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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선의 미학    
글쓴이 : 김형도    13-01-20 20:33    조회 : 4,404
 
                                     곡선의 미학
-곡선의 철길-
김형도
강원도 현장에 있을 때부터 나는 곡선의 길을 따라 달리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올 때도 직선의 고속도로보다 곡선의 지방도를 택해서 다니곤 했다. 꼬불꼬불하고 굴곡이 있는 도로를 달리는 것이 직선도로보다 훨씬 드라이브하는 기분이 나고, 주위의 경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서울에 와서도 시간이 나면 집사람과 함께 드라이브하는데 곡선이 많은 국도나 지방도를 달린다. 가끔 남한산성에 갈 때는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고, 하남시를 통과하는 국도를 따라 동문(東門)으로 들어가곤 했다.
산성(山城)으로 올라가는 길은 산의 지형을 따라 도로가 나 있기에 직선은 거의 없고 꼬불꼬불 곡선을 그린다. 주위 산세(山勢)도 아름다워 그 경관 속으로 난 휘어진 길이 참으로 정감이 들어 마음이 빨려들기도 한다. 산허리를 돌아 곡선의 길을 따라 달릴 때는 직선 도로와는 다른 느낌을 안겨주는데, 그런 기분은 세월이 가고 연륜이 쌓일수록 더해 간다.
곡선도로에는 여유가 있다. 주위를 살피며 가는 그 여유 속에서 사색도 하고 깊은 통찰을 얻기도 한다. 그래서 나만의 꿈을 꾸기도 한다. 인생을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곡선주로는 어쩌면 우리에게 삶을 살피고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만들어둔 완행구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직선길, 지름길을 택한다. 목적지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쉽게 가기 위해서. 그러다보면 놓치는 것도 많고, 여유의 멋도 모르고 지나치기가 십상이다. 인생은 때때로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을 요구한다.  길은 멀어도 그 안에 휴식과 안정이, 계획과 바람이, 예술과 사랑이 있지 않을까!
옆을 보고 뒤돌아보면 곡선은 참 아름답다. 쏠쏠한 가을바람이 석양의 긴 그림자를 끌 때, 논밭길을 숨을 몰아 재촉하는 휘청휘청 발걸음. 촌로의 지게 진 모습까지도 전혀 낯설지 않다. 세월을 지고 오느라 허리는 좀 굽었지만 그 세월에 동화된 자연스러운 모습이 여간 정겹지 않다. 세상의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삶의 진실이 아닐까?
이른 아침 곡선의 산책길을 거닐면서 잠시 멈칫했다. 바로 내 이야기 같다. 나는 너무 직선적으로 살지 않았나. 너무 올곧게 살아야 하는 강박에 시달린 게 아닌가! 곡선의 시골길이 주는 여유와 행복감이 있는데. 예전에 곡선에 관해 비슷한 글을 읽기도 쓰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내 자신이 참으로 모자라 보인다.
오늘도 직선의 길을 위해 해결해야 할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곡선의 미학을 떠올리며 너무 밀어붙이지 말아야겠다. 내가 인생을 얼마나 살아왔느냐! 종심소요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공자의 말씀이다. 마음의 뜻대로 행해도 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말씀인데, 나도 그 나이에 이르렀다.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 대단한 존재인양 으스대나 자연의 한 존재일 뿐이다. 나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공자님의 말씀을 새겨들어 인생을 다시 음미해보련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이제 칠십의 중반을 향해 달리니 내 마음에 여유를 갖고 느긋한 마음으로 생활해야 하지 않을까?
요즘은 도로는 물론이고, 기차 철로도 휘어진 곡선이 더 그리워진다. 내가 오랫동안 살았던 강원도는 산이 많아 철로는 직선이 흔하지는 않았다. 터널이 아니면 산을 휘감아 도는 곡선의 철길이 대부분이었다. 속력을 낼 수 없어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했지만, 그 곡선의 철로가 내게는 참 아름답게 보였고 의미로웠다. 그런데 그 현장을 나와 지금은 직선에서만 산다. 자주 눈에 들어오던 곡선의 철길도 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집 가까이 곡선의 선로가 있는 금곡역을 찾기도 했는데, 이 역마저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경춘선 복선전철이 개통되면서 驛舍는 직선의 새로 난 철길로 옮겼다. 경춘선을 따라 사릉(思陵)역을 지나면, 남양주시 중심인 금곡동의 금곡역에 도착한다. 남양주가 시로 승격되면서 미금시와 통합하고 시청도 이곳으로 옮겨왔다. 도시화가 진행된 금곡동 시가지의 한켠으로 밀려나 또 한해를 보내고 있는 작은 역이 있다. 금곡역이다.
경춘선 개통 때부터 지금까지 70여 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면서 서울과 춘천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다행하게도 역 구내에 들어오면서부터 역을 빠져나갈 때까지 직선은 없다. 모든 여객열차는 허리를 가볍게 꺾으면서 금곡역으로 들어온다. 정기여객열차는 금곡역에서 교행을 하기 때문이다. 휘어져 돌아가는 곡선의 철로가 정서를 더 느끼게 해준다. 아득한 마음의 고향을 느끼게 한다. 곡선과 느림의 미학이 가득한 곳이다.
승강장 위 열차를 기다리는 장소는 원두막 비슷하게 지었다. 꽉 막혀있는 다른 역과 달리 사방이 개방되어 여름에는 참 시원할 듯 하다. 승강장 끝 쪽에는 한 세대 전의 역명판을 남겨놓는 센스도 발휘한다. 저 멀리 정지판 너머로 새로운 금곡역이 보인다. 경춘선이 복선화 되면서 역사는 저 고가 선로에 마련된 승강장으로 옮겨갔다. 현대식 새 역사는 넓고 호화스럽지만, 아담한 구역사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정말 향수를 느끼게 하는 옛 역사다.
경춘선 선로가 산을 빙 둘러가면서 금곡동 주변으로 긴 곡선을 그리기 때문에 금곡역도 이렇게 산을 끼고 곡선부에 위치한 역이 되었다. 이런 풍경은 새로 건설된 신선(新線)에는 더 이상 구경하기 힘든 풍경이다. 아쉬움에 다시 역사를 돌아본다.
금곡역은 매일 총 26회의 열차가 정차하고, 특히 청량리 방면은 거의 모든 열차가 쉬어갔다. 또한 경춘선의 열차는 80%가 구 금곡역에서 교행을 했다. 청량리에서 춘천까지 5개의 곡선역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금곡역이다. 그만큼 곡선에서는 기관차가 제어할 때 시야확보가 힘들기 때문이다. 역 내부는 아담하게 꾸며져 있다. 맞이방 안에는 기다리는 손님들을 위해 에어컨도 설치되어 있다. 난로는 좀 옛날 방식이기는 해도.
그런데 완만한 곡선은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적으로 풍기는 감각이 일직선 보다 훨씬 아름답다. 곧게 뻗은 나무보다는 구부정하게 휘인 소나무가 멋있어 보인다. 직선의 해안선 보다는 굴곡이 있는 해안선이 돋보이고, 한번 휘청 굽이치며 U형으로 돌아가는 물줄기에서 더 멋을 느낀다. 그러고 보면 멋을 유발하는 근원은 상도(常道)나 정형(定型)에서 약간 벗어나는 곡선의 경지임을 알 수 있겠다. 바로 곡선의 미학(美學)이 아닌가!
우리네 삶도 이와 다를 바 없겠지. 상도에서의 일탈, 일상성 정체성에서 일탈, 속박성 규격성에서의 일탈, 진부한 관행이나 인공에서의 일탈은 한국인의 멋을 창출해내는 알파요 오메가가 아닐까? 그래서 곡선이 주는 여유와 멋을 알고, 행복감도 느낄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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