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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글쓴이 : 문경자    12-11-13 11:04    조회 : 4,882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경자
 
 겨울 새벽닭 울음소리는 갓 시집 온 새댁의 아침 잠을 깨우는 시계소리와 같았다. 눈을 뜨고 천정을 올려다 보니 한숨이 나왔다. 금방 잠에서 깬 내 얼굴을 만져보니 싸늘한 기가 남아있었다. 방바닥은 온기가 있지만 공기는 차가웠다. 문밖에서 어~흠 하고 시어머님이 며느리를 깨우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닭이 우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불안해지고 날이 밝아졌다는 것도 걱정이 되었다. 머리맡에 벗어놓은 옷을 입으려고 할 때 기침소리를 내며 작은 방 문 앞을 지나는 것이 궁금하였다.
  시어머니의 그 소리는 나만이 알아 들을 수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꽃 이불 속에서 잠에 빠져 있는 신랑 얼굴이 얄밉게 보였다. 신랑은 그저 엄마의 기침소리로만 듣고 있겠지.
1분만이라도 눈을 부칠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억지로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는 신호로 헛기침을 하며 머리를 만지고 방문고리를 잡고 가만히 문을 열었다.
  찬 바람에 번득이는 마루 바닥이 시어머님이 남겨놓은 살얼음판처럼 보였다. 마루를 지나 댓돌에 내려서 신을 신는다. 하얀 고무신을 신으니 신발 속에 얼음이 들어 있는 것처럼 차디차다. 옆에 놓여 있는 시어머니의 털신이 부러웠다.
닫혀 있어야 할 정지문이 열려 있어 안을 들여다 보니 하얀 연기 속에 누군가 쭈그리고 앉아 불을 지피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시아버지는 열심히 솔가지를 아궁이 속으로 밀어 넣고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불이 잘 붙는지 확인을 하고 있었다.
며느리가 일어나기 전에 우물에서 길러온 물을 붓고 데워주셨다. 말씀은 별로 없으셨지만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을 실감나게 하였다.
잘 데워진 물로 아침을 준비하며 발이 시릴 때는 신을 벗고 양말 신은 발을 가까이 해본다. 따뜻한 불기운이 닿아서 좋았다. 바로 시아버지의 온기와도 같았다.
양은 솥에 들깨 갈은 물에다 된장을 풀어서 푹 삶은 시래기를 넣으니 구수한 국이 되었다.
 밥솥과 국솥에다 동시에 불을 떼는 것이 며느리에게는 힘이 들었다. 나무를 많이 넣고 불을 떼면 나무를 아끼지 않는다고 눈총을 받기도 하였다. 그래서 아껴서 떼다 보면 밥이 늦어지고, 식구들이 방안에서 밥을 언제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기도 하였다.
밥이 끓으면 무쇠 솥 뚜껑이 열려 그것을 닫는 일도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 팔뚝이 굵어졌는지 의심을 하기도 하였다. 밥솥을 열고 가운데 놓여 있는 쌀 밥을 주걱으로 퍼서 눈으로 확인을 하고 입으로 가져가 밥이 잘 되었는지 먹어 보았다.
 그때 먹은 쌀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이었다. 하얗게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쌀밥은 어른들께만 드리고 그것을 보호 하기 위해 병정 노릇을 하는 보리밥 부하들은 우리 차지였다.
국과 밥이 서로 경쟁을 하듯이 저희들끼리 쳐다보며 시비를 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밥솥이 쉬이 하고 드르럭 열리면 양은 솥 국은 푸~쉬 하며 뚜껑이 들썩였다. 며느리는 정신이 없어 손이 뜨거운 줄도 모르고 열렸다 닫았다 하며 아침을 준비하였다.
 시아버지는 걱정이 되는지 정지문 앞에서 안을 살펴보셨다. 며느리한테 밥 한끼 얻어먹다가 아침 나절이 다 지나 갈 것 같아 걱정이 되시는지 시어머니가 한 소리 하실까 며느리는 애가 탔다.
샛문을 열고 “아가, 밥이 언제 되겠노. 다 돼 가나. 너거 시아버지, 시동생, 시누이들이 언제 밥을 먹고 각자 볼 일을 보겠노.” 하고 혀를 차시며 문을 닫았다.
더 급해진 며느리는 둥근 상을 가져다 상다리를 잘 펴서 바르게 세워 놓았다. 겨울이라 부뚜막이 미끄러워 조심을 하지 않으며 안되었다. 김치와 밑 반찬을 챙겨놓고 밥을 퍼 담는다. 국도 몇 그릇 퍼서 올리고 이제 됐다 하는 순간 상다리가 미끄러져 와르르 다 쏟아지고 국물이 아궁이 속으로 흘러 들어가 화재가 난 것처럼 푸우~솨 하며 아침상은 어디로 가고 119가 와서 불을 끄고 간 것처럼 처참하게 변해버렸다.
 방안에 식구들이 뭔 소린고 하며 샛문을 열고 얼굴들이 어깨위로 포개져서 불구경을 하는 것처럼 보고 있었다. 나는 손으로 그것들을 치우며 마음이 방아를 찧었다. 시집살이를 더 호되게 하겠다. 어서 이 불을 꺼야 할 텐데, 어느 누구도 말을 하지 않네. 기가 차서 말문이 막혀 말도 안 나오겠다.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무안해 할까 봐 “ 아가 있는 데로 다시 상을 차려 들고 오너라.” 고 하셨다. 순간 시어머니의 얼굴이 큰 화상으로 눈 앞에 왔다. 바보야. 이제 죽었다. 국 솥에 남아있는 국과 남은 밥을 겨우 담아서 들고 들어 갔다. 얼굴을 들지 못하고 그냥 밥상 머리에 앉아 죄인처럼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밥을 먹고 있었다. 그 놈의 상 때문에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모르겠다.
아침밥도 못 먹고 설거지를 하며 며느리는 배가 쪼르르 나는 소리를 들으며 꾸정물속에 떠있는 시래기 조각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시골 작은 방에 모셔놓은 그 상은 쓰지 않고 마루에서 종이를 깔고 먹는다. 볼 때 마다 추억을 생각하게 해주니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하얀 은색바닥에 붉은 해와 학이 두 마리 그려져 있는데 가느다란 쇠로 만든 다리가 세 개 달려있어 쓰러질 위험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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