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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시화의 선물    
글쓴이 : 성혜영    21-12-15 21:04    조회 : 4,460

류시화의 선물

 

성혜영

 

누가 티브이를 바보상자라고 했던가? 그 속에는 인생, 교육, 재미, 모든 세상살이가 있다. 퀴즈프로인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탤런트인 공유를 통해서 류시화 시인을 만났다. 의외였다. 이 퀴즈프로의 이름은 1992년 내한공연을 했던 미국 그룹인 뉴키즈 온 더 블록에서 따왔다. 그때 공연장에 여중생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 뒤엉키며 다치는 불상사가 있었다. 뉴스를 보던 나는 헐레벌떡 잠실체조경기장으로 향했다.

딸을 데리러 간 나는 삼십여 분간 서서 구경할 수 있었다. 별일 없는 아이와 눈 맞춤 한 후, 같은 처지의 부모들과 선 채로 남은 공연을 즐겼다. 광란의 무대를 외면할 수 없었던 기이한 구경은, 딸과 얽힌 추억의 한 자락이다.

MC공유에게 좋아하는 시가 무엇인가를 물었다. 공유는 류시화 시인을 통해 알았다며 호주 시인 에린 핸슨아닌 것을 읊었다. 섬뜩할 정도로 한방에 와닿았다.

사 두고 읽지 않은 류시화 옮김 마음 챙김의 시를 펼쳐보았다.

시집은 야금야금 아끼며 읽어야 제맛이다. 한 번에 주르르 다 읽으면 허허하다. 바로 나의 시 공책에 옮겨 쓰고, 시를 좋아하는 네 명의 카톡방에 이 시를 올렸다.

 

당신의 나이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이 입는 옷의 크기도

몸무게나 머리 색깔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의 이름도/ 두 뺨의 보조개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읽은 모든 책이고 당신이 하는 모든 말이다.

당신은 아침의 잠긴 목소리이고/당신이 미처 감추지 못한 미소이다

당신은 당신 웃음 속의 사랑스러움이고 당신이 흘린 모든 눈물이다

당신이 철저히 혼자라는 걸 알 때/당신이 목청껏 부르는 노래

당신이 여행한 장소들/ 당신이 안식처라고 부르는 곳이 당신이다

당신은 당신의 믿는 것들이고/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며/당신 방에 걸린 사진들이고

당신이 꿈꾸는 미래이다/당신은 많은 아름다운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당신이 잊은 것 같다

당신 아닌 그 모든 것들로 자신을 정의하기로 결정하는 순간에는

(에린 핸슨, ‘아닌 것전부)

 

애쓰며 사는 내게 나는 종종 선물을 한다. 새해 노트북을 선물하니 신의 한 수가 따로 없다. 티브이보다 세상일을 세세하게 만날 수가 있다. 글쓰기를 위한 선물이지만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더 많다. 노트북을 펼쳐, 한 시간 이상 유튜브로 음악을 들으며 아침을 시작하는 새로운 일상. 이승철부터 롤링스톤즈 바흐까지 음악을 사냥하며 기분을 끌어올린 후, 새로운 사냥 거리를 찾아 뒤적인다.

책으로만 알던 교수며 작가들의 면면을 그곳에서 만날 수 있으니 좋다.

밤에는 재밌는 강의인 고미숙의 열하일기를 들으며 잠들곤 한다.

신비스러운 류시화 시인도 볼 수 있나 찾아보니, 역시 그분은 없다. 류시화의 목소리로 강의를 들어보고 싶었는데, 긴 머리에 선글라스를 쓴 그 모습으로.

류시화의 산문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는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고,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수도승 같기도 하며 명상가이자 시인이며 번역가이다.

생의 절반을 인도나 네팔에서 지내서 신비스러운 건지, 그의 외모나 생각이 묘해 신비스러운 건지, 그는 남들과 꽤 다르다. 목소릴 듣고 싶은데,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류시화 시인의 얼굴 대신 그가 보낸 선물들을 만났다.

친근한 스타들의 목소리를 빌려 우리에게 선물을 주고 있다니. 김혜수의 눈풀꽃.’

송혜교의 별의 먼지,’ 아이유의 더 느리게 춤추라,’ 공유의 아닌 것,’ 유아인의 위험들,’ 김혜자의 우리에게는 작별의 말이 없다.’ 등의 시 낭독이 이어진다. 모두가 한뜻으로 코로나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신비한 모습이다.

스타들은 익숙한 목소리로 류시화가 번역한 마음 챙김의 시를 읊는다.

그중 김혜자가 눈길을 끈다. 엘렌 바스의 중요한 것은을 읊는 그의 목소리의 떨림이 내게 스며든다. 목소리의 공명이 낭송하는 시와 잘 어우러진다.

 

류시화와 김혜자의 만남을 익히 알고 있으나, 어떻게 친해졌는지 궁금하던 터였다.

유튜브에 모든 답이 있다. 같이 네팔에 갔던 일이 있었다고 한다. 네팔 여행 중 길가에 울고 있는 여인이 있어, 김혜자도 옆에 앉아 따라 울었단다. 일어서며 울고 있던 여인에게 300달러를 선물하여 일행이 그 이유를 묻자, “그녀와 나는 똑같은 사람이에요. 누구나 한 번쯤 좋은 일이 일어나길 바라죠. 오늘은 그 좋은 일을 내가 해 주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단다.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는 김혜자의 책이다. 아프리카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책 이름에 녹아있다. 오래전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담은 그 책을 읽고, 뭉클하여 유니세프에 가입했었다. 이치와 도리에 맞는 선한 영향력이 필요한 시기가 따로 있을까? 시를 읊는 목소리의 울림은 그녀의 따스한 마음의 울림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메릴 스트립을 닮은 김혜자.

그녀의 목소리로 시를 들으니, ‘류시화의 시 선물에 제격이다.


2021. 한국산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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