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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오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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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심이 언니    
글쓴이 : 오윤정    14-11-26 00:38    조회 : 28,592
 
 
 
 
 
정  심   이  언  니
 
 
 
 
 
 
 엄마 뒤를 따라 작은 보따리를 가슴에 안은 처녀가 들어섰다. 동그란 얼굴에 숱 많은 단발머리. 그녀의 이름은 정심이었다. 입 하나 덜자고 파주 지나 깡촌인 고향을 떠나 우리 집으로 왔다고 했다. 시집갈 때 장롱이랑 이불 한 채 해주기로 약속하고 데려왔다.
 싹싹하고 밝은 성품의 그녀는 늘 노래를 흥얼거리며 잰 몸짓으로 집안을 오갔다. 낭랑한 음성으로 <흑산도 아가씨>며 <섬마을 선생님>을 구성지게 불렀다. 아버지 때문에 마음 상한 엄마에게는 친구, 우리 자매에겐 살가운 언니였다.
 
 한두 해 지나 서울 아가씨 태가 날 즈음 언니에게 애인이 생겼다. 어느 저녁 그녀가 외출을 하자고 했다.
토끼털 달린 빨간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보자기에 싸놓고 이따금 꺼내어 보던 새 옷이었다. 저녁외출이 마뜩치 않은 엄마의 시선을 피해 언니를 따라 나섰다. 거리에는 노점상들이 칸델라 불을 켜고 군밤을 굽는 가을 저녁이 시작되고 있었다. 간간이 떨어지는 플라타너스 잎을 밟으며 집근처의 제과점으로 갔다.
 제복을 입은 남자가 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운동장 건너편에 있는 집 앞의 여관에 머물고 있던 해군사관생도였다. 그 여관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선수들과 학생들이 머무르곤 했다. 서울운동장에서 가을이면 육,해,공,사관학교의 행사가 열렸다. 큰 체격에 비해 수줍음이 많은 그는 럭비선수였다. 우유잔을 만지작거리는 언니의 귓불에 붉은 물이 들었다. 서울물 먹어 해사해진 얼굴이 더 곱게 보였다.
 그 저녁 외출 후 언니의 웃음소리는 가을하늘처럼 맑고 높아져갔다. 동그란 얼굴엔 헤실헤실 웃음꽃이 피어 올랐다. 저녁이면 콧소리 섞인 언니의 노래와 내복바람에 마이크대신 양복 솔을 쥔 나의 노래가 담을 넘었다.
 언니는 가끔씩 진해에서 올라오는 사관생도를 만나기 위해 외출을 했다. 나도 함께였다. 두 사람의 손을 잡고 장충단공원, 덕수궁, 단팥죽 집이며 중국집을 따라 다녔다. 수줍은 연인들은 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마음을 전했다.
 
 이듬해 가을 무렵 언니의 볼에서 복사꽃이 사라졌다. 웃음소리도 노래도 들을 수 없었다. 사관생도와 헤어졌다고 했다. 열아홉 나이에 스물한 살 처녀라며, 우리집 큰딸 행세 했던 것을 그가 알게 되었다고 했다. 사랑하지만 언니의 처지까지 사랑할 자신이 없다고 하더란다. 사랑 노래가 슬픈 이유를 나는 어렴풋 알게 되었다.
 플라타너스 잎이 다 떨어진 겨울이었다. 통통했던 볼 살이 내리고 웃음을 잃어버린 언니가 우리 곁을 떠났다.  편지 한장 남기고 서울 올라 올 적 가져온 보따리에 옷가지만 넣어 갔다. 부모님이  그녀의 고향집으로 찾아갔다. 정심이 언니는 그곳에 없었다. 딸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음에도 그녀의 가족들은 염려하는 기색이 없었다고 했다. 엄마는 더 가슴 아파하셨다. 쉬는 날이면 어딘가에서 방황하고 있을 언니를 찾아 나섰다.
 몇 달 지나 동두천의 어느 술집에서 그녀를 찾았다. <카투사의 노래>를 부르고 있던 짙은 화장의 그녀는 해맑고 웃음 많던 우리의 정심이 언니가 아니었다고 했다.  정심이 언니는 한사코 돌아오기를 거부했다. 어느 날 부모님은 그곳을 떠난 언니의 소식을 갖고 돌아오셨다.  보이지 않는 바위가 두 분의 어깨에 얹혀 있었다. 지키지 못한 약속의 무게였다. 세월 속으로 그녀는 조금씩 사라져갔다.
 
 칸델라 불꽃의 하늘거리는 춤, 밥 굽는 내음 가득했던 가을 저녁이 그립다. 칸델라 기름 타는 냄새 맡으며 플라타너스 잎 떨어지는 거리를 걷고 싶다. 어디에선가 <흑산도 아가씨>를 구성지게 부르고 있을 것 같은 내 기억 속의 그녀는 숱 많은 단발머리, 동그란 얼굴의 열아홉 살 처녀다.
 
 
 
 
 
 
 
<에세이스트 2014년 11.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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