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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위에서    
글쓴이 : 봉혜선    20-10-29 10:20    조회 : 2,466

길 위에서

봉혜선

 

언제부터가 중년인가요? 흔히들 중년을 가을에 비유하더군요. 지나가버려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새로움의 봄, 뭉뚱그려진 환희와 고뇌로 사색할 틈 없이 지나간 여름은 소용없어졌습니다. 진정한 계절은 가을이 아닐지요? 나이 사이가 촘촘하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조춘(早春)이 있듯이 초가을도 있고 성황 중인 만추의 시절과 쓸쓸한 가을도 있습니다. 10, 20대 이렇게 뭉뚱그려 지나가버리지 않는 지금 매 순간 매일을 매번 새롭게 느끼는 것도 나이 덕이겠지요.

가을을 느끼라고 낙엽을 일부러 쓸어내지 않고 쌓아두는 서울 10대 길 중 한 군데가 집 앞 가까운 곳에 펼쳐져 있습니다. 남겨진 낙엽들 위를 발로 스치며 걸음을 옮깁니다. 빨간 단풍잎이 떨어져 누운 모양이 마치 불붙은 별똥별 같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숙이고 걷습니다. 부모님 병 수발을 새롭게 하는 순간부터가 진정한 중년이 아닐는지요? 거기에 내 모습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지난 두 달간 어머니가 병원에 있었습니다. 처음 당한 일이라 당황했지만 무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젊었다면 슬퍼하며 두 손 놓고 있었을 테지요. 눈물을 훔치며 이런저런 처리를 해내는 제 모습이 낯설었지만 사과가 붉어지듯 익어가고 있음 또한 느꼈답니다. 부모님은 겨울로 가는 급행열차에 몸을 실으신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아이들이 내게 그런 대우를 해주던 지난여름 여행도 그랬던 건가요? 부지런을 떨었고, 발걸음을 빨리 했으며 이국적이어서 낯선 음식에도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해보자고 해도 뒤로 빼지 않았습니다. 우리 부부를 모시고다닌 아이들은 남편과 내가 기뻐해도 힘든 건 아닌지 기색을 살피는 눈치였습니다.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겠지요, 세월은. 나이를 세는 뒷자리 중 셋, , 다섯, 여섯처럼 시옷으로 끝나면 중반이고 일곱, 여덟, 아홉의 비읍은 후반이래요. 여덟이니 기계가 지시하는 대로라면 열 살쯤 어려도 정녕 인생 후반을 살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글로 마음을 가다듬는 것을 해보고, 아니, 해내고 싶었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니 더 이상 미래에 기댈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보호자를 자청하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저당 잡히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겠습니다. 그제야 지금 여기가 제대로 보이더군요. 실천을 하러 글공부를 하려고 나선 길입니다. 일찍이 책은 도끼다라 했던 카프카의 조언을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나를 싹 바꿔보려고요. 얼어붙은 감성을 깨뜨릴 준비는 하는 중이니까요.

글쓰기를 하러 다니는 길이 눈물겹도록 좋습니다. 오가는 길 위에서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입니다. 글 쓰는 사람들이 모두 직렬이 아니라 병렬로 서 있는 모습도 그간 누군가에게 기대기만 하던 나에게 홀로서기라는 영역을 깨닫게 하고 알게 하였습니다. 인연을 다 걷어내고도 글은 남으리라는 마지막 미련은 평소에 늘 갖고 있던 것이었죠. 글자에 대한 오롯한 마음이 끊이지 않으니 써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바닥에 남아있다고 자신에게 말하려고요. 더구나 맺으면 끊는 것을 못하는 성격인데 칼로 무가 동강 나듯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책만 붙들고 앉아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 불편함을 겪지 않으려고 나온 이유도 있습니다.

원래, 외로운 것, 달리 말하면 고립무원이 인생길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더군요. 여기까지 오는 길에 참으로 외로웠고 그야말로 가시밭길, 산전, 수전, 공중전, 제비돌리기까지 하며 돌아돌아 왔어요. 어느 곳에서는 원고를 타자로 쳐서 복사해 오지 않았다며 보기가 힘들다는 얘기를 험담하듯 했답니다. 글까지 두서없고 난삽하다고 해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갈라야지요.

갈 길을 밝혀주며 지켜보던 전철 환승역 지하도에 늘어선 조명등은 눈이 닿는 곳마다 반짝이는 눈길을 보내주더군요. 스치듯 빨리 걷는데도 그게 당연히 할 일이라는 것처럼 또 넘어질세라 부축하듯 환한 빛을 쏘아주고 있었습니다. 넘어지지도 주춤거리지도 말라고 내게만 더 밝은 것을 곁눈으로도 알아차렸습니다.

전철역의 커피 향 나는 쌀 빵집도 후각으로 나를 위로했군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섭도록 고독한 길을 그나마 걸을 만한 길이라고 말을 걸어 준답니다. 글 향을 맡고 나왔더니 잊고 있던 그 향이 살아있는 걸 알겠습니다. 급히 가던 길에 못한 인사를 챙기러 반짝이던 화등잔만한 등불을 찾았습니다. 어느 하나 아는 체하지 않고 묵묵히 본분에 종사할 뿐인지 뒤로 물러서 흐릿하기만 하니 오히려 야속하게 느껴집니다.

오랜만에 걸음을 늦춰 뒤로, 뒤로 빠지며 양보의 미덕을 발휘해 걷습니다. 머피의 법칙처럼 하필 내 앞에만 짐을 들고 늦게 걷는 할머니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느라 걸음에는 관심 없는 젊은 사람이 앞에 서 걷는 것이 얼마나 분통 터지는 일이었는지 까맣게 잊고 말이지요. 걸음을 늦춘다는 것은 마음 뿐 에스컬레이터도 못 기다리고 계단으로 혼자 뛰는 버릇은 언제 잦아들까요. 글을 끄적이느라 탈이 난 손가락 관절이니 불투명하게 보이는 눈도 그렇고 몸이 우선 나이가 들어가고 있으니 더 이상 미루어도 좋은 꿈은 없습니다. 너무 나이 드는 티를 내는가요?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 있을 때는 너무 밝고 뜨거워 마주 쳐다보기가 힘듭니다. 살포시 기울어지는 석양빛은 사람의 마음을 위무합니다. 이제는 다치면 회복이 더디니 길 다닐 때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시고요.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무서리 내리는 몇 밤 땡볕 두어 달 초승달 몇 날을 거느리고 붉어진 장석주 시인의 대추처럼 가을이 깊고 붉습니다. 건배! 대신 건필입니다. 건필, 그리고 건필!

                                                               2020 가을 글자주의자 가주(佳柱)

 

봉혜선

서울 출생

한국산문등단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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