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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이 되는 나이    
글쓴이 : 진연후    20-10-29 23:29    조회 : 2,082

어른이 되는 나이

진연후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다녀오고 다음 수업 준비도 해야 하는 10분 동안 쉬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지하에 있는 마트로 달려가 음료수를 사 먹고 핸드폰을 꺼내 잠시 게임을 하고 옆 친구와 아이돌 이야기로 시간이 부족하다. 다시 2부 수업이 시작되어 선생님이 들어가면 그때서야 화장실에 간다, 물을 마시고 오겠다, 가방을 열고 책을 꺼낸다, 부산스럽다.

그날 조 선생은 수업에 들어가자마자 과제물을 걷으며 수업 준비를 하라고 아이들에게 정리할 시간을 주었다. 그때까지 지헌이와 병재는 쉬는 시간을 끝내지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샤프펜을 가지고 뭘 하려던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중2 남학생들의 장난은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다. 아무튼 병재가 샤프펜의 윗부분에 달린 철판으로 지헌이의 손톱을 건드린 모양이고 지헌이의 새끼손톱이 빠져버렸다. 당황하는 조 선생에게 지헌이는 손가락을 움켜쥔 상태에서도 병재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고 장난하다가 그런 거라며 괜찮다고 했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토요일 밤이니 응급실로 가야 할 것 같았다. 모임 중에 연락을 받고 온 지헌이 엄마를 강의실로 안내했다. 놀란 우리들보다 침착하게 지헌이를 불러내고는 병재를 잠깐 나오라고 해달란다. 겁먹은 표정으로 나온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죄송하다며 울먹인다.

“놀랐지? 너무 걱정하지 마. 괜찮을 거야.”

한 손으로 아이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어깨를 다독이며 전하는 목소리가 봄볕보다 따스하다. 대일밴드로 처리할 수 없는 대형 사고라고 당황하여 허둥대느라 미처 병재의 마음은 헤아리지도 못하고 있던 터였다.

아이들은 장난이어도 부모들에겐 사건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다치게 한 아이와 같은 입장에 놓여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이의 아픔보다 엄마의 걱정으로 손톱만큼의 상처가 온 몸으로 퍼지기 일쑤이고 원망의 화살이 사방으로 쏟아진다. 부모의 마음은 그런가 보다고, 자식의 아픔에는 이성이 객관적으로 되지 않나 보다고 애써 한숨을 삼켜버리곤 했는데, 상대방 아이가 놀란 것을 걱정하고 안심시켜주는 모습은 낯설기까지 했다. 어떻게 했길래 손톱이 빠졌는지 모르겠다는 우리들의 말에 모자가 모두 손톱이 약한가 보다고, 쉽게 빠지기도 하는 모양이라며 책임을 묻지 않았다. 오히려 두어 달여 동안 지헌이는 새 손톱이 예쁘게 잘 생기고 있다며 웃곤 했다.

나이를 먹으면 저절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던 때가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생이 되는 것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이 되면 성인이라고 해주는 것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면 당연히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우리나라 현행법에서는 만 18세면 결혼을 할 수 있고, 운전면허도 딸 수 있으며, 군에 입대할 수도 있고, 취업도 가능하다. 그리고 이제 만 18세면 선거권도 갖게 된다. 법적으로는 어른이 확실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이가 어른의 기준이 아님을….

달콤하고 맛있는 것만 밝히는 초등학생 입맛은 그렇다 쳐도 귀가 순해지지 않는 것은 물론 샘과 욕심은 줄어들지도 감춰지지도 않아 내 이익에만 눈이 번쩍일 때가 가끔 아니 종종 있다. 상대방의 감정을 미처 챙기지 못하고 내 몸 내 마음만 알아달라고 칭얼대는 스스로를 알아채는 순간 지헌이 엄마가 떠오른다. 시간이 가는 만큼 정확하게 나이는 더해졌지만, 나는 열에서 스물이 되는 동안 한 뼘도 크지 못한 키만큼이나 마음도 넉넉해지지 못했다. 내 아이 다친 것도 걱정이지만 더 불안할 아이 친구 마음도 헤아릴 줄 아는 것, 언제 어디서 배울 수 있는 걸까?

새해가 되었다고 나이 한 살을 또 먹었다. 서른, 마흔, 이제 쉰이 넘어가며 부모 되기는 접어둔다 해도 언제쯤 어른이 될까? 두루 살피고 감싸 안을 수 있는 너른 품을 갖는 어른이 될 수는 있을까? 타인에 대한 배려를 제대로 보여준 지헌이 엄마에게서 어른의 모습을 보았고, 그 따듯함을 기억하며 나도 한 걸음쯤 나아가고 있는 거라면 좋겠다.

어쩌면 그 날 어른이 갖추어야 할 것 중 하나쯤 마음에 새긴 열다섯 살 아이어른은 이미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지헌이와 병재 그리고 또 누군가….

* 한국산문 202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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