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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을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가?    
글쓴이 : 이승하    16-08-05 06:22    조회 : 3,976

  수필을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승하(시인, 중앙대 교수) 


  수필을 한자로 쓰면 따를 수(隨), 붓 필(筆)입니다.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란 뜻이지요. 다시 말해 별다른 제약이 없이 자유롭게 쓰는 글, 혹은 자기 자신의 생각을 아주 쉽게 표현하는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필의 소재는 자신의 생활 주변에서 가져온 것이 많고, 일정한 주제를 평이하게 쓴 문학적인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①누구나 작자로 나설 수 있는 문학, ②자기 고백적인 문학, ③체험의 문학이란 점은 보통 사람도 수필 작가로 나설 수 있게 하므로 수필 인구의 저변은 대단히 넓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아주 많은 수필 인구가 있습니다만 수필이 문학으로 인정을 받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월간 에세이』란 문예지의 독자투고란 심사를 맡아 1년 동안 한 적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 수필 인구가 뜻밖에도 아주 많더군요.

  몇 해 전에는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과 동서커피문학상 심사를 했는데, 그때도 그 점을 느꼈습니다. 시나 아동문학 쪽보다 수필 부문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고 있었습니다. 수필 인구가 많은 것은 현재 국내에 『계간 수필』 『수필과 비평』 『수필문학』 『수필춘추』 『월간 에세이』 『창작수필』 『한국수필』 『현대수필』 같은 문예지가 나오고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수필은 분량도 많지 않고 특출한 글재주가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 많은 사람이 수필을 쓰고 있고, 또 즐겨 읽기도 하는가 봅니다.

  서양에서는 수필을 언제 누가 쓰기 시작한 것일까요? 16세기 말 프랑스 미셸 드 몽테뉴가 처음으로 수필이라는 장르를 만들어 썼습니다. 몽테뉴는 만년에 고향에 은거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은 사색의 조각들을 진솔하게 기술하여 『수상록』이란 책으로 묶어냈습니다. 이것이 서양에서 수필의 효시입니다.

  그는 에세(essai;시도, 시험이라는 뜻)라는 용어를 만들어 써 자신이 이 장르를 창안해냈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수필의 서양어는 '에세이'가 된 것입니다만 사실 몽테뉴처럼 쓰는 수필은 비교적 가벼워 '미셀러니'라고 하고, 우리말로는 경수필(輕隨筆)이라고 합니다.

  수십 년 뒤 영국의 프랜시스 베이컨은 프랑스의 몽테뉴와는 달리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를 위엄 있고 장중한 문체로 써 역시 『수상록』이란 책을 냅니다. 그의 수필은 사회의 제반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을 전개했으며, 철학적 깊이까지 갖추어 내용이 꽤 무거웠기 때문에 중수필(重隨筆)이라 하고, 바로 이것을 가리켜 '에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저런 문예지에서 볼 수 있는 수필은 '에세이'가 아니라 '미셀러니'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동양권에서는 수필문학이 언제쯤 등장할까요? 중국 송나라 때의 학자 홍매(洪邁)가 쓴 『용재수필』에서 시작하므로 12세기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보다 훨씬 빠르지요? 중국의 이 책자는 당연히 우리나라(고려)에도 전해졌습니다.

  이인로의 『파한집』과 최자의 『보한집』은 우리 수필의 원조로 삼을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에 수필은 대단히 성행했는데, 책의 제목에 잡기·야록·야담·총화·패설·야화·만필 같은 것이 붙어 있으면 곧 수필이었습니다.

  이재현은 『역옹패설』에서 "낙숫물을 벼룻물로 삼아 한가한 마음으로 붓 가는 대로 하여, 울적한 회포를 풀거나 닥치는 대로 적은 것"이라고 수필을 정의했습니다. 우리 수필의 역사는 이렇게 깊습니다.

 『월든』은 1852년 출간된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으나 오늘날 19세기에 쓰여진 가장 중요한 책들 중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뛰어난 수필이 많이 나옵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김만중의 『서포만필』, 이익의 『성호사설』은 문학작품으로서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특히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은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과 정조의 왕위계승, 파란만장한 궁중생활의 애환 등을 여성적인 섬세한 필체로 술회한 수작입니다.

  함흥판관 신대손의 부인 의령 남씨가 쓴 『의유당관북유람일기』 중의 「동명일기」는 동해의 일출 광경을 유려한 문체로 쓴 명문입니다. (작자가 함흥판관 이희찬의 부인 연안 김씨라는 설도 있습니다.) 한글로 쓴 유씨 부인의 「조침문」과 작자 미상의 「규중칠우쟁론기」는 의인체 수필의 전형을 보여준 작품으로 조선조 여성의 생활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서양 수필의 고전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영국 수필의 대가는 단연 찰스 램입니다. 1820년에 나온 그의 『엘리아 수필집』은 예술 전반에 대한 애정과 해박한 지식으로 인간에 대한 동정심과 인간성에 대한 신뢰, 영원에 대한 동경심을 표현한 서양 수필문학의 고전입니다. 영국 수필의 전통은 새뮤얼 존슨, 올리버 골드스미스로 이어집니다.

  유길준의 『서유견문』(1895)은 서양문물을 내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소개한 여행기입니다.  

  프랑스의 수필은 생트 뵈버의 『월요 한담』, 루소의 『에밀』이 명작으로 꼽히며, 고답파의 창시자 고티에와 소설가이기도 한 아나톨 프랑스가 그 충실한 계승자입니다. 미국의 수필은 숲 속의 생활을 예찬한 소로의 『월든』이 첫손에 꼽히는 명작입니다.

  우리나라 근대수필은 1895년에 나온 유길준의 『서유견문』에서 시작됩니다. 일제시대에는 『박문』이라는 수필전문지가 생겨나고 양대 문예지 『인문평론』과 『문장』에서 수필 고정란을 마련해 우리나라 수필문학의 성행을 유도합니다.

  김기림ㆍ김진섭ㆍ김광섭 등이 이론적인 토대를 다진 이후, 이병기(시조), 이은상(시), 계용묵(소설), 피천득(번역), 민태원(번역), 이양하(영문학), 이효석(소설), 이상(시ㆍ소설), 이희승(국어학), 김소운(번역) 같은 분이 자신의 주 장르 작품을 쓰고 연구를 하면서 틈틈이 수필도 써 수필집을 냈습니다.

  광복 이후 안병욱ㆍ김형석ㆍ김태길ㆍ김동길ㆍ서정범 같은 학자, 유안진ㆍ신달자ㆍ류시화ㆍ신현림 같은 시인이 수필집을 내 대단한 인기를 누립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수십 년 동안의 베스트셀러입니다.

  오늘날에는 특수한 직업을 가진 전문인이 수필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시형ㆍ이나미ㆍ김정일 같은 정신과 의사가 대표적입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홍세화의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도 수필문학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의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수필도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가? 물론입니다. 앞으로는 수필에 대한 좀 더 폭넓은 연구와 아울러, 전문적인 수필가가 문학인으로 대접을 받아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6-08-06 11:55:07 자유게시판에서 복사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