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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러운 오해    
글쓴이 : 조헌    12-11-30 10:00    조회 : 4,809
 
부끄러운 오해
                                                                      
                                                         조       헌

 좋은 날을 가려 편안하게 죽는 것도 큰 복이라고 한다. 그래서 유교(儒敎)에서 이르는 오복(五福)중에도 고종명(考終命)이 있는 것은 아닌지. 따뜻한 봄날 자는 잠에 가게 해 달라고 늘 소원하는 노인을 본적이 있다. 자기의 마지막 가는 길에 수고로울 자손들과 그것을 지켜보아야 할 많은 사람들에 대한 착한 배려일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 일 만큼은 자기 뜻대로 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추석날 아침이었다. 차례를 마치고 음복(飮福)도 채 끝나지 않았는데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정말 민망하네. 차례는 잘 모셨는지? 다름이 아니라 지금 막 어머니께서 별세를 하셨네. 어찌할 바를 몰라 염치 불구하고 자네에게 도움을 청하네.” 당황한 기색이 역역한 목소리로, 미안하다는 말을 거듭 하면서 전화를 끊은 선배! 여러해 전부터 어머니께서 병석에 계신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있었지만, 다른 날도 아니고 명절날 아침에 운명을 하시다니 선배의 당혹스러움이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었다. 나는 서둘러 선배를 찾았다.

 빈소(殯所)는 강남 성모병원이었다. 돌아가시는 분들도 명절은 알고 피하시는지 평소 그토록 붐비던 곳이 의외로 조용했다. 물론 우연이겠지만 열개가 넘는 영안실은 모두 비어있었고 단지 선배의 어머니만이 한곳을 차지하고 계시는 것이었다. “아주 가까운 친척 몇 분에게만 연락을 했다네. 날이 날인만큼, 도저히 미안해서 연락을 할 수가 있어야지! 오늘이나 지나면 연락을 해볼까 해.” 나도 딱히 좋은 의견이 떠오르지 않아 선배의 말을 그냥 듣고 있을 뿐이었다. 영안실의 텅 빈 복도와 조문객이 전혀 없는 외로운 상청(喪廳)은 썰렁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했다. 넋 나간 사람처럼 어머니의 영정(影幀)만을 올려다보고 있는 선배와 한쪽에 모여 우두커니 앉아 있는 가족들, 그리고 그 모습을 무지근히 바라보는 나. 시간은 무심히 흐르고 있었고 아무도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때였다. 유난히 큰 소리로 전화벨이 울렸다. 책상에 전화기가 있었던 것조차 몰랐던 사람들은 침통한 분위기를 깬 벨소리에 깜짝 놀라 책상위로 시선을 모았다. 내가 받은 수화기에선 아주 천천히 말하는 중년 여인의 작고 힘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성모병원 7호 영안실인가요? 혹시 돌아가신 분의 성명과 세례명을 알 수 있을까요?” 문상(問喪)을 하러 오기 위한 문의 전화로만 생각한 나는 친절하고 정확하게 답변 해 주었다. 그러자 “아 네 고맙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신 분 연세는 얼마나 되셨으며, 자녀분은 몇 분이나 계신가요? 참! 오늘 돌아가신 것은 분명히 맞지요?” 나는 갑자기 의아해졌다. 방문(訪問)을 위한 확인치고는 질문의 내용이 점점 이해가 되지 않자, 문득 장사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전에 누군가에게 들었던 바도 있고 해서, 나는 상주들을 상대로 종종 폐를 끼친다는 장사꾼이 분명하다는 성급한 확신에 다짜고짜, ‘당신은 누구냐? 상을 당해 정신없는 사람들에게 너무 한 것 아니냐? 우리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말로 속사포처럼 쏘아붙였다. 그리고 대답할 겨를도 주지 않은 채 그만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고도 성이 차지 않아 한참 열을 내고 있을 때, 병원 사무실에 근무하시는 수녀님 한분이 찾아오셨다. “혹시 어떤 아주머니께서 전화를 하지 않으셨나요? 제가 여기 전화번호를 알려드렸는데.”하고 묻는 수녀님의 진지한 표정을 보면서 나는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고, 더욱이 그 여인의 아픈 사연을 듣고 난 후에는 더 이상 고개를 들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 여인은 몇 년 전 사고로 거의 온 몸이 마비되었다고 한다. 그 여인의 몸에서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작고 어눌하게 말 할 수 있는 입과, 가까스로 움직이는 한쪽 팔 뿐이라고 한다. 사고 후, 절망의 벼랑 끝에서 수없이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그녀는 현재 자신의 모든 삶을 종교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거의 움직일 수 없는 그녀에게 기도는 하루일과의 시작이자 끝이었으므로 신앙심만은 남달리 깊어갔지만, 기도 외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종교행위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던 중 그 여인이 생각해 낸 것이 연도(煉禱)였다. 연도란 천주교인들이 죽은 자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천주님께 간곡히 바치는 위령기도(慰靈祈禱)라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그녀가 남을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신앙행위였으며 현재 자신의 처지에서 베풀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틈만 생기면 이곳으로 전화를 걸어 기도를 위한 망자(亡者)의 몇 가지 정보를 알아가지고는 혼신의 힘을 다해 진심어린 기도를 올린다는 것이었다. 명절 아침인 그날도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하는 그녀는 돌아가신 누군가를 위해 연도를 바치고자 생각했을 것이고, 필요한 사항을 알기 위해 이곳으로 전화를 했던 것이리라. 그런데 그만 경솔한 내가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었다.

 모진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보석같이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이 있다. 자신의 전 재산을 아낌없이 기부하는 사람, 거의 매일 남을 위해 기꺼이 봉사하는 사람, 하물며 자신의 목숨까지도 선뜻 바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종종 마음에서 우러나는 갈채를 보내기도 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 여인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능력이 너무나 없었다. 오히려 한 순간도 남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남아있는 작은 능력이나마 남을 위한 기도에 사용하려 애쓰는 그 여인이야말로 성녀(聖女)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는 그녀의 따뜻한 마음을 통해 진정한 봉사는 남을 위해 베푸는 일이 아니고 오히려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라는 말의 뜻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이 여인의 절실하고 아름다운 기도가 있음에 종교는 이 사회에서 정말 요긴하게 기능하고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현재 우리는 너무나 뒤틀리고 헝클어진 세상 속에서 눈곱만큼도 남에 대한 배려 없이 뒤죽박죽 살고 있는지 모른다. 나부터가 남의 사정에 귀 기울이고 이해하기 보다는 무조건 겯고틀면서 손발톱을 세우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면 가슴이 아프다. 마음에 작은 여유마저 갖지 못한 채, 쉽게 결론내리고 곧바로 행동하고 마는 조급증 환자들의 세상이 되 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참말로 천박한 오해를 하고서도 별 생각 없이 싸잡아 몰아세웠으니 생각하면 할수록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다.

 오늘밤, 함부로 내뱉은 내 말 때문에 참담했을 그 여인을 생각하며 사려 깊지 못한 나를 밤새도록 미워하고 또 미워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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