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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산문(2024년 9월) 등단작품 (이창섭)    
글쓴이 : 이창섭    24-10-08 11:14    조회 : 2,193
   한국산문 등단 작품(2024년 9월, 이창섭).hwp (93.0K) [0] DATE : 2024-10-08 11:15:30

믿음의 힘


무릉 이창섭

 

   보증은 인간 사회에 믿음과 신뢰를 주는 최고의 선행인가, 아니면 우리를 고난의 가시밭길로 몰아넣는 악마의 달콤한 속삭임인가. 보증을 잘못 서서 패가망신하는 경우를 숱하게 보아왔지만, 예외도 있다는 사실을 곁에서 지켜본 적이 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남을 도와주어야 할 때도 있고,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도 생긴다. 보증을 통해 믿음과 안정을 얻을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보증은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과 성능에 대한 확신을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인간에게 더없는 믿음을 주므로 그 고마움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다.

   1970년대 초반은 대학가에 시위가 빈번했을 때였다. 당시의 시위는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의 중요한 사회 운동이었다. 이 시기에 대학생들은 자유, 정의, 민주화 등을 요구하며 사회에 긴장과 변화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학생들은 정치적인, 사회적인, 경제적인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변화를 이끌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당시 사회 정의 실현에 대해 순수한 마음으로 시위대를 따라 처음으로 거리에 나섰던 모 대학 신입생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공부만 했던 소위 KS 마크 출신인 새내기 대학생이 무슨 사회 정의 구현에 큰 신념이 있었겠는가. 우연히 보았던 시위 현장에서 의식화된 운동권 학생의 구호와 선동을 보고 순진한 신입생이 그냥 휩쓸려 들어간 것이다.

   일장 연설이 끝난 후 학생들은 선동하던 학생을 따라 거리로 진출했다. 이내 철통같이 길을 막고 대기하던 경찰들과 부딪치고 곤봉 세례를 받게 되었다. 혼란했던 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숙련된 진압 작전이 끝날 무렵, 새내기 대학생은 그만 경찰에 잡혀 그 유명한 닭장차에 타게 되었다. 이 새내기가 끌려간 관악경찰서에서 경찰의 문초를 받았는데, 그는 자신이 왜 이곳에서 조사받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경찰이 각본대로 진행하는 질문에 순순히 응했다. 그는 낮에 학교에서 선동하던 학생이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대응해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뿔싸! 선동하는 학생은 보이지 않고, 의식화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순진한 학생들만 여러 명 경찰서에 잡혀있었다.

   용감하게도 맨 앞에서 시위에 참여했던 이 새내기는 당시 악명높았던 국가보안법 탓으로 시위 적극 가담자로 분류되어, 그만 영등포 교도소에 수감되고 말았다. 교도소에서 범법자 취급을 받으며 콩밥을 먹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기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공부가 하고 싶어서 대학에 온, 그야말로 순수한 학생이었다. 학생들이 모인 곳에서 인권과 사회의 부조리함을 학생들에게 고발하던 시위 주동자의 호소에 공감하여 따라나서다 보니, 어느새 맨 앞에서 열심히 경찰에 대응했을 뿐이었다. 그에게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굴레는 너무도 무거운 법이었다.

   1년의 형기를 마치고 돌아온 캠퍼스는 더 이상 그가 처음에 보았던 이상적인 학문의 전당도, 자유, 정의, 평등을 부르짖으며 전통적인 권위에 대해 저항하던 인권의 장도 아니었다. 어떻게든 빨리 졸업하고 벗어나야 하는 정류장에 불과했다. 전과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각박한 사회로 나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생업을 구해야 했다. 그에게 대학 생활은 더 이상 학문과 낭만을 찾는 상아탑이 될 수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복역자라는 신분은 당시 법에 따라 병역의무가 면제되어 군에 소집되지 않아 2년이란 세월을 벌었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학점을 잘 받아 어떤 직장에든 취직하는 것이었다. 그가 4년 동안 어떤 성적을 받았을까 하는 것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당시 군사정권 시대의 국가보안법이 주는 후유증은 냉혹했다. 복역자, 더구나 국가보안법 위반자라는 신분은 공무원, 교원은 물론 일반 회사에도 취직하기 어려웠던 것이 당시의 실정이었다. 그 좋은 성적에도 지원자의 신원조회만 하면 회사들이 자기들이 받을 불이익을 우려해서인지 손사래를 쳤다. 사회에서 그가 설 자리는 전혀 없는 듯했다. 서점을 할까, 독서실을 할까, 온갖 고민을 하던 끝에 그가 내린 결정은 외국으로 가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시위 전력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미국에 가서 공부를 더 하는 것이었다.

   열심히 유학생 자격시험과 어학 시험공부를 하여 좋은 성적을 받고, 괜찮은 미국 대학원에 입학 허가도 받은 그에게 다시 시련이 다가왔다. 당시 군사정권에서는 시위 전력자가 외국을 가려면 3급 이상 공무원 2명의 보증을 받아야만 하는 조건이 있었다. 천근 같은 발걸음으로 그가 다니던 학교의 교수들에게 신원 보증서를 써달라고 했을 때, 교수들의 반응이 어떠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다행히 재학 시절 성실하게 공부했던 그를 눈여겨보았던 교수 두 사람에게서 신원 보증서를 받을 수 있었다. 혹여 잘못되면 자신에게 큰 불이익이 닥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자의 앞날을 위해 기꺼이 보증을 서준 것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그가 미국으로 가서 공부하던 과정이 어떠했는가는 충분히 상상이 간다. 그는 자신을 믿어준 그분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공부에 전념했고, 결국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훌륭한 연구원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민주화 유공자로 신원이 회복되었지만, 귀국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그런 그가 모국 방문을 할 때면 꼭 찾는 두 사람이 있다. 그가 미국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두 분 교수님이다. 그분들은 한 사람의 인생을 나락에서 구하여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해주신 진정한 스승이었다.

   보증은 하기에 따라 순기능도 역기능도 있지만, 참된 보증은 한 사람의 인생을 살리는 정말 고맙고 아름다운 제도라는 것을 그를 보며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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