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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전초밥    
글쓴이 : 봉혜선    23-05-29 00:10    조회 : 1,407

                       회전초밥

 

                                                                     봉혜선

 회전초밥 코너에 앉아 있다. 사방 어디에 앉아도 고루 먹을 수 있게 돌아가는 백화점 지하 초밥 판매대다. 찾는 사람이 많은 음식점이라야 회전율도 좋고 신선하다는 지론을 가진 남편과 외식하러 나온 길이다.

 그침 없이 돌아가는 활기찬 회전초밥이 입맛을 돋운다. 얘기 나누는 공간은 아니라는 듯 일행이 서로 마주 보는 형태가 아니라 테이블이 요리와 마주하고 있다. 접시 색깔마다 가격이 다르다. 어떤 접시에는 모형이 올려져 있다. 주로 여성 고객이 많은 백화점 특성상 젊은 남자 요리사들이 전시되듯 대기하고 있다. 빙 돌아가며 마주 서서 미소 지으며 고객의 요구를 금방이라도 들어줄 것 같다. 모형을 잡으면 눈앞의 요리사가 잠시 대기를 부탁한다. 게딱지 밥을 잡으니 뒤에 서 대기 중이던 서빙 하는 사람이 얼른 데워다 준다며 가져간다. 잔술도 데워 주는 메뉴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노포에서 곰탕을 먹을 계획이었다. 검색한 바로는영업 중이었고 전화 통화는 되지 않았다. 전화 받을 수 없는 이유는 주말이라 손님이 많기 때문이라는데 남편과 의견 일치를 보았다. 제대로 찾은 맛집이라 자신하며 이끈 남편은 불 꺼진 가게를 들여다보고 닫힌 가게 문을 흔들어 보기도 했다. 인터넷 정보를 다시 검색해 보아도 영업 중이었다. 추운 날씨를 탓하지도 못하며 남편은 모자를 움푹 눌러 썼다. 추운 날은 실내가 최고라며, 체온을 올릴 겸 걷자고 꼬드겨 백화점 나들이를 할 수 있었다.

 볼 일이 있어도 혼자서 백화점 가는 건 잘하지 못한다. 남편과 같이 백화점 가기 역시 백화점에 납품 해 본 경험 있는 핑계를 대거나 많이 걷기 싫은 핑계를 대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둘이 서로 맞는다고 해야 할까? 서로 달라야 잘 산다는데 백화점에 다닐 만큼 형편이 되지 않는다는 변명이 너무 구구했나? 나로서는 벗지 않을 정도의 옷이 있으면 족하고 살림에 필요한 물건들은 집 가까운 데나 혹은 전문 매장이 더 고를 수 있는 범위가 넓으니 백만 가지 종류나 모아 놓은, 집에서 먼 백화점까지 굳이 나가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다고 여기며 지냈다.

 씩씩해 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나는 먹지 못하는 음식이 많은 편이다. 한국인이, 아니면 어른들이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것들이다. 아니 일반론에서 벗어나 남편으로 좁혀 봐도 식성이 꽤는 달라서 이제는 각자 식사하기로 합의를 본 상태다. 오늘만 해도 가마솥에 끓인 곰탕을 먹고 싶다고 해 남편이 이끈 길이다. 가끔 가본 백화점 지하 식당가는 사정이 좀 다르다. 중앙에 자리한 테이블은 각 매장 음식은 물론 근처 독립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이든 마트에서 사 온 것이든 갖다 놓고 모이기에 최적이다. 서로 타협하지 않아도 되는 메뉴나 기호에 맞는 음식 무엇이라도 먹을 수 있으니 입맛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 백화점 지하 식당의 시스템과 다양한 메뉴는 우리 부부에게 안성맞춤이다. 본인의 개성에 맞거나 국적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각종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다는 위안감을 얻으러 방문하기를 노린 전략을 쓰는 것이 백화점일까?

 각자 가장 입맛에 맞는 메뉴를 고르느라 매장을 서너 바퀴 돈 것 같다. 일단은 메뉴 체크 차 한 바퀴 돌았다. 추운 날씨에 광화문에서 을지로까지 걸어오느라 반은 얼고 조금 열이 오른 몸이 데워지며 입맛이 금세 돌았다. 내가 눈으로 고른 메뉴는 파스타와 샐러드, 남편은 샤부샤부와 곰탕. 곰탕 끓이는 가마솥 핑계를 대며 곰탕을 탈락시켰다. 오늘 먹고자 한 음식이 가마솥에서 끓이는 곰탕이었기 때문에 먹고 싶어 했으나 포기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남편은 샤부샤부를 같이 먹자며 음식 값을 내겠다고 선심 쓰는 척을 했다. 나는 광화문까지 헛걸음시켰으니 당연히 남편더러 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남편이 고른 음식을 먹기로 한다. 샤부샤부는 중앙으로 가져갈 수 없다는 핑계를 또 감당하고야 만다. 예전처럼 집에서 해내라는 말을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그리고 다 싫다고 집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은 것에도 감격한다는 칭찬도 얹었다. 남편이 내놓은 대안은 내가 먹겠다는 샐러드를 사와 같이 먹으라는 것.

 두 번째 고른 메뉴가 바로 회전초밥이다. 차 한잔하자는 내 말을 무시한 남편이 찻값만큼만 초밥을 먹자고 줄 끝으로 가서 선 것이다. 어쩐지, 고기 추가, 야채 추가, 하다못해 버섯 추가도 하지 않더라니. 눈이 돌아갈 만큼 화려하게 차려놓고 쉬지 않고 회전하며 유혹하니 발길이 잠깐 멈칫하기도 했다. 밥을 해결했으니 얼른 벗어나자고 말하지 않는 남편에 이미 충분하다. 말 붙이거나 내 의견 내기 쉽지 않던 지난날들에 비하면 끄는 대로 백화점까지 동행해 준 것만으로도 비약적 발전이다. 차 한 잔 정도는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다.

 다양한 음식이 이런 나들이를 자주 할 수 있는 핑계가 되어주려나? 이미 배는 부른 상태고 남편과 별 할 말도 없어 눈은 자연 요리사들에게 쏠렸다. 요리사들의 실력이 다른 것 같다. 만들어 내놓는 종류가 다르다. 이미 만들어놓은 계란말이를 얹은 초밥이나 붉은 새우 초밥 등 가장 저렴한 접시는 초보자 담당이겠다. 즉석에서 칼질한 재료를 얹어 빈자리에 채워놓는 초밥은 고수 몫이리라. 비싼 색깔 접시에 담은 초밥도 회전 테이블에 던져놓는다는 느낌이 강한데 초보로서는 미끄러지게 놓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익숙해지거나 매너리즘에 빠진다면 솜씨보다 버릇처럼 살아가게 되는 나이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빈자리가 나기 무섭게 채워지는 회전 테이블에 큰 규칙은 없는 것 같다. 굳이 찾자면 고객은 몰라도 되지만 제 담당 요리가 비는 담당자들이 만들어 빈자리에 넣는다는 것쯤이랄까? 접시 색깔 순서를 맞추거나 뷔페처럼 정해진 자리가 없으니 그저 빈자리가 나지 않게만 채운다면 회전 테이블은 돌아가게 되나 보다. 반복되는 역사를 느낀다. 내가 무엇이든 누구이든 대체 가능하다는 생의 논리를 맛보고 있다.

 이제야 겨우 살아간다는 것이 죽음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돌연사같이 순서 없이 세상을 뜨는 사람이 겨울에 더 많은 것 같다. 말세라는 말이 한 시대도 거르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 20세기를 마감하는 때에도 살기 위해 허덕였고 그 와중에 세기말 풍조에도 내몰렸다. 새로운 세기를 여는 천년만의 역사에도 발을 땅에 딛고 있었다. 어느새 23세의 역동적인 청년으로 자란 새로운 세기에 몸담고 있다. 살아간다. 살아진다. 사라진다. 비워지고 채워지는 인생이라는 회전 테이블이다. 어떤 색깔의 접시에 담기는 삶이어야 할까.

 

봉혜선

ajbongs60318@hanmail.net

한국산문 편집위원. 한국문인협회회원. 계간현대수필, 선수필, 수필미학, 에세이문학 이사

 

미간 주름, 이마 주름이 생겨 굳어져 간다. 혹시 펴질까 해서 촌스럽게! 환갑잔치를 했다. 살아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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