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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고향    
글쓴이 : 김정희 투    19-03-29 16:02    조회 : 4,569

그녀의 고향

김 정 희

 

지금도 그곳에는 그녀의 유년시절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고향집이 있다. 남쪽 바닷가에 인접한 탐진강이 흐르는 시골마을로 지금은 정남진 토요시장이 열리고 삼합음식(소고기 키조개 표고버섯) 으로도 유명한 전남 장흥이다. 그녀가 태어나고 대학 졸업 할 때까지 부모님이 사셨던 집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집의 형태와 구조는 많이 변했지만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준 것에 그녀는 너무나 큰 위로를 받는다.

집안에 들어서면 일꾼들이 기거하는 사랑채와 외양간이 있다. 앞마당 옆쪽에는 추수한 곡식을 보관한 큰 창고가 있고 몇 개의 돌계단을 오르면 긴 툇마루가 딸린 안채로 연결된다.

뒷마당에는 장독대와 간이부엌이 있어 모내기철이나 추수철에는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 큰 가마솥 두 개에 번갈아가며 불을 지펴 밥 짓고 국 끓이고 국수도 삶아 맛있는 새참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뒷마당을 지나 돌계단으로 연결된 2층과 3층 마당에는 온갖 채소와 야채를 심어 놓은 텃밭 주위로 동백나무가 빼곡히 둘러 싸여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이른 봄에 핀 선홍색 동백꽃의 기억은 지금도 그녀의 가슴에 깊이 박혀있다.

일이 뜸해진 겨울철엔 쇠죽을 끓이고 따뜻해진 사랑방에 동네 일꾼들이 모여 새끼를 꼬거나 화투를 치면서 기나긴 겨울밤을 보냈다.

 

어렸을 때 그녀는 손에 끼는 반지를 너무 좋아해서 일손이 바쁜 때에도 작은 일꾼인 세종 삼촌을 졸라 철사 줄로 각기 다른 모양으로 예쁘게 만들어준 꽃반지를 열 손가락에 다 끼고 신이 나서 돌아 다녔다. 손가락에 낀 반지를 빼지도 않고 그대로 잠이 들어 아침에 일어나면 손가락이 퉁퉁 부어 따뜻한 비눗물에 손을 담가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아빠한테 여러 번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으면서도 그녀의 고집은 한동안 꺾이지 않았다.

어른이 되면 누구보다 악세사리를 많이 하고 다닐 거라 상상했던 식구들은 결혼해서 반지, 귀고리, 목걸이 하나 하지 않는 그녀를 보며 정말 신기해했다.

 

그녀와 두 살 터울인 여동생은 고집이 세고 내성적인 그녀와 달리 활달한 성격에 정도 많고 리더십이 좋아 항상 주위에 친구들이 많았다. 교직생활을 했던 동생은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지금도 가끔 동생과 같이 고향에 들르면 연로하신 마을할머니들이 그녀 보다는 동생을 먼저 알아보고 반겨 주신다.

 

농사일이 잠시 한가해진 틈을 타 세종삼촌이 어미 소를 몰고 들에 나가면 그녀는 삼촌을 졸라 따라 나선다. 나무 밑에 어미 소를 메어 풀을 먹이면 그녀는 그늘에 앉아 어미 소의 착하고 선한 눈망울과 한없는 교감을 하고 반질반질한 등을 어루만지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미 소는 그녀에게 벗이요 가족이었다. 형제 들 중에서 유달리 그녀 혼자만 소를 좋아 하는걸 보고 엄마는 사내도 아닌 계집애가 좀 특이 하다고 하셨다.

세종 삼촌이 꼴망태에 풀을 가득 채운 후 잠깐 짬을 내어 들에서 한웅큼 뽑아준 삐비(삘기)는 유년시절 잊지 못할 추억이다. 삐비는 껌처럼 입에 씹히며 달착지근한 물이 나와 한없이 즐겨 먹었던 간식이기도 했다.

세종삼촌에 대한 그녀의 추억은 각별하다. 열여섯 살의 어린나이에 작은 일꾼으로 들어온 삼촌은 어찌나 부지런하고 예의바르며 성실했던지 동네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아빠가 자식처럼 아끼던 일꾼이었다 .

잠깐의 머슴살이를 끝내고 서울로 올라간 세종삼촌은 청계천에서 재단견습공을 거쳐 각고의 고생 끝에 훗날 서울 한복판 소공동에서도 이름난 세종양복점 주인이 되었다. 오빠와 그녀의 남편 결혼식 예복도 손수 만들어주셨다. 세종 삼촌은 건강이 좋지않아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그녀의 삶에 많은 것을 일깨워준 삼촌이었다.

, 가을 두 차례 오빠 대학 등록금 낼 철이 되면 앞마당 창고의 문이 열리며 일꾼들이 큰 수레에 쌀가마를 한참 나르곤 했다. 창고 안은 이듬해 추수할 때까지 식구들 양식 말고는 텅 비어있었다.

그녀와 동생들이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올라오면서 외양간에 있는 소들도 하나 둘씩 사라져 갔다. 그녀가 제일 좋아했던 열 살이 넘은 어미 소도 힘든 농사일을 온몸으로 다 해내고 나이 들어 쇠약해져 간간이 밭 일만 하다 어느 날 팔려 나갔다. 자식과 같은 소를 떠나보낸 부모님은 얼마나 마음 아프고 힘드셨을까? 그 후로 그녀는 한참 동안 소고기를 먹지 못했다.

 

요즘은 시골에서도 농기구의 발달로 소가 밭일 하는 것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더구나 축산업의 발달로 농사일을 하는 소가 아닌 고기를 생산하는 소로 바뀌어 버렸다.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들면서 소라는 말만 들어도 그리움을 느낀다.

 


박재연   19-03-29 20:19
    
본문에. 복사하셔서. 잘. 올리셨네요^^
선생님의 유년시절이. 동화처럼. 펼쳐집니다
고집세고 내성적?. 그리고. 우등생. 모범생이셨겠죠. ㅎ
김정희 투   19-03-30 15:19
    
조금 느리고 세상살이에 서투른 제모습에 항상 절망하면서 살아갑니다.
박선생님의 따뜻한 시선에 감사드려요~`~
문영일   19-03-31 06:58
    
김정희 님의 고향이 눈에 선하게 보여 나도 거기 있었던 것으로 착가하기 까지 하군요.
도회지에만 살은 저는 그런 시골의 정서가 없어 얼마나 아쉬운지 모릅니다.
여기 화소들,  예컨데 동생, 세종 삼촌, 소가 훌륭한 소재가 될 것 같아요.
이 세 가지 화소를 가지고 세 편의 글을 써 보아도 좋을 것 같군요.
자꾸 써 올려 주세요. 참 좋습니다. 좋은 글을 읽는 다는 것은.....
이화용   19-04-03 11:55
    
따스하고  잔잔한 글 입니다.
자극적인  서사가 없어도  잘 읽히고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선생님의 글이 참 좋네요.
감사합니다.
김정희 투   19-04-04 17:14
    
문영일 선생님 감사해요.
이화용선생님. 따뜻한 위로와 격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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