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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이 오면,    
글쓴이 : 임정원    13-04-26 04:03    조회 : 5,158
                                                  6월이 오면
 
                                                                                                                                        임 정원
 6월이 오면 생각나는 여인이 있다.
지금은 성인이 된 연년생 남매가 유치원에 다니던 1983, 현충일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이십대 후반이었던 나는 아이들에게 현충일에 대한 의미와 나라를 지킨 분들의 숭고한 뜻을 알려줄 나이가 되었다 싶어 아이들이 잘 따르는 초등생언니 둘과 함께 지금은 국립 서울 현충원이 된 국립묘지를 견학하기로 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한 김밥과 과일을 배낭에 담고 전날 사서 물에 담가놓은 흰 국화 다섯송이와 돗자리를 챙겨 집을 나섰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도착한 동작동 국립묘지,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현충탑 제단의 헌시가 찡하게 가슴에 다가왔다.
묘역으로 오르는 길 따라 아이들이 손을 잡고 재잘거리며 올라갔다, “내일 모레가 현충일인데 참 조용하고 적막하네하며 묵직한 배낭을 고쳐 메고 뒤따르는데 유월의 바람이 살랑거리며 우리를 반겼다.
한 줄 흐트러짐 없이 서있는 사병묘역에 들어서자 누가 시킬 것도 없이 아이들의 표정이 숙연해졌다 애들아, 이리와 ! , 꽃 한 송이씩 묘비 앞에 드리고 우리 묵념하자, 우리가 편히 놀고 공부하고 잠잘 수 있게 우리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분들이야,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단다.””.“ 합창하듯 대답하는 아이들을 묘비 앞에 둘러앉히고 아직 어려서 이해하기 어렵다싶기도 한 이곳의 역사를 나름 쉽게 애기해주려고 말문을 열었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나라가 1945년 해방이 되면서 미국과 소련에 의해 우리나라가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게 되었지. 그 후 우리 정부가 수립되자 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대한민국 국군이 발족되었어, 처음에는 북한군의 도발로 전사한 군인아저씨들을 서울과 부산의 어느 절에 모셨는데 19506.25전쟁으로 인한 전사자 수가 너무 많아져서 1955년 이곳에 국군묘지를 만들었단다, 그러다 10년 후인 1965년에 국립묘지로 이름을 바꾸고 군인아저씨들만 오던 이곳에 애국지사, 경찰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고 나라발전에 이바지한 분들까지 이곳에 모실 수 있게 되었단다.”
아이들은 이해를 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듣는 체 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여섯 살 유진이 묘비를 가리키며 물었다. “엄마 ! 그 군인 아저씨들이 여기 땅속에 누워 있는 거야?” 아이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 걸 보며 나도 들킬세라 고개를 젖히고 먼 곳을 바라보니 귀퉁이 어느 묘비 앞에 한복을 입고 앉아 있는 한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사랑하는 가족을 보내고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생각하며 뜨거워지는 햇살을 뒤로하고 묘역을 벗어나 내려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길가에 서있는 큰 나무 그늘 아래에 돗자리를 깔고 가져온 음식을 꺼냈다. 네 명의 아이들은 조금 전의 숙연함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준비해간 김밥과 과일을 맛있게 먹으며 콧노래를 부르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웃었다 .
그때 저어...” 모시한복을 곱게 입은 오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인. 아까 보았던 그 여인이다, 머뭇거리는 그녀를 보고 아이들도 고개를 돌렸다, 아이들에게 천천히 먹고 있어하고 무슨 일일까 싶어 일어났다.
, 정말 미안한데요 이런 애기해도 괜찮을지...“ ”? 말씀하세요,,, “ ”제가 과일이 좀 있는데 드리고 싶어서요...“ 여인의 손에 사과며 배, 포도송이가 가득 담긴 투명한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과일 있는데...“
순간 머릿속에 여러 복잡한 생각이 교차되었다, “뭐야, 아이들이 넷이나 딸린 궁색한 젊은 새댁으로 보였나?” 아이들에게 이유 없이 남이 주는 건 절대 받으면 안 된다고 가르쳤는데, 더구나 먹는 음식을...기독교 믿는 사람들은 제를 지낸 음식은 받지도 먹지도 않는다던데...
마음은 알겠는데, 나도 정중히 거절 해야겠어, 고개를 들어 그녀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좀 전의 다짐은 사라지고 과일봉지를 받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과 미소, 그녀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거절하면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내 마음도 편치 않을 거 같아서였다. “, 주세요...” 나는 두 손을 내밀어 고맙습니다.“하고 과일봉지를 받았다. ”아니에요, 제가 더 고마워요하며 발걸음을 돌리는 그녀를 향해 아이들도 일어나 인사를 했다. “안녕히 가세요.” 쓸쓸히 내려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말했다. 행복하게 잘 사세요...라고
 다시 더 무거워진 배낭을 메고 내려오는 길, 아까는 상황을 이해한 듯한 표정으로 인사까지 한 딸아이가 물었다. “엄마, 아까 왜 모르는 할머니한테서 과일 받았어요?” “, 어른이 되면 그 상황에 따라 결정해야 될 때가 있어. 하지만 너희들은 아직 어려서 혼자일 때 남이 주는 거 절대로 받으면 안돼 ! 알았지?”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는 세상에서 젤 소중한 게 믿음인데... 메말라가는 사회를 탓하며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의 모습이다.
호르르 호르르....” 묘역 근처 숲속에서 산솔새가 울었다,
호르르 호르르....” 아이들이 따라 부르며 뛰어 내려갔다.
삼십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6월이 오면 그녀가 생각난다.
 

문영일   13-04-26 06:30
    
임정원님.
처음 뵙는 것 같습니다.
시의 적절한 글, 잔잔한 감동입니다.
우선, 아이들에게 교육을 잘 시키셨군요.

엇그제 '화악산농장'이란  곳에 1일 투어 갔었지요.
그날의 관광코스에 '비목 공원'이란 곳이 있더군요.
가이드를 겸한 관광회사 사장이
노래비 앞에서 묵념을 하고 비목을 같이 부르자고 하더군요.
아마 보통 노래라면
'뜬금없이 웬 노래?'할 연세들의 4.5.6대 여자 관광객들은
조용히 묵념을 하고 ' 초연이 쓸고간 깊은 계곡....'숙연하나
목이 터지게 불렀습니다.


직장생활 할 때 사원들과 노래방엘 가면
제가 먼저 마이크를 잡습니다.
그리고 '비목 찾아서 놀러봐!'하지요.
저급(?)하다는 대중가요전에 우선 고상(?)한 가곡을  불러
나도 저급(?) 놈이 아니라는것을 은연중 알려주려는
속샘도 깔려 있었지만 우리가 지금 이렇게 즐길 수 있는 것은
나라를 위해 목습을 바친 호국영령들 때문임 알라는
준엄한 뜻이 있지요.

자라는 아이들에게 무엇이 소중한지를 가르치시려는
님께 경의를 표하며 아이들께 되물음을 당하면서도
그 과일 봉지를 받았던 모습이 눈에 선 합니다.

님의
'순간 머릿속에 여러 복잡한 생각이 교차되었다,
“뭐야, 아이들이 넷이나 딸린 궁색한 젊은 새댁으로 보였나?”
아이들에게 이유 없이 남이 주는 건 절대 받으면 안 된다고 가르쳤는데,
더구나 먹는 음식을...기독교 믿는 사람들은 제를 지낸 음식은 받지도 먹지도 않는다던데...'
의 문장은 잠시의 감정을 너무 잘 표현하셨네요.
기승전결의 구성도 너무 좋습니다.
다음 글 기대합니다.
홍정현   13-04-26 06:31
    
임정원선생님!
모두 선생님의 필력에 깜짝 놀라게 만든 첫 글을 올리셨네요.
깔끔한 문장이 선생님이 보통의 솜씨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말로만 하는 교육이 아니라 직접 현장에 가서 보여주는 교육을 실천하셨다니....
대단하세요.
저질체력의 엄마와 일때문에 바쁜 아빠때문에
집에서 책으로 간접경험만 하는 울 아들에게
살짝 미안해져요.

목요반 신입선생님들의 반짝이는 글들...........
든든한 동지를 만난 것 같아요.
다같이 으쌰으쌰하면서 즐겁게 글을 쓰고 있으니
저도 덩달아 힘이 나네요.
다음 글도 기대할게요. 샘~~~
우성희   13-04-26 10:34
    
아이들이 우리아이들과 거의같은 또래인데 님의글 읽고 생각해보니 나는 그런 산 교육 생각도 못하고 일에만 매달렸더군요. 여행을 같이한기억은 있지만.
아이들을 잘 키우신것 같아요.
자연스래 전개되는 글의흐름과 간결한 끝맺음은 대단한 내공이 옅보입니다.
기대만땅 입니다.
임정원   13-04-26 12:38
    
꽃샘바람 불던 어느 날,
마음이 따뜻한 선생님들과의 만남이 저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선배님들의 글을 대하며 "아 ! 수필은 이렇게 쓰는거구나"
조금씩 조금씩,걸음마하는 어린아이처럼 배우고 있습니다.
용기내서 올린 글, 부끄럽기만 하네요.
감사합니다.
김인숙   13-04-26 13:33
    
우와_  우리 정원 님. 글 쓰기에 앞서 현명한 어머니입니다.
 듣지 않아도 보지 않아도 현충사 참배만으로도 가히 짐작이 갑니다.
 전 정말 초보자이지만 글이 뭐 별난 건가요? 삶의 그림자가 문자를 타고
 세상으로 탄생하면 독자들의 흉중으로 스며드는 것 아닌가요?
 일단 출발점 신호부터 OK아닌가요?
 제가 부끄럽습니다. 님의 가슴이 한없이 따끈한 아랫목입니다.
 훈훈한 가슴속으로 내 얼굴을 파묻고 싶습니다.
 다음 글 기대할게요.  목요반 하이팅.
윤송애   13-04-26 19:29
    
임정원 선생님, 처음 쓰시는 글이지만
단단한 내공이 느껴져요.
국문과 출신이시니 당연하겠지만요.
저도 애들을 키웠지만 교육 시키겠다고
현충원에 데려간 적은 없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자식교육에 열의와 성의가
있으시네요.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김보애   13-04-26 23:51
    
제가 후기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별들님 이라고 썼는데 기대되는 분입니다.
글도 좋았지만 훌룽한 어머니 같아 더 좋아요. 표정과  몸짓, 모든 것이 과연! 하게 되죠.
한 가족이 된 느낌입니다.~ 반가워요. 온라인 상에서의 첫만남!!^^
아네스   13-04-26 23:58
    
호르르 호르르 소리가 자꾸 귓가에 맴 돕니다.
6월이 오면 모시한복의 그녀가 생각이 나는 군요.
장소가 장소이다 보니까 아마도 그녀의 모습이
 더 쓸쓸해 보이지 않았나 싶네요.
차분하게 쓰신 글! 묘지의 분위기가 잘 느껴집니다.
목요반에 합류하시게 되어서 더욱 반갑습니다.
황윤주   13-04-27 03:03
    
와~ 드이어 ^^ 임정원 선생님 합평방의 첫 글 환영합니다!
평소 틈틈이 글을 써오셨나봐요. 첫솜씨라 여기기엔 예사롭지 않은 필력이십니다.
혹 선생님 서랍속엔 빛을 보길 기대하는 글들이 챙겨져 있진 않을까..
임정원 선생님과 함께 같은반에서 공부하게 되어 반갑고 좋네요. 제가 많이 배우게 될 것 같아요^^

선생님의 글을 보며 저도 제 딸아이 손을 잡고 현충원 방문을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가 들려주는 현충일에 대한 의미를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듣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던
행인이 있었다면 아마도 정다운 풍경에 흐뭇한 미소를 짓지 않았을까 싶어요.
삼십년이 지난 세월에도 '호르르 '소리를 기억하시는 선생님. 그 날 새소리를 흉내내며 쫒아다녔던
자녀분들도 성인이 되셨겠군요. 하얀 옷의 여인은 아직 생존해 계실지.. 따뜻한 감성을 느끼게 하는
선생님의 다음 글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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