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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정말 죄송해요!    
글쓴이 : 조헌    12-11-23 10:16    조회 : 4,279
 
아버지, 정말 죄송해요!

                                                                            조    헌

 부모님께서 오랜 서울 생활을 접고 경기도 양평으로 자리를 옮긴지가 벌써 6년이 넘는다. 그 곳은 서울을 출발해 팔당과 양수리를 지나 그림처럼 펼쳐진 남한강 국도변에 자리 잡은 조용한 농촌마을이다. 서울에서 한 40여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적당한 거리인데다가 최근엔 전철까지 개통되어 드나들기가 훨씬 더 수월해졌다.
 대개 토요일 오후 일과를 마치면 나는 서둘러 그곳엘 간다. 팍팍한 도회지를 벗어나 그곳에 도착해 집주위의 자연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푸근해지고 온 몸은 싱그러운 기운에 흠뻑 젖는다. 사계절 풍광은 제각각 다르지만 느끼는 여유로움은 언제나 한결 같다.

 부모님은 연세가 높지만 강건하고, 새로운 환경에도 적응을 잘해 마을사람들과 편히 지내는 모습이 참 좋다. 게다가 전에 비해 날로 좋아지는 두 분의 건강을 지켜볼 때면, 많이 망설였던 이곳으로의 이주(移住)가 너무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시골에서의 생활은 그저 단순하고 한가롭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뒷산에 올라 능선을 따라 한 바퀴 돌아내려오면 적당히 운동이 되고, 농사철에는 부지런히 텃밭에 채소를 가꿔 아는 분들과 나누며 겨울엔 독서와 산책으로 소일하는데 드물게 찾아오는 손님을 맞거나 마을회관에 놀러가 이웃들과 시간을 보낼 때도 종종 있다. 조금 먹고 많이 움직이는 좋은 습관과 번잡한 생각을 버리고 무심(無心)히 지내려는 두 분의 모습은 한껏 여유로웠다.
 꽉 짜여 진 것은 아니지만 노상 반복되는 것이 시골생활이다. 하지만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가끔씩은 예기치 못한 일들이 불거질 때가 있는데 일요일 아침, 목욕을 하기위해 읍내에 가는 일만은 어김없이 챙겨 이제껏 빼먹은 적이 몇 번 없다.

 어느 추운 일요일 아침, 그날도 나는 부모님을 모시고 목욕을 갔다. 수년간을 거의 같은 시간에 다니다보니 이젠 제법 낯익은 얼굴도 생기고 몇몇 사람들과는 안부까지 묻곤 했다.
 건강은 하셔도 팔십을 넘긴 연세라 욕조에 오래있는 것이 염려스러웠지만 우리 부자(父子)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느긋하게 얘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대화는 주로 가족이나 동네사람들의 사소한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가끔씩 아버지는 신기하리만치 또렷하게 기억하는 아주 먼 옛일들을 어제 일처럼 내게 들려주신다. 어쨌든 김이 서린 탕 안에서 상기된 아버지의 건강한 얼굴을 보면 편안하기 그지없다.

 “아이쿠! 오늘은 우리가 좀 늦었습니다. 그간 별 일 없으셨죠?” 한 어른이 반갑게 아버지께 인사를 건넨다. 이곳에서 종종 만나는 또 다른 부자였다. 그들 부자는 우리 쪽보다는 각각 십여 살 정도씩 아래로 어른은 이제 일흔이 좀 넘어 보이고 아들은 사십대 초반쯤 된 듯싶었다. 몸집이 크고 넉넉한 인상의 그쪽 어른은 아주 뚱뚱한 편이어서 자신도 그다지 민첩하지 못한데 더욱 딱한 일은 아들의 몸이 성치 않아 탕 안까지도 지팡이를 짚고 들어오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였다. 오늘도 불편한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온 것이다. 아들은 창백한 얼굴에 깡마른 체격이 한눈에도 병색이 짙어 보였다. 몸 한쪽을 거의 쓰지 못하는데 특히 오른쪽 발이 심한 듯 질질 끌며 걸었다.
 아버지는 손을 들어 반갑게 아는 체를 하셨고 나도 엉거주춤 일어나 인사를 했다. 아들을 곁부축해 들어온 어른은 조심스레 아들의 엉덩이를 받혀 욕조 턱에 안치고는 한쪽 발씩 들어 탕 안으로 밀어 넣은 후, 아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자신도 천천히 탕 안으로 들어왔다. 그때서야 아들은 가쁜 숨을 고르며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이때쯤이면 네 사람 모두 말로 하기 힘든 감정에 덧들려 각각 시선을 따로 둔 채 한동안 묵묵히 있게 된다. 어색하지만 쉽게 흩을 수 없는 침묵인 것이다.

 “오늘은 날씨가 몹시 찬데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버지가 먼저 말을 꺼내자, “추워도 저 사람한테는 일주일 중 유일한 외출이고 또 즐거움인데 어떻게든 와야죠. 또 목욕을 하고나면 몸이 풀려선지 덜 괴로워 하니까 빠질 수가 없네요. 한데 언제까지나 이렇게 데리고 다닐 수 있을는지 그게 걱정이죠.” 한숨 섞인 어른의 목소리는 탕 안에서 유난히 크게 울리며 비감함을 더했다.
 당연히 그들 부자의 목욕은 우리와 달랐다. 서로 등을 밀어 줄 수 없는 까닭에 딴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아들을 먼저 때밀이 침대에 올리고 옆에서 우두커니 지켜보던 어른은 비누칠을 마친 아들이 샤워기 쪽으로 가고나면 그때서야 자신도 몸을 맡긴다. 하지만 때를 밀면서도 연신 아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는데 잠시라도 보이지 않게 되면 놀란 듯 두리번대며 아들의 정황을 확인했다. “정말 두 사람 다 못할 짓이네. 누가 더하고 덜하겠어? 똑같은 저 맘들이 얼마나 쓰리고 아플까?” 아버지는 번번이 혀를 차며 가여워했다.

 목욕을 마치고 탈의실로 나오면 우선 아버지의 머리를 말려드린다. 언젠가 덜 말리고 나갔다가 감기로 심하게 고생하신 적이 있어 잊지 않고 해드리는 일이다. 그때쯤 그들 부자도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데, 아들의 몸을 마른수건으로 꼼꼼하게 닦아준 어른은 자신의 몸을 닦으며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때였다. 아들이 불편한 다리를 끌며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저....... 미안하지만 제 아버지 머리도 좀........” 너무 작은 소리로 내게 말을 하는 거였다. 나는 금방 그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었고 좀 계면쩍었지만 곧바로 어른께 다가가 손을 잡아끌며 흔연한 척 “이리 오세요. 머릴 말리지 않고 나가면 감기 들기 십상이에요. 보통 추운 날이 아니잖아요.”하고 헤어드라이어에 스위치를 켰다. 처음엔 손사래를 치며 마다했지만 이내 머리를 맡긴 채 순순히 서 계셨다. “이거 참 미안해서 어쩌나. 난 괜찮은데.......” 숱이 많지 않는 어른의 머리는 바로 말랐다.
 이때, 자기 아버지 옆에 바짝 섰던 그 아들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신음처럼 말을 했다. “아버지, 정말 죄송해요!” 눈가가 젖은 채 짧은 말을 마친 아들은 야윈 어깨를 보이며 돌아섰고, 덩치가 큰 어른의 미간도 잔뜩 찡그려지며 울음을 참는 듯 내게 등을 돌렸다. 남의 손까지 빌려가며 아버지의 머리를 말려드리고 싶은 그 아들의 속내를 왜 모르겠는가. 수굿하게 머리를 맡기고 서있는 어른과 그것을 무연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아들의 모습은 차마 감당하기 힘든 아픔처럼 내 가슴을 후비어팠다.

 인생은 항상 너절하고, 겨우 견딜 만큼의 고통이라지 않던가. 차라리 씨아 속에 손가락을 넣고 견디라면 견딜까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끝 모를 늪에서 서로를 위해 앙버티는 저들의 마음은 과연 어떤 것일까? 나는 기적이란 말을 떠올리며 부디 건강이 다시 찾아와 마른 삭정이처럼 피폐한 저들의 삶에 맑은 윤기가 흐를 수 있도록 간절히 기원해 본다.
 진정 삶의 밑그림은 언제나 이렇듯 슬픔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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