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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동원    25-12-07 21:47    조회 : 91

                                               서 명

 

                                                                                                        김동원

 

 

친구들을 만나거나 비슷한 나이의 모임에 나가면 잘 지내는지 간단한 인사부터 시작해서 어렸을 때의 추억, 주식, 스포츠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한다. 특히 중년의 나이가 된 후부터는 부모님 건강에 대한 이야기는 빠질 수 없는 주제이다.

 

정치적 성향 때문에 만남이 뜸해졌지만 그래도 최대한 정치 이야기는 자제하기로 암묵적으로 동의한 상황에서 5월 중순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났다. 부모님 건강 이야기가 나왔는데 연명치료에 대한 이야기에서 산소호흡기를 하고 연명치료를 계속해야 한다는 친구들과 식물인간으로 목숨만 부지하면 고통만 심해지니 연명치료를 거부해야 한다는 친구들로 의견이 갈라지면서 각자의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결정이 맞는지 정답은 없지만 차분하고 섬세한 성격의 친구들은 치료를 거부해야 한다 했고, 즉흥적이거나 급한 성격의 친구들은 치료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부모님에 대한 효도와 경제적인 부담, 병간호에 대한 시간 등 생각보다 열띤 토론을 하였고 결정은 본인들의 몫이고 결과를 떠나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만남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건강하게 오래 사시기를 바라지만 이미 기력을 거의 다 소진한 상황이거나 식물인간처럼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었다. 산소호흡기를 해야 한다면 숨쉬기도 힘들고 고통일 텐데 굳이 연명치료를 해서 치료를 받는 부모님도 힘들고 지켜보는 자식들도 여러면에서 엄청 힘들거라는 판단에서 우리 형제들은 연명치료를 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했었다. 부모님 모시고 보험공단에 가서 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을 하면 되는데 부모님 뜻이 제일 중요하고 어떠실지 몰라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과 함께 TV 드라마를 보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산소호흡기로 연명을 하는 장면이 나왔을 때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저러면 죽어야지 살아봐야 고통만 더하지. 동원아. 아버지가 저렇게 되면 산소호흡기 바로 떼거라.’ 말씀하시기에 어머니께 물어봤다.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 어머니께서도 나도 저건 싫어. 아들들 힘들기도 하고 그냥 죽어야지.’ 라고 말씀하시기에 이때다 싶었다. 저런 상황에서 내 맘대로 결정을 할 수 없으니 보험공단에 신청하면 부모님 뜻대로 되니 같이 가서 신청하자고 하였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다음날 부모님 모시고 보험공단 강동지사에 갔다.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아버지와 어머니의 표정이 편해 보이지 않기에 혹시, 설마 하면서 노파심이지 했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조금이라도 덜 오해하시라고 내가 먼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였고, 부모님에 대한 의향서도 작성하여 함께 신청하였다. 담당 직원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하고 담당 직원이 보는 앞에서 이해했다고 말하고 자필로 서명 하면 완료가 되기에 나는 이해했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서명 했는데 부모님은 미동도 없이 가만히 계셨다. 안하시는 건지 못하시는 건지 직원이 여러번 설명하였는데도 가만히 계셨다.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아버지를 보니 얼음처럼 굳어버린 화난 표정을 지으셨다.

아버지가 오래 살았으니 이제는 빨리 죽었으면 좋겠지?”

 

노인들의 자식들 고생 덜하게 빨리 죽어야지이 말이 거짓말 1위라더니 그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지만 여기까지 왔기에 아버지께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빨리 돌아가시기를 바라지 않아요. 아버지께서 어제 원하셔서 왔잖아요. 만약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기력이 다한 혼수상태에 빠지시면 산소호흡기 달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이 서류에 서명 하셔야 그렇게 된다고요. 오해하시지 말라고 제가 먼저 신청했고 서명 했어요. 보세요.”

 

어머니께서 이해를 하셨는지 동원이가 우리 빨리 죽기를 바라겠어요. 서명 합시다. 라고 말하시니 아버지께서 펜을 드셨다. 은행에서 적금 연장하실 때 서명 멋지게 하시던 분이 남들이 보면 수십억 빚 보증을 서는 서류에 서명 한다는 생각이 들게끔 손을 떨면서 하시기에 문득 아버지의 행동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까지 서명 하고서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신청이 끝났다.

 

고생은 내가 가장 많이 했지만 고생하신 부모님을 위해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장어구이를 먹고 집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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