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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고양이 밥 주기    
글쓴이 : 신문주    18-09-12 23:06    조회 : 8,402

길고양이 밥 주기

 

                                                                                                                           신 문 주

     이른 새벽 어머니가 대문을 열면 이쁜이가 어디선가 쪼르르 달려온다. 허리를 곧추 세우고 앞 발 두 개를 다소곳이 모은 채 순한 양처럼 집 앞에 앉아 기다린다. 그러면 어머니는 집으로 들어 와 먹을거리를 갖다 주신다. 이쁜이는 흰 몸통에 정수리와 등, 꼬리가 검은 암컷 길고양이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명명한 이쁜이는 입맛이 여간 까다롭지 않다. 멸치, 고등어, 닭고기, 소고기, 돼지고기 등 한동안 즐겨 먹던 음식도 한 순간 갑자기 본 척 만 척 한다. 당신의 호의가 번번이 거절당하자 어머니는 “누가 쟤 입맛을 맞추겠니? 하도 안 먹으니 이젠 주고 싶지도 않다.”하신다. 이상한 일은 어머니가 먹을 것을 내 놓지 않아도 이쁜이는 줄기차게 어머니를 찾아왔다. 번번이 허탕 치는 이쁜이가 안쓰러워 어느 날 어머니에게 고양이 사료 한 부대를 사드렸다. 어머니는 내 경제적 부담이 염려되셨는지 사료를 반품하라 하셨다. 그럴까 하다가 내가 사는 동네에 있는 길고양이들에게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경제적 부담도 문제지만, 지속적으로 고양이들에게 밥을 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한동안 고민하다가 일단 해 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고양이 사료 한 부대로 아마추어 캣맘의 이중생활이 시작되었다. 

     우선, 평소 고양이들이 자주 앉아 있던 언덕에다 사료와 물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두었다. 그 다음 날 새벽에 그곳에 가 봤더니 밥과 물이 줄어 있었다. 마음이 무척 뿌듯했다. 그런데 주위를 돌아보니 이미 그 근방에 누군가 고양이 급식소를 만들어 놓은 것 아닌가. 그래서 그 급식소에 밥과 물그릇이 비어 있으면 채우곤 했다. 동네 가게들 앞에 상시로 놓여 있는 고양이용 밥과 물그릇과 후미진 구석 곳곳에 조심스레 놓인 그릇들을 볼 때 마음씨 고운 이웃들을 떠올리며 마음이 포근해진다. 이렇게 길고양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우리 사회에 아직도 남을 배려하는 삶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본다.

     짧은 경험이지만 고양이 밥을 주면서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사료를 노상에 내 놓다 보니 비둘기, 개미, 파리 등 불청객들이 많이 온다. 특히 여름철에는 사료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개미떼들이 몰려들어 정작 고양이가 먹을 몫이 남아나지 않는다. 어느 날 새벽 여느 때처럼 그 언덕배기 급식소에 밥과 물을 차려 놓고 오는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고양이 한 마리가 길바닥에 모로 누워 있었다.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그 고양이 앞에 서서 마치 교통정리라도 하는 듯 양팔을 들어 올렸다. 개미 떼가 덮치기 전에 빨리 가서 아침을 먹으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사료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어서 가라는 손동작을 되풀이 했다. 그 때 아무도 없었기에 다행이지 행인들이 있었으면 내가 정신이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 때 생전 처음으로 고양이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 급식소에 들렀더니 사료와 물이 줄어 있었다. 비록 보지 못했지만 그 고양이가 내 손짓을 알아듣고 여기 와 밥을 먹었다고 믿었다. 고양이와 마음이 통했다 생각하니 그 날 하루 내내 행복했다.

     111년 만에 기록적인 폭염이 닥쳤던 올 여름, 방학이라 어머니 집에 오래 머물다 와 보니 언덕배기 급식소에 오던 고양이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몇 일째 사료가 개미 차지가 돼 버리는 걸 보고, 이번엔 내가 이동 급식소가 되기로 했다. 공원을 산책 하다가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길고양이들을 보면 사료를 조금씩 주었다. 대부분 사람을 무서워하고 도망가지만 사람을 반기는 고양이도 만났다. 친근한 고양이는 사료를 먹으러 내 곁에 다가오면서 내 다리에 제 몸을 슬쩍 스치기도 한다. 만약 고양이가 나를 무서워하면 살그머니 사료만 놓아 주고 재빨리 그 자리를 뜬다. 이들이 사람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세기 미국 작가 애드가 앨런 포가 쓴 단편 소설 <검은 고양이>에 보면, 만취한 남자 주인공이 자신이 아끼던 검은 고양이 플루토의 한 쪽 눈알을 주머니칼로 도려낸다. 얼마 후 그는 악한 영에 사로잡혀 불쌍한 플루토를 목매달아 죽인다. 그런데 이런 끔찍한 이야기가 이제 더 이상 먼 나라의 옛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각종 동물 학대가 일어나고 있다. 고양이에게 뜨거운 물을 붓고, 쇠꼬챙이로 찌르고, 몽둥이로 때리고, 세탁기에 넣어 돌리기도 한다. 이러한 가혹 행위는 집단 따돌림,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 성폭력 등과 같은 선상에서 자신의 억눌린 욕망과 분노를 애꿎은 약자에게 분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길고양이들은 노숙인들처럼 우리 사회의 약자이다. 2009년 1년 반 동안 길고양이들을 관찰하여 펴낸 책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에서 이용한 작가는

길고양이는 결코 위협적인 ‘떠돌이 전사’나 음습한 ‘악령의 동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불쌍하고 천대받고 멸시당하지만,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나의 길거리 이웃이었다. 지속적으로 손을 내민다면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는, 심장이 뜨겁고 늘 정에 굶주린 약자일 따름이다.”

라고 토로한다. 누군가 한 사회에서 약자가 어떤 대우를 받는지 보면 그 사회가 건강한지 여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보다 약한 존재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보호해 줄 때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게 된다.

     올해 9월 9일은 열 번째 맞는 한국 고양이의 날이었다. 이 날을 창안했던 야옹서가 대표 고경원씨는 “1년에 단 하루만이라도 고양이의 생명을 생각하는 날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용한 작가는 길고양이는 “언제나 먹을 것을 찾아다녀야 하는 스트레스와 포식자, 교통사고, 사람들의 포획”과 같은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어 평균 수명이 3년 정도라고 한다. 어머니 집의 단골손님 이쁜이가 여름 내내 보이지 않아 폭염을 이겨내지 못했을까 염려했는데,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나타났다. 온갖 악천후에도 꿋꿋이 살아가는 길고양이는 각박해져만 가는 우리 사회에서 희망의 상징이다. 이 골목 저 골목 우리의 발길 앞에 불쑥 나타나는 길고양이들은 우리가 타고난 자비로운 마음을 발휘하게 해 준다. 또한 이들은 공중의 새와 들판의 꽃을 먹이고 입히시는 창조주께서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잘 돌보고 계심을 상기시켜 주는 희망의 전령들이다. 이 작가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과 고양이의 공존의 문제”라고 했는데, 나도 이 땅의 수많은 이들과 함께 강자와 약자가 평화로이 공존하는 건강한 사회를 꿈꾼다.

 

 


신문주   18-09-12 23:10
    
안녕하세요?

오랫만에 글을 올립니다.

제 글의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개선할 부분이 있으면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신문주
이여헌   18-09-13 10:10
    
신문주샘, 저는 샘 글에 대해 잘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길고양이의 삶을, 생태를, 이렇게 이해 하시며 글까지 써주신 것에 대해
참으로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크고 작은 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부디 그 마음만이라도 오래동인 간직 하여 주시길 비는 마음입니다.
류한   18-09-13 12:09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댓글은 산문작가님만 올리시는지...그렇다면 양해부탁드립니다.)
     
노정애   18-09-14 20:41
    
류한님
반갑습니다.
이 방에는 누구나 댓글을 달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부담은 내려 놓으시고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노정애   18-09-14 20:40
    
신문주님
반갑습니다.
이렇게 좋은 글을 보니 제 마음도 따뜻해 집니다.
생생하게 잘 쓰신 글입니다.
메시지도 있고 좋습니다.
워낙 필력이 좋으신 분이라...
특별히 고칠것은 없어보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신문주   18-09-14 22:05
    
이여헌님, 류한님, 노정애님,

제 글을 읽어 주시고, 격려의 말씀까지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환절기에 건강하시고 평화롭고 행복한 가을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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