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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링컨은 수염을 왜 길렀나?(평론반)    
글쓴이 : 오정주    21-10-26 23:51    조회 : 1,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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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강 링컨

링컨(Abraham Lincoln, 1809.2.12.-1865.4.15.16대 대통령, 재직 1861.3-1865.4).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노동을 한 링컨은 학교 교육은 거의 받지 않았지만 독학하여 변호사가 되었다. 1847년 연방 하원 의원으로 당선되었으나 미국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여 인기가 떨어져 변호사로 돌아갔다. 1850년대 노예문제가 전국적인 문제로 고조되자 1856년 미국 공화당에 입당하여 그 해 대통령 선거전의 공화당 후보를 응원하면서 자신의 웅변이 알려지게 되었다.

 

1856(47), 링컨은 노예제 반대 의사 굳히고 정계 투신코자 공화당 입당. 이 해 5월 캔자스 주는 노예 찬반론자들의 투쟁터로 돌변, 유혈사태까지 발생.

흑인 노예 스코트(Dred Scott)가 자신이 자유인임을 인정해 달라는 소송 제기한 데 대해 연방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노예는 '시민'이 아니라 '노새'나 다름없는 '재산'이므로 소송의 자격이 없다.“ 대법원장은 Roger Brooke Taney(1777-1864). 대법 판사 9명 중 7명 동조, 2명 소수의견. 2명은 판결 후 사퇴. 이 판결은 그간의 모든 타협과 법률을 무시한 것.

   1858(49), 링컨(1856년 공화당 부통령 후보 출마, 낙선),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출마, 상대는 상원의원 3선 노리는 데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2차나 출마했다 낙마, 1860년 대통령 출마 노리는 거물 더글러스. 그는 신생주가 자유주가 될지 노예주가 될지에 대해 각 주의 자치에 맡기도록 하자는 타협안을 남부 노예주들에게 제시함으로써 연방의 분열을 막아야 한다는 구상. 링컨이 먼저 제안해 일으킨 7차에 걸친 논쟁은 미국 정치사의 주요 화제.

링컨은 더글러스를 "시대착오적인 '스코트 판결'을 지지하는 노예제 지지론자"로 몰아붙이려 했지만 사실은 노예제에 대해 두 사람은 거의 비슷한 견해, 다만 정치적 야심이 둘 사이의 견해차를 유세과정에서 과대 포장. 먼저 포문을 연 더글러스, 링컨에게 과격한 색깔을 덧씌우기 위해 '흑인과 백인간 난혼(racial mixing)'을 지지하는 과격파라고 몰아붙여 수세에 몰린 링컨의 응수.

    

"노예제는 반대하지만 이미 노예제가 존재하고 있는 주들에서 기존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노예제는 언젠가는 사멸하겠지만 100년 정도는 걸릴 것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지만, 나는 한번도 흑인과 백인간의 사회적 정치적 평등을 이룩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지한 적이 없다. 나는 단 한번도 흑인이 유권자가 되고 배심원이 되고 관직에 진출하고 백인과 결혼하도록 허용해야한다는 생각을 지지한 적이 없다. 흑인과 백인 사이에는 엄연히 물리적 차이가 존재하며, 나는 이런 근본적인 차이 때문에 두 인종이 사회적 정치적인 평등에 기초해 공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믿는다."

링컨은 더글러스에게 "어떤 지역의 주민들이 자신들이 사는 곳에서 노예제를 배제하고 싶어 한다면, 그 지역이 합법적인 주를 구성하지 않더라도 주민들의 의사에 따라 노예제를 배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공격. 노예제 존폐문제를 각 주 주민들의 자치권에 맡기자는 더글러스의 평소 주장 추궁 의도. 겉보기에는 온건 중도파적 표방이나 속내는 남부를 이롭게 하는 정책. 링컨의 질문은 "노예제의 존폐문제에 대해 해당지역 주민들이 연방정부의 속박을 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면, 아직 주를 구성하지 못한 지역의 주민들에게도 그러한 자치권을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라는 추궁. 더글러스는 "연방대법원의 결정과 무관하게 주민들은 노예제의 존폐여부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음.

결과는 더글러스가 승리, 링컨은 낙선. 그러나 링컨의 마지막 결정적 질문은 나중 더글러스를 "자신의 총으로 자기 발등을 쏜 격"이 됨. 이유는 당시 남부 측은 대법원의 판결에 고무되어서 신설되는 주들을 주 차원에서 일괄하여 노예주로 지정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들떠서."대법원의 결정이나 주의 구성 여부와는 무관하게 일정 지역의 주민들은 스스로 노예제 존폐를 결정할 수 있다"는 더글러스의 발언은 스코트 판결과 남부지역 민주당 지지자들에 대한 배신으로 비춰진 것. 이 때문에 더글러스는 일리노이 상원의원에는 당선되었지만 남부지역 민주당 의원들의 지지를 잃게 되어 1860년 대선에서는 링컨에 패배. 링컨은 노회한 더글러스와의 논쟁으로 명성을 얻어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됨.  

한 소녀의 제안으로 링컨은 본인의 못난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 수염을 길렀다. 젊은 날의 링컨은 잘 생겼지만 나중 사진을 보면 얼굴에 고생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듯 하다.

   

<2> 합평

성민선/박진희/국화리/조성삼/임길순

 


곽미옥   21-10-29 22:52
    
반장님~ 후기 감사!
남북전쟁의 위기를 이겨내고 노예제를 끝낸 미국 역사상 위대한 대통령이란 칭호를 받는 영웅이지요.
링컨의 명석한 두뇌가 더글러스 후보와의 경쟁에서 승리한것도 놀랍지만 저는 갠적으로 소년시절 잠시 스쳤던 첫사랑을 추억하고, 성인이 돼 만난 공식적인 첫사랑 여인이 먼저 죽었을 때 우울증이 오고 .. 그녀의 무덤에 가 울곤 했다는 인간적인 면모에 더 감동했네요..  ㅎㅎ 가을 탓인가요?
첫 시간이었지만 인간 링컨으로 강의를 하시겠다는 교수님 말씀에 많은 기대를 하네요.
앞으로의 강의가 더 흥미진진할 듯요~~
     
박진희   21-10-30 06:27
    
링컨의 첫사랑, 앤 묘의 비문이 기막히네요. 역시 진정한 사랑을 한 사람이 남기는 흔적은 아름답고 위대하지요?

  "이 몸은 앤 레트릿지 / 에이브리함 링컨의 사랑을 받았던 여인 / 이제 홀로 이 잡
초 아래 잠들다 / 맺지 못한 채 / 영원한 이별로써 그와 결혼을 하다(I am Ann
Rutledge who sleeps beneath these weeds, /Beloved in life of Abraham
Lincoln,/Wedded to him, not through union, /But through separation. /Bloom
forever, O Republic, /From the dust of my bosom!).
     
오정주   21-10-30 22:19
    
약혼녀였던 주막집 딸을 사랑했었다는  설이 대통령이 된 후 소문이 났다는데
정작 본인은 입밖에 낸 적이 없었다 하네요. 그녀의 죽음으로 잠도 안자고  먹지도 않고
 실신한 사람처럼 지냈다네요. 사랑이란 진정 그런것이겠지요?
묘비명까지 찾아내시고 두 분 참 대단하세요. 그런 사랑이 부러운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