 체했다. 봄이라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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