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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다 먹고 줘    
글쓴이 : 정민영    13-04-22 17:05    조회 : 8,576
   밥 다 먹고 줘.hwp (16.0K) [1] DATE : 2013-04-22 17:05:36
 힘든 세상이다. 수많은 젊음이 비정규직이라는 괴물의 먹잇감이 되어가고 있다. 봄날의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나야 할 청춘이 꽃을 피우기도 전에 시들어버리는 것 같다. 밖의 봄은 희망으로 가득한 데 청춘의 가슴에는 잔설이 덕지덕지 붙어 웅크리고 있는 형국이다.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하지만 도를 넘었다. 식욕이 왕성한 잡식성 포식자들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남김없이 다 먹어치우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과거에는 배고픔과의 투쟁이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 희망의 끈을 잡고 있는 한, 배고픔도, 무시와 차별도 견딜 수 있었다. 지금은 지독히도 무섭던 배고픔은 사라졌지만 희망도 함께 가버렸다. 없는 빵은 꿈을 붙잡고 구할 수 있으나 가버린 희망은 빵만으로는 오지 않는다. 꿈을 먹고 살아가야 하는 젊은이들의 삶이 버겁고 힘든 이유다.
 주변을 둘러보면 희망이 사라졌다. 살기가 힘들어 결혼을 하기 싫다는 젊음이 거리에 가득하고 결혼을 하였어도 아이를 두지 않겠다는 신혼이 두 집 걸러 한 집이다. 희망을 뺏긴 가족들의 동반 자살이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 오르내린다.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영혼들이 삶을 포기한 체 아파트 하늘을 날고 있다. 이웃이란 단어가 사라진지 오래다. 옆집에서 노인이 죽어 나가고, 가정폭력으로 경찰이 출동해도 관심 밖의 일이 되어버렸다. 오직 나의 자녀가 잘 되고 예금통장의 잔고가 늘어나고 불로장생의 비법을 구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은 오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방향감각을 상실해 버렸다. 답답한 한 숨 뿐이다.
 모 기업에서는 영업이익이 사상 최대라고 발표를 했다. 나와 관계없는 회사지만 참으로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모 방송국에서 방영되고 있는 ‘00의 신’이란 프로를 시청하게 되었다.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시니컬하고 역설적인 구성이 관심을 갖고 시청하게 만들었다.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묘하게 최대 영업이익을 냈다는 기업실적 발표 뉴스가 비정규 직원의 난감한 얼굴에 클로즈업 되었다. 기업 경영자의 탁월한 경영 수완과 앞선 기술력이 주된 동력이 되어 기업이익을 창출했겠지만 그 기업이익에는 비정규직의 몫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이익을 비정규직에게 조금이라도 배분하였다는 기사를 그 후에 접한 기억은 없다.
 젊음을 한 평도 안 되는 고시원에 가두고, 청춘에게서 꿈과 열정을 누가 빼앗아 갔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그것은 기성세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모든 책임을 사회지도층에게만 떠넘기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 어느 누구도 경중은 있겠지만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막중한 책임은 정치가, 행정가, 기업인 등 사회의 지도층에게 있다고 본다. 그들은 희망과 꿈이 함께 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구성할 책임을 부여받았지만 그 책임을 다 하지 못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국민적 리더의 부재는 이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이 땅의 강자들은 사회시스템이 엉성한 틈을 이용하여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는 자신들의 욕망의 바다에 세상을 담으려고 한다. 탐욕의 바다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다. 그들이 가득 채우고자 했던 탐욕의 곳간은 썩은 악취로 가득차서 아무것도 건져 올릴 것이 없는 허공이었음을 우리는 종종 접한다.
 거대한 나무는 뿌리가 지탱한다. 그 뿌리는 흙이 없으면 거대한 몸통을 지탱하지 못한다.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들은 나무뿌리를 둘러싸고 있는 흙 같은 존재다. 낱낱으로 흩어지면 흙먼지밖에 안되지만 서로 뭉쳐있으면 거대한 나무를 온전하게 지탱할 힘이 있다. 보통사람들의 어마어마한 힘을 젊은이들에게 나누어줘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지금의 사회구조를 세계 경제 환경의 악화로만 둘러대기에는 우리의 얼굴이 너무 두껍다는 생각이다. 젊은이들에게 세상이 각박하니 열심히 실력을 갈고닦아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고 입으로만 외칠 때는 지났다는 생각이다.
 60년대 초의 우리나라 농촌은 배가 고픈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어머니는 들에 나가기 전에 내 몫으로 아랫목 이불 밑에 밥 한 공기를 묻어 두었다. 학교에서부터 따라온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하면 세 살 된 여동생이 밥상머리로 다가왔다.
‘나도 줘!’ 하고 새끼제비처럼 입을 벌리면 한 입, 나도 한 입 밥을 나누어 먹었다. 오빠로서의 다정함은 항상 배고픔을 극복해야 하는 아픔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동생이 다가오더니 밥을 달라고 하지 않는다. 이상해서 물었다. “오늘은 배고프지 않아?” 하고 물으니 “아니, 다 먹고 줘”라고 한다. ‘다 먹고 줘.’ 라는 그 말에 허기진 배가 장난기를 발동시켰다. 밥을 다 먹었다. 동생은 밥을 먹는 동안 밥그릇만 쳐다보다가 빈공기가 되자 갑자기 엉엉 운다. “밥이 없잖아!” “네가 밥 다 먹고 주라며?, 그래서 다 먹었다.”고 동생을 놀려댔다. 동생은 눈물을 거두지 않았다. 나의 장난기와 배고픔이 공모하여 시작된 일이지만 세 살배기에게는 굶주림, 생존의 문제였나 보다. 동생에게 감자를 삶아 준다고 달랬다. 엄마에게 혼날까봐 광에서 감자 세 개를 꺼냈다. 그 때 동생에게 삶아준 감자 세 개, 그 감자는 40년이 넘도록 동생과 나를 다정한 오누이로 엮어주고 있다.
 지금의 각박한 현실은 혹여, 우리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들의 꿈까지 팔아서 다 먹고 남으면 주려고 욕심을 부리는 것에 기인한 것은 아닌지 삶이 두렵다.
 이 땅에서 사라진 꿈과 희망을 찾아줄 수 있는 초인을 그려본다.

문경자   13-04-23 17:00
    
일자리없어 고생하는 젊은이들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선생님의 글속에서  많은 내용을 볼수 있어 공감이 갑니다.
60년대 초의 이야기부터 쓰시면 제목을 살리는 글이 되지않을까 합니다.
밥 다 먹고 줘 참 재미있는 내용입니다.
정민영   13-04-23 20:46
    
감사합니다.   
    작가님의 가르침대로 글을 재구성하도록 하겠습니다.
    '밥 다 먹고 줘'라는 말은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가슴에 달고 다녔던 말입니다.
    그 여동생이 사십대 후반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동생을 보면 오빠가 무슨 잘못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글을 쓰면서 어릴적에 담았던 후회가 조금은 없어지는 듯
    하여 마음이 한결 가벼워 졌습니다.
    작가님의 가르침에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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