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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은 잭업이 아니고 백업이야(수정)    
글쓴이 : 이성열    14-02-04 03:54    조회 : 5,948
그 말은 잭업이 아니고 백업이야/이성열
 
   도착한지 수주가 덧없이 흘렀다. 나는 생활에 점점 주눅이 들고 있었다. 총알처럼 쏴대는 이 사람들의 말을 도대체 알아들을 수 있기는 커녕 그들을 대하기만 하면 하반신이 후들후들 저려왔다. "메 아이 베그 유어 파던?(May I beg your pardon?)"도 한두 번이지 않는가. 첫 번 관문인 운전면허를 따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교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차가 발 역할을 하는 곳이니 차량 운전이 우선이었다.
  차량 국인가 하는 곳을 바쁘다는 친구와 같이 찾아 갔다. 그런데  나는 다소 기고만장했다. 도착하자마자 필기시험을 치렀는데, 예상외로 단번에 합격을 한 것이다. 내가 도착했던 미 동부지방은 대도시와는 달라서 외국인들이 희소하였고, 아울러 한글로 된 면허시험은 생각해 볼 수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이 그것도 갖은 실력을 발휘하여 어설피 굴려대는 영어 발음 액쎈트는 전혀 이해해 주질 않았다.
  친구의 권유에 따라 '로우드 테스트' 실기 시험을 보기로 하였다. 나는 담당으로 보이는 융통성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경찰에게 가서 주섬주섬 단어를 늘어놓았다. 나의 뜻을 알아들은 그는 종이 한 장을 주면서 실기 시험을 치르도록 위의 문 쪽을 가리키며 무어라고 지껄였다. 나는 그가 한 말을 다 놓쳐버리고 '아웃(out)'이라는 단어 하나가 전달되었기 때문에 그 서류종이를 가지고 밖으로 나와서 기다렸다. 조금 후에 친구도 따라 나왔다.
 그러나 웬일인가? 미국 남부의 날씨는 덥고 밖에 나와서 반시간이 지나도록 기다렸으나 안으로부터는 꿩을 구워 먹었는지 아무런 대응도 없는 게 아닌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친구가 사무실 안으로 다시 들어가서 그 인정이라곤 없어 보이는 경찰에게 물었다.
  "왜 사람을 나가서 기다리라고 해 놓고 반시간이 지나도 당신은 나오지 않는가?" 
그는 나를 위해 이렇게 항의해 주었다. 그랬더니 그 경찰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친구에게 말하였다.
  "내가 언제 나가서 기다리라고 했는가? 그 서류를 기입(fill out)하라고 했더니 저 친구가 저렇게 나가서 서성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친구는 나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 갈 심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참아야 했다. 앞으로 미국에 살자면 어차피 겪어야 할 굴욕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안으로 들어 왔다. 들어와 보니 그 뒷문 입구 옆에는 필기를 위한 조그마한 탁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경찰은 거기에서 쓰라고 문 쪽으로 손짓을 했던 것이었다.
 남의 나라 말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해하다 못해 신비라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이곳에 오기 전 곧잘 일상회화가 어렵다는 친구들에게,
  "미국에 가서 반년만 지나 봐라. 그까짓 영어쯤이야 십년 이상을 배웠는데……."라고 허세를 부린 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나는 수십 년이 넘은 지금까지 실감하며 살고 있다.
  언젠가 이곳 신문에서 독일 나치 전쟁범이 미국에 숨어 살다가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취급된 적이 있다. 그가 30년 이상이나 이 미국에서 생활해 오고 있으나 아직도 불완전하고 더듬거리는 영어를 쓰고 있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우리 동양인보다는 훨씬 영어문화권에 가까운 서양인이 30년 이상이나 이곳에 살아왔어도 유창한 영어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맥 빠지게 하였다. 이곳에서 자란 일곱 살 철부지의 말은 오히려 이들이 잘 알아듣는데 왜 신문을 읽을 줄 아는 내 말은 잘못 알아듣는가.
  말과 말 사이는 분명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신의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인가? 성경의 말처럼 신께서 우리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한 섭리를 믿어야 할 것인가. 인간이 스스로 같은 말로 단결하기 위하여 쌓았던 바벨탑 때문에 우리의 말이 갈리고 혼잡해졌다는 탑의 비밀이 있다면 몰라도, 사람이 스스로의 편리를 위하여 만들고 생겨난 말이 이토록 어려운 것인가.
  얼마 전 일이었다. 내가 일하는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여성들과 이러쿵저러쿵 말을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한 백인 여성이 어떤 동양인과 동거 중이라고 하면서, 그의 말은 유창한데 내 말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이유를 가려내기 위해서 그가 몇 살 때 이곳에 오게 되었는가를 묻기 위하여 한다는 말이,
  "디드 히 컴 얼리(Did he come early)?" 하고 더듬거렸다.
갑자기 그 때, 내 말을 듣던 여성들이 모두 얼굴이 빨개지면서 배를 움켜쥐고 박장대소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나는 내가 한 말 뜻이 잘못된 것임을 얼른 알아차려야만 했다. 즉 내가 뱉은 말뜻이 '일찍 왔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이 오르가즘에 빨리 오르는 편이냐'에 가까운 뜻으로 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도 얼굴을 붉히며 얼른 잘라서,
  "내가 한 말 뜻은 그 게 아니고 언제 그가 미국에 이민 왔는가라는 뜻이었다." 라고 다시 구구한 설명을 한 적이 있다.
  또 하나의 일화가 생각난다. 어려운 단어 의미 시합을 하다가 나에게 지고 만 미국 친구가 홧김에 나를 부르더니 이렇게 말했다.
  "자네 영어를 그렇게 어렵게 배우면 한이 없네. 일상  회화는 그렇게 어려운 단어가 필요 없으니 앞으로는 내가 가르쳐 주지."
  하고는 "백업(back off)!" 하는 것이었다. 그 뜻이 무언지 모르는 나는 당장 그 의미를 물었더니, "꺼져! 라는 뜻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잠시 후 그가 내게 와서 무슨 장난을 하기에 얼른 생각하여 한다는 말이, "잭업(jack up)!" 하고 말았다. 얼굴이 약간 붉어진 그 친구는 내 귀 속에 대고는 속삭였다.
 "자네, 여성들 앞에서는 그런 말 쓰지 말게. 그 뜻이 망측하니까. 내가 가르쳐 준 말은 '잭업'이 아니고 '백업'이야.

임정화   14-02-05 09:52
    
안녕하세요, 이성열 선생님.
이 글은 수정작이네요. 제가 수정전 작품을 읽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아주 재미있게 잘 쓰셨습니다.
그런데 첫 문장이 독자를 약간 헤매고 만드는군요. 어디에 도착한 것인지, 연작 형태로 쭉 읽지 않는다면 알 수 없어 어느 정도 진행이 될 때까지 궁금증을 참아야 하니까요.
그리고 이 글의 상황은 미국에 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적 일인 것 같은데 맞나요?
글을 읽다보면 미국 생활이 얼마 되지 않으셨나보다, 하는 어림짐작도 하게 만드는데요.
시기를 좀더 명확히 짚어주실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비슷한 상황들을 꽤 들어왔지만, 저로서는 여전히 재미있고 신선한 이야기들이네요.
아주 잘 읽었습니다.^^
정혜선   14-02-05 16:19
    
저 역시 첫부분을 짚고 싶습니다.
도착한 지 수주가 덧없이 흘렀다고 하니 현재진행형으로 읽히거든요.
하지만 중간 부분에 "수십 년이 넘은 지금"이 나오니까 시제가 맞지 않는 거지요.
이민한 지 몇 주가 지났을 때였다...고 하면 무리없을 듯합니다.
마지막에 잭업의 뜻도 밝혀주셨음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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