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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의 취미 (계간지 『수필 오디세이』2022 여름호)    
글쓴이 : 김주선    22-06-19 12:31    조회 : 14,034

남편의 취미

 김주선

  쓸쓸한 당신에게 숨겨놓은 애인 하나쯤 눈감아 줄까 보다. 응접실 탁자 위에 앉아 불경기에 시름 거리는 당신을 위로해 준다니 마누라보다 백번은 낫지 않은가.

남편은 몇 개의 분재를 본인이 운영하는 회사에 소장하고 있다. 내가 기르는 화초에 비하면 그의 분재는 거의 예술품에 버금가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거래처에 갔다가 얻어 온 분재작품 단풍나무소사나무그리고 일반 사과나무분재였다. 손이 많이 가는 나무였지만, 몸값을 한다며 물 한 모금도 남의 손에 맡기지 않았다. 어쩌다 담배 한 모금이라도 피울라치면 눈을 흘긴다며 금연에 일조한 분재를 애지중지했다. 

코로나로 일감마저 줄어든 요즘, 축 처진 그이의 어깨를 펴 줄 만한 게 뭐 없을까. 궁리 끝에 헌인릉 화훼농원에 함께 갔다. 단골집에 들러 화초를 사고 분갈이를 맡겨놓은 다음 여기저기 꽃시장을 구경했다. 발길이 뜸한 시간이라 호젓하니 좋았다. 남편이 좋아하는 분재원도 들렀다. 평소 분재 가꾸는 취미를 가져보겠다길래 이참에 용인할 참이었다. 어깨춤이 절로 나는지 팔짱을 낀 아내의 손마저 풀어 버린 채 원장을 따라 공방으로 들어갔다.

전시장 뒤편 공방은 좀처럼 공개하지 않았으나 원장은 지인이라고 선뜻 공개했다. 분재관리사가 되기 위한 수강생이 공부하는 곳이었다. 팔다리가 묶인 어린 매화가 보였다. 작은 입을 오물거리는 걸 보니 내가 다 아팠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 못한 분재와 더러는 고문을 견디다 못해 시든 나무를 본보기로 놓아둔 모양이었다. 작은 토분 안에 철삿줄로 칭칭 동여맨 꽃나무와 산에서나 볼 수 있음 직한 신기한 나무가 여럿 보였다. 원장은 악어 등껍질 같은 소나무 한그루 앞에 남편을 세우더니 그 위용과 자태를 열변하느라 침이 튀었다. 용의 꿈틀거림으로 수형이 잡히면 곧 선보일 작품이라 했다. 아직 승천할 때가 안 되어 묶어 두었단 말인지, 타원형 분() 안에 발톱을 오므리고 있을 용의 발등이 툭 불거져 보였다. , 기형의 발등이 고가의 예술이라니. 입이 떡 벌어졌다.

유독 눈에 들어오는 나무가 있었다. 허리가 굽고 사지가 뒤틀린 소나무였다. 키 작은 나무가 평생 허리도 못 펴는 노송이 되어 어느 집 사랑방 문갑 위에 놓일 분재였다. 누굴 향하여 저토록 몸을 조아리나 안쓰러운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모습이 우리네 인생과 닮아 보였다. 수많은 분재의 진열 틈에서 뼈대가 고스란히 드러난 향나무 또한 그 생김새가 처연했다. 살점 하나 없는 흰 뼈가 반질반질 윤이 났다. 사리라고 했다. 나무에도 사리가 있다니 얼마나 영물인가. 구불구불 삶의 굴곡을 표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나무가 죽음의 고비를 맞았을까. 감정 이입이 먼저인 나와 다르게 분재의 경이로움을 감탄하느라 남편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분재를 보면 전족이 연상된다고 하자 나의 비유가 부적절했던지 원장은 기분이 언짢아 보였다. 나무의 성장을 막고자 뿌리를 묶고 발등이 불거지게 하고 등을 구부러지게 하는 것이 미인의 절대조건이었던 전족과 무엇이 다를까 싶어서였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정원이 발달한 송나라의 분재가 전성기를 맞이할 무렵 전족도 패션이 되는 시기였다. 가학적인 풍류에 희생된 여성의 발과 당대 문인 묵객들의 집안에 놓인 난쟁이와 곱사등이 같은 작고 앙증맞은 나무가 전혀 무관하다 볼 수도 없는 일이다. 다행히 고려는 분재문화만 흡수하여 아름다운 청자를 빚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사실 분재는 수백 년 산 고목처럼 보일 뿐 자연스러운 생육이 아니라 관상용이다. 몸에 칼집을 내어 접목도 하고 조각칼로 성형도 하며, 일부러 껍질을 도려내어 굳은살을 만들고 부러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분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함께 지켜본 남편은 살짝 놀란 눈치였다. 저절로 생긴 나무 모양인 줄만 알고 노후를 위해 투자사업도 고려했던 사람이었다. 자식도 방목하는 그가 제멋대로 자라는 뿌리와 가지를 본인의 취향에 따라 자르고 동여맨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부러뜨리진 않을까, 죽이진 않을까, 건설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그의 손도 묘목 앞에선 떨릴 때가 있었다. 

나무도 오래 살면 종교가 된다지 않는가. 노송은 신목이며 나무 중의 영물이라 하여 아버지는 함부로 다루지 않으셨다. 고향에는 수령이 이백 년은 족히 넘었을 노송이 있었다. 칡넝쿨에 구부러지고, 비바람에 비틀어지고, 폭설에 부러져 지팡이를 짚고 서 있어야 하는 늙은 나무였다. 무등산에서 굴러온 바위를 온몸으로 막았다 하여 마을 이장이 기념물로 지정해 달라고 군청 산림녹지과를 드나들 정도였다. 모진 풍파를 견뎌 낸 나무들이 저마다의 상처를 보듬어 전설을 만들 듯이 옛이야기가 있었다. 정자 옆 소사나무의 연리지가 그랬고 산령 바위 위에서 학의 형상으로 퍼덕이던 눈향나무가 그랬다.

산으로 들어간 어느 분재인은 산방에서 10년을 공부해도 하산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것이 분재 공부라며 불심(佛心)에 기댔다. 수백 수천 년, 인고의 세월이 만든 자연목을 내 몸 가까이에 두고 즐기고자 축소하는 일은 인간의 이기적 욕망이라 했다. 재미 삼아 취미 삼아 혹은 영리에 목적을 두고 분재에 임한다면 차라리 화초를 가꾸라는 충고가 떠올랐다. 생명을 다루는 일이니 겸손한 자세로 인격 수양부터 하라는 뜻이었을 게다.

이제 막 길들이지 않은 묘목 한 뿌리를 얻어와 분재에 입문해 보려는 남편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어야 하나. 그가 만든 산실에서 오랜 기다림과 인내로 태어날 분재를 위해 기꺼이 내 마음도 베풀겠지만, 어여쁜 명자꽃이 필 때까지 철사 대신 햇살로 동여매는 방법은 없을까 궁리 중이다.

   (계간지 『수필 오디세이』2022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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