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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까지 간다    
글쓴이 : 진연후    20-10-29 23:31    조회 : 2,169

끝까지 간다

진연후

조카 수빈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상을 받았다. 1학기엔 공감상을, 2학기엔 배려상을 받아와서 좋은 상이냐고 묻는 아이에게 동생은 공감과 배려의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이제 앞으로는 공부 잘 한다는 상도 받으면 좋을 텐데.”

평소에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내가 배려상에 반가워하며 기특해하자 동생이 덧붙인 말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하고도 몇 년 더 학교라는 곳에 다녔다. 위로 올라올수록 받는 상은 줄었다. 제일 많이 받은 상은 아마도 개근상일 것이다. 예전엔 우등상 진보상이라는 것이 있었고, 졸업식 때나 받는 특정인물이나 직책 이름으로 된 상이 있었는데 요즘은 상 이름이 참 다양해졌다.

20여 년 전 초등학생들과 독서토론 수업을 할 때 상을 주고 싶었다. 상 이름을 생각해보면서 아이들의 특징을 찾아보고 어떤 상을 주면 그 학생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아이들에게 받고 싶은 상을 정해보라고 했더니, 자신의 이미지를 한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했는지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시간을 잘 지킨다든가 친구들 의견을 잘 들어준다든가 책을 많이 읽는다는 등의 내용으로 상 이름을 지었던 것 같다.

갑자기 밖이 소란스럽다.

“샘, 밖에 싸움 났나 봐요.”

수업하던 아이들이 조용해진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엄청 크고 튀어나오는 단어도 거칠다. 아이들이 듣지 않았으면 싶은 욕설도 들린다. 내가 대신 막아줄 수가 없다.

“자, 수업 계속. 목소리를 좀 크게 해서 발표해야겠지. 밖이 시끄러우니.”

한동안 아이들의 귀가 밖에서 들어오지 않고 있음을 알지만 모른 척한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이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기에 볼 기회가 많지 않아서 하는 말 같다. 불구경은 다행이도 해 본 적이 없다. 예전에 시장에 다닐 땐 가끔 싸움 구경을 할 뻔하기도 했지만, 싸움이 시작될 기미가 보이면 사려던 물건도 내려놓고 그곳을 벗어났다. 세상에서 재미있다는 구경이지만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어떤 싸움이든 제대로 해 본 적도 없고 물론 싸워서 이겨 본 적은 더더욱 없다.

수필을 쓰는 어느 분이 글쓰기는 엉덩이 싸움이라며 우선은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있는 것부터 이겨내야 한다고 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 아이들도 엉덩이 싸움에 도전하고 있구나싶다. 학생들에게 공부 좀 하라고 할 때마다 엉덩이 좀 붙이고 있으라고 한다. 수업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엉덩이를 들썩이는 아이들에게 ‘엉덩이 좀 붙이라’고 하는 건 한참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밖의 소란이 가라앉을 때 쯤 아이들에게 어떤 상을 받고 싶은지 물었다. 예상대로 대부분의 아이들이 공부 잘 해서 받는 우등상이 제일 받고 싶단다. 공부를 잘하는 것이 가장 상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등상이 최고라는 생각은 아이들만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연말에 가족끼리 친구끼리 상장 하나씩 주고 받는다면 어른들은 어떤 이름의 상을 받고 싶어 할까? 공감, 배려, 존중, 책임, 정직 등의 상장은 어쩌면 어른들이 탐내야 하는 것 아닐까? 상장의 이름보다 상금이 더 중요한 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공감상과 배려상을 받은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그 상의 가치를 지키며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럼 욕설을 하며 주먹질이 오가는 싸움이 줄어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나는 엉덩이 싸움에나 도전해 볼까한다. 그런데 엉덩이만 오래 붙이고 있는다고 공부를 잘 하는 게 아닌 걸 보면 엉덩이 싸움도 다른 전제 조건이 있는 것만 같다. 이 싸움만큼은 한번쯤 이겨서 끈기상 아니 ‘끝까지 간다’상이라도 받고 싶다. 엉덩이 붙이고 있는 건 자신 있었는데, 더구나 무게가 가볍지 않으니 이번에는 성공 확률이 좀 있지 않을까?

* 좋은 수필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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