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동창 모임을 갖기 위해 우리는 합천호에 모였다. 호수 주변을 둘러보니 울창한 숲과 새들의 노래 소리는 온데간데없고, 말끔히 단장된 도로와 호수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마치 다른 도시에 온 것처럼 어색하고 낯설다. 오래전에 읽었던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주인공 홀든이 센트럴 파크의 얼어붙은 공원호숫가에서 ‘그 많던 여름날의 오리떼는 다 어디로 갔을까?’ 라고 걱정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한쪽에서는 개발을 쉬지 않고 해대고, 다른 쪽에서는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낙동강 지류인 황강을 막아 댐을 만들어 생겨난 인공호수는 제법 잘 가꾸어져 있다. 그래서 자동차 여행의 새로운 명소로 각광받고 있으며, 봄이면 황매산을 수놓는 철쭉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기도 한다. 더불어 타지에 나가서 살고 있는 고향 사람들마저도 단체모임이나 행사를 할 때 이곳을 자주 이용하고 있다.
산골에서 초등학교에 다녔던 우리는 학생 수가 총 25명으로, 모두 참석해도 한 가족처럼 오손도손한 분위기의 숫자이다. 특히 4학년에서 6학년까지 한 분의 선생님이 담임을 맡아주셨다. 졸업한 지 약 삼십 년 만에 담임 선생님도 모셔서 동창회를 하기로 했다. 우리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배를 타기 위해 호수로 나갔다, 읍내에 계시는 담임선생님도 아침 일찍이 준비해서 달려 오셨다. 배에 몸을 실은 우리는 삼삼오오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잊고 있었던 학창시절의 사연들을 마치 싸매둔 보자기처럼 풀어 놓으니, 저마다의 영상들이 마치 안개 속을 걸어오고 있는 낯익은 친구처럼 또렷해진다.
한 친구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의 잊지 못할 일화로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이면 그네를 서로 타려고 쟁탈전이 벌어진다. 그런데 아무래도 덩치가 큰 친구가 많이 차지하게 되는 바람에 왜소한 친구는 그네를 차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날, 동숙이가 그네를 타는데, 얼마나 세게 발을 굴렀는지, 측백나무로 조성된 학교 울타리 밖으로 날아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아무도 동숙이를 찾으려하지 않고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교실에 들어갔다. 동숙이는 모내기를 하기 위해 질펀하게 다듬어진 논바닥에 떨어져, 마치 땅굴을 파다가 나온 두더지의 모습을 하고 교실로 들어왔다. 많이 유별났던 동숙이를 보신 선생님께서는 혼낼 만도 하셨을 텐데, “다친 데 없으니 다행이다.” 라며, 놀란 제자를 진정시킨 후 수돗가에 가서 씻고 오라고 하셨다. 당시의 자상하신 젊은 선생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선생님은 실과시간에 한 번씩 현장 학습을 위해 우리를 강가로 데려갔다. 강물 속으로 들어가서 모래무지를 발로 잡기도 했다, 모래 밑에 숨어 있던 그것은 발에 쉽게 밟혔다. 미끄덩한 감촉에 놀라서 소리 지르면 친구들이 달려와서 대신 꺼내 주기도 했다, 소리의 크기로 치면 모래무지가 아닌, 고래머리라도 밟은 줄 생각할 만큼 그 소리들은 황강의 절벽에 부딪치며 울리고 있었다. 그렇게 잡은 모래무지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아마 학교 근처에 사시는 어른들께 드렸을 것이라 짐작된다.
황강의 맑은 물처럼 우리들의 꿈도 순수하게 피어나던 그때를 떠올리며, 어느새 중년이 된 동창들은 합천 호수 위에서 아련한 추억 여행을 했다.
선생님께서는 자녀 없이 사모님과 두 분이 살고 계신다. 3년간 담임을 맡으시면서 제자들의 가정사를 세세하게 알고 계셨고, 육성회비가 늦어지는 제자들한테도 전혀 묻지도 않고 말없이 기다려 주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저희들을 아들, 딸처럼 대해주셨던 것 같다.
이율곡의 <학교모범>에 스승을 대하는 예절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데, 스승을 쳐다볼 때는 목 위를 바라봐야 하고, 스승 앞에서는 개를 꾸짖거나 크게 웃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만큼 예를 갖추는데 소홀함이 없어야하는 분이 스승의 자리인 것 같은데, 우리 선생님은 친구처럼, 또는 아버지처럼 챙겨주셔서 거리감을 느껴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어느 늦가을 오후에, 선생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서울 가양동 큰댁에 부모님 제사를 지내러 왔는데 시간이 남게 되었다며 만나자고 했다. 그 당시 나는 직장 일이 정신없이 돌아갈 때여서, 겨우 만나 뵐 수 있었다. 다음 날 오전 근무를 마치고 양평동에 소재한 선유도 공원에 갔다. 공원 다리 위에는 선생님과 조카이신 아저씨 한 분이 함께 서 계셨다. 아치형 구름다리를 건너서 한참 가다보면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길가에 메타스퀘이어와 자작나무가 외로운 선유도를 지키는 데 한몫하는 것 같다. 시원하게 쭉쭉 뻗어 올라간 나무의 자태가 왠지 곧은 심성을 지니신 선생님과 많이 닮아 있는 것 같다. 선생님은 합천군에 소재하는 초등학교 여러 곳을 전근해 다니실 때 경험했던 에피소드와 제자들을 가르쳐 사회로 내보낼 때 뿌듯했다는 이야기도 해주셨다. 그리고 교사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이 정말 보람있었다고 말씀하신다. 선생님의 얼굴에 이미 목화솜보다 포근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오신 선생님처럼, 저도 아프고 어려운 이들에게 언제나 힘이 되는 따뜻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공원 산책을 마친 후, 평소에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순댓국을 대접하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해는 이미 서산으로 넘어갔고, 어둠이 대지에 깔리기 시작했다. 선생님 앞에서 맘속으로 다짐을 해본다. 사회에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될 것이고 언제나 나보다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모른 체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선생님! 어린 저희들에게 선한 심성의 씨앗을 심어주셨고, 사회에 나가서 싹을 틔울 수 있게 밝은 지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