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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시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세상 이야기    
글쓴이 : 이하재    20-08-22 14:49    조회 : 5,434
* 택시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세상 이야기 *

46.
 “혜화조등학교에 가요. 저 앞에서 유턴해서 가요.” 코엑스 동문 앞 택시정류장에서 손님을 기다리기 수 십분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 리본이 달린 예쁜 모자를 쓰고 부티 나는 옷을 입은 언뜻 보아도 부잣집시어머니 같은 분이 탔다. 지시한 대로 삼성역에서 유턴하여 봉은사교차로에서 우회전하려고 하자 “올림픽도로로 가시려고요. 길이 막힐 텐데...” “예. 아직 길이 막히는 시간이 아니라서...” “그리 가고 싶으시면 그럼 그렇게 하세요.” 나는 습관적으로 우회전하며 말했다. “길이 막히지 않아야 될 텐데...”

 사실 손님이 원하지 않는 경로로 운행할 때는 많은 부담이 된다. 공익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처럼 결과가 좋아봤자 본전이다. 잘 되면 당연한 일이고 잘 못 되면 책임이 따르고 원망을 듣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강남에 사는 사람이라 잘 알아요. 올림픽도로는 많이 막히는 길인데...” 후회가 되지만 되돌릴 수는 없다. 이제껏 코엑스에서 시내를 갈 때 신호등 많은 도심 길로 가자고 하는 손님은 없었다. 다행스럽게 앞이 뻥 뚫려있었다.

 가벼운 마음은 잠시 뿐 올림픽도로로 진입하는 구간으로 들어서자 차들이 주춤거렸다. 성남시에서 오는 차들과 합류하는 지점으로 상습정체구간이긴 하지만 불안하고 후회가 된다. “길이 막히네요. 그렇다니까. 내가 강남에서 50년을 살았어요.” “요 구간만 통과하면 괜찮을 겁니다.” 올림픽도로에 진입하자 차들이 최고의 속도로 질주했다. 영동대교 밑을 통과할 때까지는 그랬다. 성수대교 아래부터 다시 거북이 걸음이다.

 저속주행이었지만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속도다. 정체가 심한 편은 아니었다. “이제 동호대교인가요?” “예. 동호대교입니다.” 같은 동호대교를 말하면서 다른 느낌의 말을 주고받았다. 어느 경로가 차량이 더 많고 시간이 더 걸릴지는 알 수 없다. 하늘에서 보면 알 수 있을까. 수시로 변하는 게 교통상황이다. 비슷한 시간이 걸려도 사람에 따라 만족도는 다르다. 자기에게 익숙한 길이 아니고 낯선 경로일 경우 불안감을 느끼고 택시기사를 불신하게 되어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손님은 초행길이 아니다. 필시 전에 걸렸던 시간과 오늘을 비교하리라 생각을 하며 나답지 않게 차로변경도 자주하며 대학로에 들어섰다. “지금 몇 시에요?” “1시 55분입니다.” “2시까지는 못 가겠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선택을 잘 못했네요.” 횡단보도에 걸려있는 빨간 신호등이 밉고 야속했다. 신호등마다 발길을 붙잡고 늘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혜화초등학교에 도착했다. 만 오천 원을 카드로 결제하고 빳빳한 천 원짜리 지폐를 건네며 “일 하다가 커피 한잔 드실 때 보태세요.” “늦었는데... 감사합니다.”

 ‘어느 길을 경유해서 갈까요.‘하고 손님에게 물으면 보통은 알아서 가라고 한다. 요즘은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보고 어느 길을 지정해주는 손님도 있고 아예 내비게이션을 검색해 따라가기를 주문하는 손님도 있다. 편하면서도 불편할 때가 있으니 내비마다 경로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통정보를 반영하고 안 하고의 차이다. 가까운 길이 막힌다고 빙 돌아가는 길로 안내하는 경우가 있다. 택시를 자주 이용하시는 분들은 택시기사를 신뢰하는 편이다. 기사에게 고마우신 분들이다.     

  오후 5시 20분, 다시 코엑스 동문 앞 택시정류장에서 손님을 태웠다. 30대의 직장인으로 보이는 남자손님이다. “종로 5가역으로 가주세요.” “예.” 습관처럼 경유지를 묻지 않고 삼성역에서 유턴하였다. 올림픽도로를 거쳐 동호대교를 건너가는 경로다. 일을 하다보면 똑같은 경로를 지나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날의 일진과 방향의 관계일까. 불과 몇 시간 전에 통과했던 똑같은 길이다. 비록 통행량이 적은 화요일이지만 퇴근시간이 임박한 시간이다. 올림픽도로로의 진입부터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길이 막힌다고 기사에게 왜 이 길로 왔느냐 역정을 내는 손님이 있고, 차마 말은 못 하고 한숨을 내쉬며 불안감을 조성하는 손님도 있다. 반면 아무런  기색도 없이 눈을 감고 있거나 핸드폰검색을 하며 현실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손님이 있다. 살짝 훔쳐본 젊은 손님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손님의 속마음이야 알 수 없지만 짜증기 없는 표정이 좋았다. 내 마음도 편해져 앞 차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만 갔다.

 “종로5가역 어느 쪽에 내리세요?” 을지로 5가 교차로를 지나면서 손님에게 물었다. “좌회전  해서 100미터 쯤 가다 우체국 앞에 내려주세요.” 무슨 역이나 사거리 등 하차장소가 구체적이지 않을 경우 미리 확인해야 된다. 혼잡한 교차로에서 급차로 변경은 불가능하다. 미리 말해주는 손님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먼저 물어봐야한다. 불과 몇 시간의 시차로 비슷한 경로를 다른 손님을 모시고 운행하였다. 그때마다 교통상황도 손님도 다르다. 요금도 기분도 다르다.

 종로 4가교차로 화단에 사과나무가 도시의 매연을 마시며 향기로운 사과를 살찌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