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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도 슈사쿠 <깊은 강> 11월 20일 용산반    
글쓴이 : 차미영    23-11-24 12:58    조회 : 816

깊은 강

차미영

 

가을 학기 종강을 앞두고 엔도 슈사쿠(1923~1996)의 장편소설 깊은 강(1993)을 읽습니다. 엔도는 병마와 싸우며 이 소설을 완성한 후 삼 년 뒤 생을 마감합니다.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 되어버린 깊은 강은 엔도의 삶과 종교관이 등장인물들에 오롯이 투영된 듯 그의 인생 여정을 뚜렷하게 엿볼 수 있는 소설입니다.

깊은 강은 인도에 흐르는 갠지스 강입니다. 엔도는 왜 깊은 강으로 제목 지었을까요. 소설이 끝날 즈음 주인공 미쓰코가 갠지스 강을 떠올리며 마음 깊이 성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깊은 강은 다음 네 문장에서 구체적으로 묘사됩니다.

힌두교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깊은 강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민음사 297)

숨을 거두기 위해 순례하러 오는 도시, 깊은 강은 그런 사자들을 품에 안고 묵묵히 흘러간다.” (303)

믿을 수 있는 건, 저마다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아픔을 짊어지고 깊은 강에서 기도하는 이 광경입니다.” (319)

그 사람들을 보듬으며 강이 흐른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강, 인간의 깊은 강의 슬픔, 그 안에 저도 섞여 있습니다.” (320)

 

인도로 순례 여행을 떠난 일본인 관광객들은 바라나시에 흐르는 갠지스 강을 찾아갑니다. 그 강에 스며든 성스러운 비밀을 접하는 순간부터 현실 너머 마법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합니다. 갠지스 강은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받아들이는 어머니 강으로 여겨집니다. 화장한 시신의 재가 흘러가는 강에 몸을 담그며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게 비칠지 모르지만 환생을 다루는 이 소설에서 빠트릴 수 없는 핵심 같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갠지스 강을 환생의 강이라고도 부릅니다.

환생에 관하여 엔도는 먼저 식물의 죽음과 재생으로 접근합니다. 겨울이 되면 나무가 시들지만 봄이 오면 다시 살아나는 자연의 법칙을 이야기하며 목숨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12)고 말합니다. 생명은 죽지 않으며 만물에 정령이 깃들어 있는 애니미즘 원시 신앙이 드러난 듯합니다. 삶을 다하고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사후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그렇게 믿고 싶은 순간 또한 있지 않을까요. 삶에 그리 집착하지 않더라도 소중한 누군가 떠났을 때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오길 절절하게 바랐던 아픈 기억들 묻어둔 채 살아가지 않나요.

 

13장으로 구성된 깊은 강은 굴곡진 삶을 살아온 이소베, 미쓰코, 누마다, 기구치, 오쓰가 전하는 삶과 죽음의 서사 속으로 점점 빠져 들게 합니다. 암 선고를 받은 이소베 아내에게 닥친 죽음의 그림자로 시작하는 첫 장면과 강으로 시신을 나르던 오쓰가 생명을 잃게 될 상태로 끝맺는 마지막 대목까지 죽음이야말로 깊은 강을 끌고 가는 동력 같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죽음으로 모든 게 사라지지 않고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신비의 갠지스 강으로 데려다 줍니다.

죽음이 전체적으로 복선처럼 깔려 있지만 이 죽음 또한 강렬하게 타오르는 생명력과 맞물려 있습니다. 죽음을 예고하는 무거운 첫 대목에서 이와 상반되게 군고구마 장수의 살아 있는 듯 들려오는 외침 (9),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전우들의 신음소리가 묻힐 정도로 밝게 지저귀는 새소리 (133, 306)는 죽음이 우리 삶 가운데 언제 어디든 함께 한다는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탄생과 죽음을 동시에 상징하는 것으로 갠지스 강과 함께 인도의 여신들도 7장에 나옵니다. 은혜를 베푸는 여성이라는 의미를 지닌 나크사르 바가바티 사원을 방문한 일행은 가이드 에나미로부터 벽에 새겨진 인도 여신들의 숨은 고통과 숭고를 접합니다. 온갖 괴로움과 고난을 견뎌내며 생명의 젖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차문다 여신을 마주한 그들은 모두 깊은 상념에 빠집니다. (209, 211) 그 곳 끈적거리고 어두침침한 지하에서 만난 여신상을 머릿속에 그려보다 괴테 파우스트21, ‘어두운 복도’(6212~6306)가 생각났습니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 도움 없이 홀로 생명이 탄생하는 근원, 어머니 세계로 용감하게 내려갑니다. 깜깜한 어둠속에서 파우스트는 창조와 파괴의 모순된 힘을 부여잡고 있는 원시 자연의 어머니를 만납니다. 깊은 강의 미쓰코도 파우스트처럼 조각상 어머니 여신 앞에서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결핍에 헤매던 자신을 들여다봅니다. 동시에 마음 깊이 혼재된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합니다. (208)

차문다 여신과 갠지스 강에 깃든 삶과 죽음의 상징이 미쓰코에게 커다란 변화를 불러일으킵니다. 대학시절 친구들로부터 모이라(moira)라고 불렸던 미쓰코, 그녀는 진정한 사랑이 뭔지 느낄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파괴와 충동의 욕망에 허우적거릴 때마다 공허한 마음을 채워줄 뭔가 찾습니다. 같은 학교 철학과에 다니던 오쓰가 운명처럼 미쓰코 앞에 나타납니다. 신부가 되려던 순진한 오쓰를 재미삼아 희롱한 후 둘 관계는 끝난 듯 보이지만 그들의 만남과 헤어짐은 깊은 강이 끝날 때까지 계속 됩니다. 어쩌면 그녀의 모이라가 두 사람을 이어주지 않을까요. 그리스 신화에서 모이라는 밤의 여신 닉스의 딸로 운명의 여신으로 불립니다. 과거, 현재, 미래 삶을 관장하는 라케시스, 클로토, 아트로포스 셋이 함께 다닙니다. 실체 없는 신을 부정하는 미쓰코는 신학도 오쓰에게 신을 버리라 하지만 오쓰는 신은 존재가 아니라 손길이입니다.”(94)라고 자신이 이해하는 신의 의미를 미쓰코에게 전합니다. 오쓰의 종교 세계는 유일신을 믿는 정통 기독교과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 결과 예수를 믿으면서도 끊임없이 고뇌하고 외톨이로 떠돌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듯합니다. 프랑스 리옹, 남프랑스 수도원, 이스라엘 갈릴리 수도원을 거쳐 마침내 인도 바라나시에 정착합니다. 다양한 모습으로 현현하는 신은 초월적 인격신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 함께 있으며 어디에든 있다고 흔들림 없이 말하는 오쓰의 눈빛이 빛납니다. 오쓰가 지향하는 범신론적 종교관은 작가 엔도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믿음 아닐까요.

 

깊은 강에서 피에로와 양파가 자주 눈에 띕니다.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피에로 이면에 가려진 슬픔과 고통을 헤아려봅니다. 피에로가 나오는 대목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기웁니다. 동화작가 누마다에겐 그가 아프고 외로울 때 말벗이 되어준 코뿔소 새가 피에로로 다가옵니다. 기구치와 쓰카다에겐 병원에서 온정을 베풀던 외국인 친구 가스통이, 미쓰코에겐 오쓰가 그렇습니다. 화가 루오의 그림을 좋아하는 누마다는 루오에게 피에로는 예수인 걸 알고 있습니다. (115) 신을 믿기 어려워하는 미쓰코에게 오쓰는 불확실하게 잡히지 않는 신을 차라리 양파라 해도 좋다고 합니다. (94) 갠지스 강변 죽음을 앞두고 갈데없는 가난한 이들을 거두는 오쓰의 인생에서 굶주리고 병든 자들 곁에 함께 한 예수의 삶이 겹쳐 보입니다. 피에로와 양파 둘 다 오쓰가 예수로 환생하는 상징 같습니다.

 


신재우   23-11-25 09:22
    
1.엔도 슈사쿠는『깊은 강』은 독자들을 별로 고려하지 않은 채, 제 자신의 테마를 좇아서 마음가는 대로 썼다.
2."제 자신의 테마"는 그가 평생 추구해온 '유럽식 기독교/일본인의 영성'의 대립과 구원의 문제이다.
3.『깊은 강』은 1995년 쿠마이 케이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
4.2교시『사해 부근에서』에서 중<알패오>를 읽다.
  가."그 분은 단 한 번도 자기를 메시아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분을 메시아로 만들려고 한 것은 우리였다.
  나.102면에 나오는 상기내용를 신학에서는 '메시아의 비밀'이라고 한다(1901년 윌리엄 브레데가 주장).
  다.예수는 잘못된 세상을 크게 꾸짖는다. "하나님은 성전을 바라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인간을 바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