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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문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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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문경자    21-07-28 00:13    조회 : 5,238

 

문경자

감악산이 멀리 보이는 곳. 시집에서 염소를 키우고 있던 시절. 새댁인 나는 가족들이 들에 나가고 없을 때는 집을 지키는 얼룩무늬 강아지에게 밥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장난을 치면서 놀아 주었다. 어쩌다가 들에 나가는 동네 사람들이 집 앞을 지나기도 하고, 논이나 밭에 나가 일을 많이 하여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웃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외롭지 않게 살아왔다. 마을이나 읍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소소한 일까지도 훤히 알고 상관하는 소박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지팡이를 짚거나 지게를 지고, 여자들은 보따리를 이고 오일장에 나가기도 하였다. 그런 날에는 아랫마을에 누가 아프다든가, 어느 집 아들 딸들이 결혼을 했다 느니 연애 중이라는 등 여러 가지 소식을 전해 듣곤 하였다.   

근처 마을에서 남편보다 잘 생긴 남자는 없다고 시어른들은 자랑을 하였다. 나는 별로 관심이 없는 체하면서 남자의 마음을 사기 위해 찾아오는 여자는 없는지 궁금하여 시누이에게 슬쩍슬쩍 물어 보곤 했다. 그런 일들을 알아서 무엇 하느냐고 누군가 묻는 다면 나는 대답할 것이다. 결혼식을 하기 전에 약혼식을 하였다. 일년을 기다렸다. 나는 스물 네 살이었고, 남자는 두 살 위였다. 내가 그때까지 살아 오면서 보았던 남자 중에 제일 멋진 사람이었노라고.     

우리 부모님은 맞선을 보고 난 후, 예의가 바르고, 생김새도 도시의 남자처럼 미끈하게 잘 생겼으며, 무엇보다도 마음이 착해 보인다고 하였다. 평생을 살아도 속을 썩이지 않을 남자라 부추겨 세웠다. 남자는 여성스러운 면이 있어 조용하고 웃을 때는 치아가 보이지 않게 웃었다. 입술이 얇고 갸름한 얼굴이었다. 그런 모습을 그리며 밤길을 걷기도 하고, 그 동안 잘 지내는지 궁금하여 별들에게 안부를 전하기도 하였다. 양가부모님의 승낙을 받아 간소하게 서울에서 약혼식을 가졌다. 약혼후에 소식을 편지로 전하면서 일년을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시어른들은 길이 멀어서 약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어느 하루. 시어른들께 인사차 남자의 집을 방문했을 때, 하늘이 맑게 개이고 물기를 머금은 산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내 마음은 설렜다. 집안은 마치 잔치를 하는 것처럼 북적거리면서 아가씨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감나무 가지에 까치도 노래했다. 그런데 서울에서 온 아가씨를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라고 신기 한 듯이 바라보았다. 저녁이 되자 사람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 갔다. 시댁 식구들은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잠을 청하였다. 칠 남매 중 제일 위 시누이만 결혼을 한 상태였다. 남자는 방으로 가자고 말했다.

남자는 먼 길을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는 말을 하고 살짝 아가씨를 안아주었다.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 오르고 부끄러웠다. 그 때 천장에 붙어 있는 전깃불에 남자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아가씨는 그러니까 여기가 남자의 방이냐고 물었다. 여기서 항상 혼자 지내면서 편지를 쓰곤 했군요.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고 지내요?”하고 아가씨는 다시 물어보았다. ‘바로 당신을 생각한답니다, 아가씨.’대답은 그렇게 해서도 거짓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방은 작고 책상과 걸상이 놓여있었다. 남자가 잠깐 나간 뒤에 아가씨는 손때가 묻은 책상 앞에 앉았다. 손잡이가 덜렁거리는 책상 서랍 안이 궁금해졌다. 무심코 열어본 서랍, 정리가 깔끔하게 되어있었다. 그런데 네모로 반듯하게 접어 둔 하얀 종이가 내 눈에 들어 왔다. 썩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슬쩍 집었다. 아니. 이게 뭐지!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가만가만 펴보았다. 사진 속 여자는 리본과 레이스로 만든 흰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으며, 긴 생머리에 검은 눈동자, 두꺼운 입술, 하얀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무리 쳐다봐도 예뻐 보이지는 않았다. 순간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사진 속 여자의 얼굴도 찌그러져 밉게 보였다. 나 아닌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나는 남자에게 물어 보고 싶었다. 그러나 가슴이 뛰어서 한 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남자는 눈치를 채고 일부러 짓궂은 질문만 하고 내가 웃어 주기를 바라겠지. 가끔은 여자 친구가 찾아 오기도 하겠지? 틀림없이 그 여자 친구는 남자의 마음을 끌기 위해서 갖은 아양을 떨겠지.

방문을 열고 들어 오는 남자의 멋진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사진 속 여자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서 인지 남자를 보는 순간 몹시 당황했다. 내 마음을 들킬까 봐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4월이라서 밤이 짧습니다. 그만 자요.”하고 나가려는 남자의 말에, 마음이 상한 아가씨는 두 눈에 커다란 눈물 방울이 맺혀 울고 만 싶었다. 책꽂이에 꽂아 둔 사진을 보여 주었다. 남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미 결혼을 하고 남의 아내가 되었다는 등 변명만 늘어 놓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목구멍이 좁아 지고, 입 안은 타고, 가슴은 뻐근하였다. 남자는 뜻밖의 일에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재떨이를 앞에 놓고는, 기름이 다 빠져나간 라이터에 겨우 불을 부쳐 사진을 태웠다. 남자 얼굴은 하회탈을 쓴 괴상한 모습으로 변하였다. 아가씨는 그래도 남자의 마음은 태울 수가 없지 않은가! 답답하고 괴로운 마음만 더했다. 메케한 냄새를 피해 방문을 열고 나와 아가씨는 마루 끝에 쪼그리고 앉아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었다.

사랑의 불길로 활활 타는 것 같았지만 티끌만큼도 나쁜 마음을 품지 않았다는 걸 부처님께 맹세 할 수가 있다. 밤 하늘이 그렇게 높아 보이고 뭇 별들이 그렇게 찬란해 보인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 때 남자가 밖으로 나왔다. 잠이 오지 않는 모양이다. 염소들이 꼼지락거리면서 깔아 놓은 짚단을 부스럭대고, “음매애음매애울어 대기도 하니 그럴 수 밖에, 그래서 차라리 밖으로 나오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알퐁스 도데에 나오는 아가씨의 마음으로 돌아 갔다. 남자는 바둑무늬 샤쓰를 벗어 내 어깨에 둘러주고,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별빛아래서 밤을 세워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주위는 풀벌레 소리, 또 하나의 신비로운 세계, 고요 속에서 눈을 뜬다는 사실을, 앞 냇물 소리는 더 맑은 소리로 노래하고, 작은 별들이 춤을 춘다.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들이 귓가에 들려온다. 밤은 죽어 있는 것들의 세상이다. 나는 그런 밤이 익숙하지 않아서 무서움에 떨었다. 남자의 어깨에 살며시 기대니 슬픈 마음이 저 하늘 별빛에 묻어 멀어져 갔다. 나는 말이 없는 남자 곁에서 여전히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참 별이 많기도 하지요? 어쩜 저렇게 아름다울까”! 저 별들만 보아도 자정이 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지요. 그러나 저 모든 별들 중에는 우리들의 별인 연인의 별도 반짝여요. 가녀린 눈으로 남자 눈 속에 박혀 있는 푸른 별 하나가 들어있는 것을 보았다. 하늘에는 별들이 염소 같은 모양으로 떠가는 듯하고아가씨는 이따금 생각했다. 그 별들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려와, 지금 마음이 아픈 나를 지켜주고 있는 것은 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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